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마, 대전 ‘먹킷리스트’…후루룩 한입에 ‘밀부심’ 가득
“‘노맛 도시’아니죠”…또 가고 싶은 식당 많은 ‘꿀맛 도시’
깔끔한 멸치 육수에 쑥갓 올린 옛날 칼국수가 추억 부르고
칼칼한 짬뽕 맛집·나폴리 피자 찍고 ‘빵지순례’ 화룡점정
대전 동구 삼성동 ‘오씨칼국수’는 전국적으로 유행을 불러일으킨 ‘물총 칼국수’가 시작된 곳이다. 일일이 칼로 썰어 만드는 손칼국수는 쫄깃하고 간이 맞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
‘노맛 도시’로 알려진 대전의 인상이 ‘꿀맛 도시’로 바뀌고 있다. 최근 방송인 풍자가 먹방 유튜브 ‘또간집’에서 대전 맛집들을 소개하는가 하면, 가수 성시경이 유튜브 ‘먹을텐데’에서 외식사업가 백종원과 함께 노포 중국집을 찾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두부두루치기, 콩나물밥, 도토리묵밥 같은 대전의 전통음식들이 있지만 최근엔 국수, 빵, 짬뽕 같은 밀가루 음식이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대전의 ‘밀부심’을 자랑하는 음식점들을 찾아가 보았다.
국수는 오래전부터 대전의 명물이었다. 기차를 타고 가다 잠시 정차한 대전역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국수 가락을 허겁지겁 건져 먹던 기억을 간직한 이들이 적지 않다. 8일 기준 대전시 집계를 보면 업소명에 ‘국수’가 들어간 곳만 632곳이고, 분식점을 포함하면 대략 1천곳이 넘는다. 대전에서 밀가루 음식이 발전한 것은 1950~60년대 미국 잉여농산물로 수입된 밀의 상당량이 대전역에 모이고 제분공장들이 설립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960~70년대 서해안 간척사업 등에 동원된 노동자들이 노임으로 받은 밀가루를 대전역 주변에서 내다 팔아 재료가 풍부했다는 얘기도 있다. 1970년대 정부의 분식장려 운동은 칼국수 문화에 불을 붙였다.
대선칼국수의 수육과 칼국수.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
대전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칼국수 축제를 열 정도로 칼국수 사랑이 대단하다. 3월 현재 대전시에 ‘칼국수’가 들어간 상호로 등록된 음식점은 500곳에 육박한다. 그 옛날 대전역의 가락국수가 그리운 사람이라면 서구의 ‘대선칼국수’를 추천한다. 1954년 대전역 앞에서 칼국수를 말기 시작한 이곳은 오영환(1980년 작고)씨가 창업해 딸을 거쳐 지금은 외손자가 운영하고 있다. 깔끔한 멸치 국물에 쑥갓이 올라가는데 한입 먹으면 대전역의 추억이 밀려온다. ‘대선칼국수에서 칼국수만 먹는 것만큼 미련한 일은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윤기가 좔좔 흐르는 수육은 칼국수만큼 유명하다. 수육용 고기는 질 좋고 부드러운 국내산 돈육만을 엄격하게 선별해서 사용한다. 고추장과 참기름, 깨소금, 쑥갓을 넣어 비벼먹는 냉비빔칼국수도 별미다. (042)471-0317.
신도칼국수. 사골 국물 위 들깨를 뿌려 낸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
1960년대 초 대전역 판잣집에서 분식집을 연 김금순(1998년 작고)씨의 후예들은 대전역 인근에서 ‘신도칼국수’와 ‘삼대째 전통칼국수’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창업주 외손녀인 삼대째 전통칼국수 대표 김기남(46)씨의 남편 박상용(56)씨는 “칼국수 도시 대전의 전통식당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한우 사골에 멸치 국물을 섞은 국물에 최고급 생면을 쓴다”고 말했다. 두 집 모두 진한 사골 국물에 비법 양념장과 들깻가루를 쓰고 칼국수 한 그릇 가격도 6천원으로 동일하다. (신도칼국수 042-253-6799, 삼대째 전통칼국수 042-257-5432)
대전 동구 삼성동 ‘오씨칼국수’는 전국적으로 유행을 불러일으킨 ‘물총 칼국수’가 시작된 곳이다. 면발은 수타 손칼국수인데 쫄깃하고 간이 맞다. 멸치와 조개 육수로 낸 국물 맛은 시원하며 청양고추까지 넣어 칼칼하다. 외환위기 당시 충청은행을 다니던 민대기(74) 대표는 1999년 강제 구조조정 여파로 30년간 근무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영업자가 됐다. 오씨 성을 가진 친구가 운영하던 조개구이집을 인수한 것. 이제는 대전 대표 칼국숫집이 된 이곳의 주메뉴는 ‘물총’이라 부르는 동죽조개찜과 손칼국수다.
“헐 게 없어서 시작을 헌 거여. 동죽을 잡으면 물총마냥 쏴. 동죽이란 이름은 어렵고 인상적이지 않으니까 제가 처음 물총이라 이름 붙였죠. 이제 ‘물총 칼국수’는 전국으로 다 퍼졌어요.”
오씨칼국수의 칼국수와 물총. 칼칼한 맛이 술 안주로도, 해장국으로도 알맞다. 맛있게 매운 김치도 이 집만의 시그니처.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
이 집 국물 맛의 비법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남해안 멸치다. 가장 맛이 좋을 때라는 7~8월에 1년치를 구매한다. 맵고 알싸한 맛의 김치는 이 집의 시그니처. 일반 칼국숫집의 겉절이보다 덜 달면서 곰삭은 깊은 맛이 났다. 김치는 모두 식당에서 직접 담근다.
“아이엠에프(IMF) 시절이던 2000년 이후 우리나라 음식이 매워지기 시작했어요. 칼국수를 담백하게 하면서 김치를 맵게 해야겠는데 매우면 맛있어지지가 않아. 강경 젓갈을 물어물어 찾아 쓰기 시작하니까 맛이 나는 거예요. 두배로 비싸지만 이걸 넣어야 김치 맛이 달라져요.”
예전, 서해안에서 산을 이루다시피 나던 동죽은 새만금 공사 뒤에 산지가 남쪽으로 이동했고 생산량도 예전에 견주면 30% 이하로 줄었다고 한다. ‘뻘’을 제거해야 하는 동죽조개 손질이야말로 어렵다고 들어서 비법을 물으니 곁에 있던 부인 임경희(70)씨가 눈치를 준다. “그것만은 안 돼요.” 민 대표는 “모든 비법을 알려면 조개의 성격부터 알아야 된다”며 “알려줘도 못 해요. 많은 노력을 했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동죽은 겨울부터 초여름까지가 제철이다. (042)627-9972.
대전의 대표 음식인 새빨간 두부두루치기에 칼국수를 넣어 먹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대전 동구의 ‘경동오징어국수’는 1979년 창업한 노포다. 두부오징어두루치기에다 멸치 육수에 삶은 칼국수면을 넣어 먹으면 한끼 식사는 물론이고 술안주로 그만이다. 함께 내어주는 멸치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으면 그대로 칼국수가 된다. 두루치기 맛의 비결은 한약재 농축 원액을 넣고 한달 정도 숙성시킨 특제 양념장으로, 많이 먹어도 속이 쓰리거나 찝찝한 맛이 없다. (042)626-5707.
오씨칼국수 민대기(왼쪽), 임경희 대표.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
대전역에서 지하철로 40분 정도 걸리는 유성에는 각종 빵집, 이탈리아 음식점들이 있는데 수준이 높은 편이다. 유성구 봉명동 ‘봉리단길’에 자리잡은 ‘르뺑 99-1’은 전국 빵집 순례의 필수코스가 됐다. 창업자(한도영 대표)가 제빵을 시작한 1999년 1월을 기억하며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2019년 제과기능장이 된 오너 파티시에의 자부심을 담은 빵들은 화려하고 예쁘지만 첨가물을 넣지 않아 속이 편하다. 이 집의 대표 빵은 말차 크로와상. 바삭하면서도 말차의 은은한 향이 풍겨 고급스럽다. 공주밤이 듬뿍 들어간 공주밤식빵, 쑥이 들어간 쑥빵도 있다. 든든한 식사빵으로 먹을 만한 샌드위치들도 다양하다. (042)826-9914.
르뺑 99-1의 말차 크로와상(아래)과 소금빵.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
유성구 ‘피제리아 다알리’는 나폴리 피자의 강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참나무 장작 타는 향기가 가득하다. 크고 두껍고 무거운 미국 피자에 견줘 나폴리 피자는 가볍고 부드러우며 치즈가 신선하다. 이 집 대표 메뉴는 나폴리를 대표하는 마르게리따 피자, 이탈리아식 드라이 소시지인 살라미가 올라간 살라메, 살라미와 페페론치노가 올라간 매콤한 디아볼라, 생모차렐라 치즈가 듬뿍 올라간 루꼴라, 4가지 치즈가 올라간 꽈뜨로 뽀르마찌 등이다. 그라나 파다노 치즈와 달걀노른자로만 만든 까르보나라 파스타도 맛있고, 리조또도 인기다. 피자 도(dough·반죽)로 매일 굽는 식전빵과 신선한 바질페스토는 찰떡궁합. 음료로는 이탈리아 맥주와 와인, 이탈리아 유명 커피 브랜드인 라바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피제리아 다알리의 디아볼라.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
이승혁(45) 오너셰프는 2012년 이탈리아 나폴리 피자협회(AVPN)의 디플로마 과정을 수료하고 이듬해 돌아와 대전에서 피자가게를 차렸다. 2014년께 나폴리 피자협회에서 발급하는 ‘베라 피자’(진짜 피자) 인증을 받았는데 세계에서 497번째, 한국에서 세번째였다. (지금은 한 곳이 폐업해 두번째가 됐다.) 나폴리 피자협회가 지정한 기준은 모두 8가지. 첫째, 베수비오 화산석으로 만든 장작화덕을 사용할 것. 둘째, 화덕 온도는 485℃에 맞출 것. 셋째, 피자는 둥근 형태일 것. 넷째, 수타 반죽. 다섯째, 촉감은 쫄깃하고 부드러워 쉽게 접힐 것. 여섯째, 도 끝부분 두께는 2㎝ 이하일 것, 일곱째, 피자 도 가운데 두께는 0.3㎝ 이하일 것. 여덟째, 이탈리아산 생모차렐라 치즈와 토마토소스, 신선한 바질을 사용할 것.
나폴리식 장작화덕에는 참나무만을 사용한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
“서울 셰프님들이 강남에 가게를 내라고 했지만 고향인 대전에 내고 싶었어요. 처음엔 대전에 나폴리 피자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신선한 치즈를 썼는데 치즈가 축축하고 흐물흐물하다고 손님들의 불평도 많았어요. 고생스러워도 2~3년만 버텨보자고 했죠.”
단골이던 카이스트 교수들도 “무조건 기다리라”고 격려했다. 우직하게 입소문만 믿고 일했더니 조금씩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멀리서 찾아올 정도로 인기 있는 가게가 되었다. 특히 대전을 찾는 이탈리아 공학기술자들은 집밥 먹듯이 드나들며 즐긴다.
“화덕에 피자가 들어가면 1분에서 1분20초 사이에 꺼내야 하거든요. 그 시간을 넘어가면 수분이 빠져버려 질겨져요.”
화덕에 들어간 피자 도를 신중하게 돌리던 이 대표가 말했다. 상호명에 들어간 ‘알리’는 국문학자인 아버지가 지어준 순수 한글 이름이다. “알 이, 뭘 많이 아는 사람을 가리킨대요. ‘피제리아 다 알리’는 ‘알리네 피자가게’란 뜻이죠. 앞으로도 이탈리아 남부의 ‘진짜 피자’를 맛보여 드릴게요.” (042)825-8308.
피제리아 다알리의 이승혁 오너셰프.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
오전 11시20분. 가게가 문을 열려면 10분이나 남았는데 식당 앞은 이미 장사진을 이뤘다. 개점과 동시에 자리에 밀고 들어온 사람들이 탕수육, 짬뽕, 짜장면, 군만두, 멘보샤 등 주문을 쏟아냈다. “성시경이 먹었던 거 맞죠?” 앉자마자 자가제조한 군만두를 시킨 사람들은 장탄식을 터트렸다. 만두의 인기가 너무 좋아 새로 빚어야 하는 바람에 저녁이나 돼야 주문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대전역 앞 한약거리 인쇄골목 안에 자리잡은 ‘태화장’은 1954년 화교 고복신(104)씨가 창업한 대전지역 대표 중화요리점이다. 최근 가수 성시경씨가 외식사업가 백종원씨와 함께 찾은 유튜브로 화제가 되었다. 이때 소개된 유슬짜장(1만원)은 돼지고기를 길게 썰어 볶은 춘장에 섞은 것으로 많이 달지 않은 담백한 맛이다. 피망, 파, 오이를 함께 넣어 먹어 뒷맛이 깔끔하다. 닭육수에 해물을 넣고 끓인 삼선짬뽕(1만2천원)은 담백하고 시원한 해물짬뽕의 정답 같았다. 백종원씨가 추천한 두툼한 멘보샤(5만원)는 메뉴판에 없지만 따로 주문 가능하다. (042)256-2407.
태화장의 짬뽕(위)과 유슬짜장.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
한국에 중국음식점이 대중적으로 들어선 건 1960년대부터였다. 1963년 정부가 화교의 농토 소유를 금지시켜 농촌 화교들이 도시로 나와 중국음식점들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음식들 중에서도 우동, 짜장면, 짬뽕은 가장 대중적인 메뉴였다. 정부의 물가 통제 대상에도 짜장면이 등장했다.(<한국인, 무엇을 먹고 살았나>, 주영하·김혜숙·양미경 지음) 대전에서 짜장면은 60년 이상 원도심 골목을 지켜온 ‘희락반점’, 역시 3대째 이어온 노포인 ‘중국성’, 패밀리 차이니즈 레스토랑인 ‘메이웨이 차이나’ 등이 유명하다.
하지만 대전의 ‘밀부심’ 가운데 대표적인 음식인 짬뽕을 빼놓을 수 없다. ‘대전 3대 짬뽕’으로는 동해원, 대성관, 국제반점이 꼽힌다. 유성의 ‘권영철 콩짬뽕’은 콩을 갈아넣어 저온 숙성시킨 반죽으로 면을 뽑는다. 서구에 자리잡은 ‘설짬뽕’은 직화짬뽕과 차돌박이가 다량 들어가는 소고기짬뽕이 대표 메뉴다. 가장 유명한 짬뽕은 전국 150여개 매장을 운영 중인 ‘이비가짬뽕’이다. 유성본점의 대표 음식인 기본 이비가짬뽕은 사골을 기본 육수로 하고 생굴, 한돈, 국내산 고춧가루 등 국산 재료를 써서 입에 짝 달라붙는 맛있는 맛을 낸다. 그야말로 속풀이 해장국인 동시에 술국이다. 비대면 서비스로 테이블마다 오더기를 쓰고 서빙 로봇이 돌아다니며 짬뽕을 배달하는 것도 볼거리다. (042)823-7484.
화제를 몰고 온 성심당 ‘딸기시루 2.3㎏’.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
최근 딸기철을 맞아 베이커리 ‘성심당’이 내놓은 케이크 ‘딸기시루 2.3㎏’은 ‘축소 홍보’라며 소비자들에게 애정 어린 질타를 받았다. 인스타그램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무게를 속였다’, ‘실제 무게를 재보니 더 무거운 2.6㎏이었다’, ‘서울까지 들고 가느라 팔이 빠지는 줄 알았다’는 등 훈훈한 후기가 잇따랐고 열명이 넘는 대식구가 딸기시루를 나눠 먹는 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원래 이 케이크의 이름은 ‘스트로베리 쇼콜라’. 직관적인 이름으로 변경한 뒤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것이다. 4만5천원이라는 가격에도 하루 500~600개씩 팔려 나간다.
은행동 본점을 제외하고도 대전 롯데백화점, 유성 대전컨벤션센터(DCC), 대전역에 입점해 있는 성심당은 2021년 코로나19를 겪으면서도 매출 628억원을 기록했다. 대형 프랜차이즈를 제외하고 단일 브랜드 베이커리 매출이 600억원을 넘은 것은 성심당이 처음이었다. 성심당의 지난해 매출은 대략 800억원대로 예상된다. 사상 최대 매출이다. 김정숙 성심당 모바일브랜딩사업부 부장은 “지난 겨울방학 때는 건물을 세바퀴 정도 돌 정도로 손님들이 줄을 길게 서서 빵을 사 갔는데 휴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았다”고 했다.
성심당의 마스코트, 성심이.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
성심당은 1956년 대전역 앞 허름한 3평짜리 노점 찐빵집에서 밀가루 두 포대로 시작했다. 지금은 대전 원도심인 중구 대종로 480번지 일대가 베이커리와 레스토랑이 모인 ‘성심당 거리’를 이루고 있다. 창업주 임길순(1997년 작고)씨는 한국전쟁 중에 함경남도 흥남부두에서 메러디스호를 타고 거제에 도착했다가 대전으로 왔다. 대전 지역 고아들의 아버지라 불렸던 오기선 신부가 임씨에게 미국이 지원한 밀가루 두 포대를 건넨 것이 성심당의 시작이었다. 임길순씨는 하루에 찐빵 300개를 만들면 100개를 이웃과 나눴고 그 숫자를 맞추려고 무리해서 밀가루를 구입하기도 했다. 기부는 점점 늘고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매달 3천만원어치 이상의 빵을 기부하던 성심당은 작년엔 두배가 넘는 6천만원어치 이상의 빵을 매달 기부했다.
성심당의 비전은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라”(로마서 12장 17절)이다. 2001년 9월 주식회사 ‘로쏘’라는 이름으로 법인전환한 성심당은 정관에도 ‘모두를 위한 경제’(EoC, Economy of Communion) 기업임을 명시했다. 로쏘는 케이크를 파는 ‘성심당 부띠끄’와 외식 식당으로 테라스 키친, 플라잉팬, 삐아또, 우동야, 파티 케이터링 오븐스토리까지 여러 외식 브랜드를 아우른다.
성심당에서 손님들이 빵을 사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
대표 제품은 튀김소보로(튀소), 판타롱부추빵, 보문산메아리, 명란바게트 등이다. 창업주의 아들 임영진(69) 대표가 1980년 단팥 넣은 소보로를 기름 솥에 튀기면서 전설은 시작되었다. 올해 67주년을 맞은 성심당은 이곳의 문화와 역사를 간직하기 위해 지난해 5월 성심당 인근 폐고시원을 단장해 ‘성심당 문화원’을 열었다. 친환경 상점, 전시공간, 역사관 등을 합한 건물이다. 튀소를 튀기고 난 콩기름을 정제해 만든 ‘튀소 비누’와 성심당 굿즈를 파는 1층 상점을 지나 2층에서는 임 대표의 부인 김미진 이사가 직접 고른 독특한 빈티지 패션·생활 소품들을 판매한다. 갤러리에는 창업주 이야기부터 지금까지 성심당 시간을 100점의 구술 드로잉으로 기록한 상설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성심당 문화원 1층 그로서리 스토어 메아리상점.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
3월부터 매주 목요일 이 문화원은 빵과 디저트, 허브티와 와인 등을 페어링하는 워크숍 프로그램을 연다. 9일 저녁 첫 행사부터 내외국인 18명이 참여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이날 성심당 롤케이크와 허브티 페어링을 안내한 강수희(생태예술 창작그룹 ‘시티애즈네이처’)씨는 “꼬꼬마 때부터 엄마·아빠 손을 잡고 성심당 케이크를 고르던 기억이 애틋한데 수십년이 지나서 이렇게 연결되어 함께 일을 하고 있다는 인연이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대전 토박이 빵집’으로서 자부심이 가득한 이 빵집은 앞으로도 다른 지역에 빵집을 낼 계획이 없다고 한다. 밤늦은 시간까지 대전 시내 곳곳에 성심당 빵 봉투를 든 사람들이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길을 오갔다. 대전 맛집 순례를 왔다고 하니 고개를 갸웃하던 택시 기사도 “성심당은 인정한다. 그곳은 대전 시민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042)220-4120.
성심당 문화원에서 바라본 대흥동 성당. 창업주 임길순씨가 이곳의 종소리를 들으려 부근에 빵집을 차렸다고 한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