조선 마지막 공주가 한글로 남긴 사랑의 자취
국립한글박물관 ‘공쥬, 글시 으시니’
덕온공주 집안 3대 한글유산 선뵈어
딸을 시집보내며 혼수목록을 적어준 것이 8년 전이었다.
어미는 이제 요절한 딸의 제사 ‘망전’에 올릴 음식목록을 언문(한글)으로 써내려간다. 비통한 마음이 넘쳤을 테지만 궁체로 된 글씨는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망전’은 망자를 위해 매달 음력 보름날 아침에 지내는 제례다. ‘대다식과’ ‘백매화연사과’ ‘각색절육’ 등 궁중음식 이름들이 단정한 필치로 적혔다. 음식명을 기록한 종이를 담을 봉투에는 ‘을사 이월 망전 단자’라고 시기와 용도가 쓰였다.
봉투에 적힌 을사년은 1845년. 제사상을 받는 망자는 조선왕조 최후의 공주로 불리는 순조의 막내딸 덕온공주(1822-1844)이며 제사 음식 목록을 쓰게 한 어미는 당대 조선을 쥐락펴락했던 여걸이자 순조의 비였던 순원왕후(1789~1857)다. 양반가 자제 윤의선과 혼인한 덕온공주가 둘째 아이를 낳다가 아이와 함께 숨진 비극이 이 문서의 이면에 깃들어 있다.
덕온공주를 둘러싼 당대 왕실의 희로애락을 일족들 사이에 오간 한글 기록들을 통해 살피는 전시가 차려졌다. 서울 용산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공쥬, 글시 으시니: 덕온공주 집안 3대 한글 유산> 전이다. 2016년 개최한 <1837년 가을 어느 혼례날: 덕온공주 한글 자료>에 이어 차린 덕온공주 컬렉션 잔치로, 지난 1월까지 수집한 덕온공주 자료 400여 점 중 200여 점이 나왔다.
전시장엔 덕온공주의 제사 음식 문서를 비롯해서, 아버지 순조, 왕위에 오르기 전 요절한 오빠 효명세자, 먼저 간 언니 효명공주, 복온공주 사이 오간 한글 편지들과 그의 아들 윤용구, 손녀 윤백영 등이 남긴 한글유산, 필적들이 나왔다. 한글은 그들에게 혈육을 확인하는 핏줄과도 같았다. 할아버지인 정조가 모친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 안에 세운 전각 자경전의 유래에 대해 덕온공주가 …한글로 풀어쓴 <자경뎐긔>는 대를 이은 효심과 가족애를 증언하는 전시의 대표유물이다. 양아들 윤용구(1853∼1939)가 한글로 쓴 중국역사서 <정사기람>, 중국 여성 열전 <동사기람>, 그리고 손녀 윤백영(1888∼1986)이 할머니와 부친의 문헌을 보충하고 곳곳에 특유의 글씨체로 토를 달아놓고 설명한 자취 등을 볼 수 있다. 8월18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