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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혈관 수가 낮다”며 ‘고어’ 철수…3살 민규의 위태로운 생명

소아용 인공혈관 독점업체 ‘고어’

의료수가 낮다며 한국에서 철수

병원 재고 떨어지자 수술 못 해

복지부 “원하는 가격 다 주겠다”

공급 재개 요청에도 고어 무응답

“인공혈관 수가 낮다”며 ‘고어’ 철

세종시에 사는 3살 양민규 군은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심장의 심실 2개 가운데 하나밖에 쓰지 못한다. 오른쪽 심실은 거의 기능할 수 없는 크기이고, 판막 역시 온전히 형성되지 않았다. 몸으로 피를 원활하게 공급하지 못한다. 열 발자국만 걸어도 숨이 가빠서, 양군은 어머니 김진희(39)씨의 품에 안겨 산책하는 것 빼고는 야외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한다. 감염을 우려해 어린이집도 다니지 않는다. 게다가 점점 상황이 나빠진다. 몸이 자라면 심장 기능이 더 필요하게 되는데, 양군은 클수록 점점 숨이 더 차고 뇌로 가는 산소량도 적어질 것이라고, 김씨는 말했다.


양군은 2016년 3월 태어나자마자 한 차례, 그로부터 6개월 뒤 한 차례 더 수술을 받았다. 이번 달 완치를 위한 최종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김씨는 지난달 청천벽력같은 얘기를 들었다. 서울아산병원 담당 의사는 “수술을 무기한 연기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에 꼭 필요한 치료재료인 ‘인공혈관’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김씨는 “담당 의사는 이번 달이 수술할 수 있는 적기라고 했다”며 “아이는 점점 숨이 찬다고 하고 청색증까지 오기 시작했는데 어쩔 수 없이 기다리고만 있다”고 말했다.


양군의 수술이 무기한 연기된 건 인공혈관을 팔던 업체 ‘고어’(Gore)사의 의료 사업부가 2017년 9월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기 때문이다. 아웃도어 의류 소재 ‘고어텍스’로도 잘 알려진 고어사의 메디컬 사업부는 인공혈관을 비롯한 의료기기를 전 세계에 공급하는 업체다.


이유는 두 가지로 알려졌다. 한국의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 수익성이 떨어진 점, GMP(의약품 제조 품질관리 기준) 인증 과정에서 불거진 식품의약품안전처와의 갈등 등이다. 고어사가 철수할 때 선천성 심장병 수술을 할 수 있는 전국 각지의 상급종합병원들은 공급 재개 때까지 버티기 위해 인공혈관 등을 ‘사재기’ 해뒀다. 당시 재고를 마련해뒀던 병원은 서울아산병원과 세종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부산대병원, 경북대병원 등이다. 서울아산병원의 인공혈관 재고는 모두 떨어졌고 나머지 병원들도 1~2개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양군은 고어사의 인공혈관이 없어 선천성 심장병 수술을 받지 못하게 된 환아 가운데 한 명이다.


인공혈관을 제때 부착하지 못하면 선천성 심장병 환아들의 생존 확률은 낮아진다. 인공혈관은 정도가 심한 선천성 심장병 치료 수술인 이른바 ‘폰탄(Fontan) 수술’에 없어선 안될 필수재료다. 복잡한 심장 기형이 있는 환자들의 심장에 부착하면 대정맥과 같은 기능을 한다. 성인용 인공혈관은 고어사의 제품을 대신할 타사 제품이 있지만, 소아용 인공혈관은 규격화가 어려운 탓에 대체재가 없다. 오태윤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이사장은 “복잡심기형이 있는 환아들은 대개 세번에 걸쳐 수술을 받는데, 세번째 최종 수술에 필요한 게 인공혈관이다. 혈관이 없어 제때 수술 받지 못하면 심장 기능이 떨어지고 후유증도 심각해 심한 경우 수개월 내 사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군처럼 폰탄수술 받아야 하는 환자 수는 1년 기준으로 30~40명가량 된다.


보건복지부와 식약처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9월28일 ‘희소·필수치료 재료의 상한금액 산정기준’ 고시를 통해 희소·필수치료 재료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의료수가 상한금액을 올려 잡을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고어사가 독점적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고어사 쪽에서 원하는 가격을 다 줄 수 있도록 수가 책정 범위를 넓혀뒀다”고 말했다. 식약처도 지난달 환아들이 수술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부랴부랴 공급 재개를 위한 체계를 마련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2017년 철수 당시 고어사에서 자사 의료기기에 대한 식약처 허가를 취소하고 떠났었는데, 지난달 이 허가를 식약처에서 다시 살려놨다”며 “고어사가 공급을 재개하기만 하면 즉시 제품을 납품받아 각 병원에 팔 수 있도록 해뒀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가 나서기 전부터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와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등 환자와 의사 단체도 고어사의 문을 두드려왔지만, 고어사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고어사에 이메일을 보내고 여러 방법으로 문을 두드려도 응답이 오지 않고 있다”며 “미국 대사관을 통해 공급 재개를 요청해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안상호 대표도 “고어사에 공문을 보냈는데 ‘한국에서는 철수했다’는 식의 답변만 왔다. 상해, 싱가포르, 인도, 대만까지 알아봤는데 답변을 안 하거나 공급할 수 없다는 대리점과 총판의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와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도 이달 초 한국 내 의류 판매를 담당하는 고어사의 또 다른 사업부인 고어코리아 쪽에 철수방침 철회를 요구하고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고어코리아 불매운동을 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고어사의 북아시아 사업부는 지난 1월25일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에 “고어사는 한국에서는 더 이상 의료기기 사업을 지속할 수 없으며 2017년 9월부로 한국시장에서 사업부를 철수했다”는 취지의 답변을 보내고 더 이상 응답이 없다. 고어코리아의 한경희 대표는 6일 <한겨레>가 여러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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