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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배아에서 자라는 파충류 근육

임신 7주에 나타나 11.5주까지 이어져

2억5천만년전 포유류 진화때 사라진 것

한겨레

임신 초기의 배아 단계에서 파충류의 사지 근육이 일시적으로 발달하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이 공개됐다. 미 워싱턴의 하워드대와 프랑스 소르본대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디벨로프먼트>에 게재한 논문에서, 배아 단계에서 도마뱀의 사지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모양의 근육이 일시적으로 발달했다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 쓸모없는 파충류 근육은 오랜 기간에 걸친 인류 진화 역사가 남긴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이 이번에 확인한 근육은 약 2억5천만년 전 단궁 파충류(포유류형 파충류)에서 포유류로 진화하는 단계에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근육의 흔적은 오늘날의 포유 동물 성체에선 찾을 수 없고, 도마뱀 같은 일부 파충류에서만 볼 수 있다.


이처럼 옛날에 변형되거나 사라진 형질이 몇 세대를 거쳐 다시 나타나는 현상을 격세유전이라 한다. 예컨대 타조엔 아직도 퇴화된 날개가 있다. 고래는 배아 단계에서 뒷다리가 발달을 시작했다가 멈춘다. 연구진에 따르면 인간의 경우에도 자궁에 있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꼬리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대개 임신 8주차에서 사라진다. 또 척추 끝 꼬리뼈엔 오랜 옛날 사라진 꼬리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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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임신 7~13주 사이의 배아 발달 과정을 담은 3D 이미지들을 조사했다. 특히 손과 발의 근육 발달 모습을 찾는 데 중점을 뒀다. 그런데 놀랍게도 임신 7주 무렵에 각각의 팔과 다리에서 30개의 근육을 발견했다. 근육 숫자는 13주차에 20개로 줄었다. 일부는 다른 것과 합쳐지고, 일부는 그냥 없어졌다. 이번 연구 책임자인 하워드대의 진화생물학자 루이 디오고(Rui Diogo)는 “인간 태아 발달에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다양한 근육들을 볼 수 있어 흥미로왔다"며 "이 중 일부는 11.5주째의 태아에서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디오고 박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사람의 몸에서도 매우 드물게 이 근육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발견은 이런 근육이 왜 사람의 몸에서도 발견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며 "이는 진화가 작동하고 있다는 강력하고 매혹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한 근육이 태아 발달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과정이라고 곧바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표본 크기가 작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15명의 아기를 대상으로 했다. 더 큰 표본 연구를 통해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또 이 근육들이 정확히 어떻게 사라지는지도 명확하게 밝히지는 못했다. 어쨌든 기술 발전 덕분에 인간 태아의 발달 전 과정을 전례없이 상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되면서 진화에 얽힌 비밀을 밝혀낼 수 있는 여지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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