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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최종훈 판결에 ‘술 취한 선남선녀’가 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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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재판부, 감형 판결 내용 설시하며

“술 취한 선남선녀 성관계, 형벌권 개입 고민”

성폭력 사건에 ‘취중 해프닝’ 시각 드러나

한겨레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적으로 촬영·유통한 혐의를 받는 가수 정준영이 작년 3월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선남선녀가 만나 술을 마시다가 성적인 접촉을 하고 성관계를 했을 경우 국가형벌권은 어떤 경우에, 어느 한계까지 개입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피고인들의 행위는 그 한계를 넘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일 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윤종구)는 가수 정준영·최종훈씨 항소심 선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판부의 발언은 성폭력 사건을 남녀가 술을 마시다 벌어진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다는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정씨와 최씨는 지난 2016년 강원도 홍천과 대구에서 피해자를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피해자가 항거불능인 상태를 이용한 집단적인 범행(특수준강간)이었고 재판부도 범죄의 심각성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선남선녀’라고 칭한 것은 사안의 중대성을 희석한다는 지적이 법조계·여성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재판장이 법정에서 던진 이 짧은 발언은 항거불능 상태에서의 ‘준강간’을 ‘남녀가 함께 술을 마시다 보면 생길 수 있는 일’쯤으로 여기는 사회적 통념과도 연결된다. 집단성폭행 범죄가 마치 ‘술 때문에’ 발생한 우발적 사고인 것처럼 인식돼 술이 곧 면책의 수단으로 둔갑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재판부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이성적인 ‘남녀관계’로 정의하면 피해자의 목소리는 가려진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선남선녀는 일반적인 남녀 간의 교제관계처럼 쌍방을 존중하고 자발적인 성적 행위에 대한 동의가 있는 상황에서 쓸 수 있는 표현인데, 강압적인 상황에서 가해자가 중복되는 범죄에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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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준강간 혐의로 구속된 FT아일랜드 전 멤버 최종훈이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남대문 경찰서를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정준영·최종훈씨 항소심에서는 반성·합의를 이유로 형을 깎아주는 법원의 양형 관행도 여전했다.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한 정씨는 1심보다 1년 감경(징역 5년)됐고 피해자와 합의한 최씨는 1심 형량의 절반인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최씨의 형량은 실형 선고 시 받을 수 있는 최저치다. 재판부는 정씨에 대해 “공소사실은 부인하지만 본인의 행위를 반성하는 ‘취지’의 자료를 제출”했다고 했고, 최씨의 경우 “피해자와의 합의는 유리한 사정이지만 양형기준상 ‘진지한 반성’의 요건에는 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범행을 부인하지만 반성하는 ‘취지’만 보여도 감형이 가능하고, 피해자와 합의하면 최단형을 선고하는 법원의 양형 패턴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와의 합의나 ‘진지한 반성’이 감형의 주요인인 만큼 이를 정밀하고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게 최근의 사회적 목소리다. ‘반성’의 기준이 더욱 명확히 제시되고 피해자의 관점에서 한번 더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로썬 가해자의 ‘진지한 반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없어 재판부의 개별적인 판단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한 판사는 “피해자와의 합의나 피고인 반성 등에 있어 피해자의 입장은 어떤지, 피해자가 어떤 맥락에서 합의했는지 등에 대해 법원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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