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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 OK] ‘물어보살’ 해인이 부모 출연…예능이 일깨워 준 TV의 순기능

케이블 출연한 해인이 부모


아이들법 통과 눈물로 호소


국민청원 20만건으로 관심 증폭


제작진, 재미 덜할 우려에도


웃음기 빼고 깊은 메시지 전해


시청자에 사회 문제 관심 환기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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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살이 돼야 하는 아이가 5살 때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눈물을 삼키려 입술을 깨무는 남자의 말에, 촬영장엔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남자 옆 여자의 눈은 이미 빨개졌다.


“무슨 사고가 있었느냐”는 서장훈과 이수근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남자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 아이 이름은 해인이입니다.”


여러 사람들의 고민을 다소 재미있게 들어주는, 케이블방송사 <케이비에스 조이>(KBS Joy)의 예능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 지난달 25일 방송에선 특별한 출연자가 나와 고민을 털어놨다. 어린이집과 운전자의 부주의로 숨진 해인이의 부모다.


해인이는 2016년 경기도 용인의 한 어린이집 앞에서 차량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경사진 곳에 주차돼 있던 스포츠실용차(SUV)가 뒤로 밀려 내려와 하원 차량에 타고 있던 당시 5살 해인이를 덮쳤다. 차가 밀려 내려온 시간이 20초나 됐는데도 누구 하나 “비키세요”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없었다. 어린이집 교사는 다친 아이를 병원이 아닌 원장실로 옮겼고, 몇분이 지나서야 119 구급차를 불렀다. 어른들의 부주의로 해인이가 세상을 떠난 지 3년7개월이 지났지만 책임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차주는 금고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어린이집 관계자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해인이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3년 전 발의된 ‘해인이법’(어린이가 질병, 사고 또는 재해로 인해 응급환자가 된 경우 즉시 응급의료기관 등에 신고하고 이송 및 필요한 조치를 의무화)은 또다시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국회에 계류 중이다.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나온 해인이 엄마는 이런 사연을 토로한 뒤 “아이가 눈도 못 감고 눈물이 고인 상태로 죽어 있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는데 달라지는 게 없다”며 또 한번 피눈물을 흘렸다.


많은 이들이 즐겨보는 예능에서 전한 진심의 힘은 컸다. 시청자도 제작진도 진행자도 먹먹하게 만든 이날 방송은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딱딱한 시사교양이 아니라 예능에서 우리가 알아야 하고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를 담아낸 덕분인지 해인이법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 건수는 방송 전 2만건에서 방송 직후 20만여건으로 크게 뛰었다. 청원은 지난달 28일 최종 27만1502명으로 완료됐다.


특히 티브이의 순기능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줬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자극적이고 의미 없는 웃음이 난무하는 티브이 예능에서 해인이 부모 이야기를 전하며 우리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깊은 울림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고현 제작팀장은 “처음에는 예능에서 다룰 사안인지에 대한 고민과 우려가 있었지만, 사안이 시급하고 방송으로서 순기능을 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방송은 농담과 즉흥대사가 난무하는 평소 분위기와 달리 진지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재미 면에서 기존 시청자들을 놓칠 수도 있었다. 이런 선택 자체가 제작진에게는 큰 모험인 셈이다. 이런 모험 덕분에 시청자들의 관심은 다른 비슷한 사고와 관련법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방송에서 ‘태호 유찬이법’(어린이를 탑승시켜 운행하는 차량에 대해 대통령령으로 어린이 통학버스 신고 대상에 포함)과 ‘한음이법’(어린이 통학로 지정, 통학버스 동승자의 안전교육 의무화), ‘하준이법’(차량의 미끄럼 방지를 위한 고임목 설치 및 주의 안내 표지 설치 의무화) 등을 소개하면서 같은 아픔을 겪는 부모들에게도 귀 기울이게 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법이 다 국회에 계류 중이라는 사실도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시청자 반응은 아픔을 겪은 부모들에게 힘이 된다. 누리꾼들은 “해인이법이 그냥 단순 처벌이 아니라 진짜 아이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법이 돼야 한다” “뭐라도 하겠다. 무조건 돕겠다” “책임감 없고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들이 너무 많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이 사건을 알게 됐다는 이들도 꽤 있다. 이런 시도가 더 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현 팀장은 “방송은 재미뿐만 아니라 사회에 헌신하는 의무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위한 좋은 나라가 됐으면 하는 것이 방송사와 제작진의 바람이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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