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에서 쫓겨나 마포로 가도 ‘을지오비베어’
[ESC] 박미향의 요즘 뭐 먹어 새로 문 연 을지오비베어
1980년 ‘노가리 맥주골목’의 시작
건물주와 5년 공방 끝 강제 퇴거
마포구 새 출발…단골 발길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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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가자’고 하니까 곧장 모였죠.” 자영업자 조태원씨가 메시지를 보내자 쉰여덟살 동갑내기 친구 박상원씨와 박진우씨가 달려왔다. 이들의 집결지는 ‘을지오비(OB)베어’였다.
지난달 25일 오후 3시. 한산한 거리에는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궂은 날씨에도 중장년 3명은 서울 마포구 경의선책거리 인근에 새롭게 문을 연 을지오비베어에서 잔을 부딪쳤다. 이들은 을지오비베어의 30년 넘은 단골들이다. “갑자기 을지로에서 없어져서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우리 청춘이 다 사라진 거 같았죠.”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쉬움을 드러냈다.
본래 을지오비베어는 중구 을지로 일명 ‘노가리 맥주골목’에 있었다. 43년 전 강효근씨가 지금의 ‘노가리 맥주골목’인 을지로 인쇄 골목에 을지오비베어를 열었다. 황해도 송화군이 고향이었던 그는 1·4 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와 강원도 철원 등지에서 미군 군무원으로 일했다. 종로3가에서 경양식집 ‘노르망디’를 운영하다가 1980년 당시 동양맥주(현 오비맥주)가 시작한 생맥주 프랜차이즈 사업의 가맹점으로 개업했다. 노가리 맥주골목 탄생의 첫 단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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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이 골목이 전국권 명소가 됐지만, 당시만 해도 밥집조차 몇 개 없던 각박한 곳이었다. 강효근씨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지역민과의 신뢰 구축. 그는 새벽에 일어나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거리를 청소했다. 가게에서 숙식하며 맥줏집으로는 보기 드물게 아침에 문을 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밤새 야간작업을 한 인쇄 골목 노동자들의 아침 퇴근길에 ‘차가운 소주’ 대신 ‘풍성한 생맥주’를 대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격은 고작 380원. 인쇄 골목 노동자들뿐 아니라 주·야간으로 교대 근무했던 서울 지하철 노동자들도 이곳을 ‘고추장 집’이라고 부르며 단골이 됐다.
노가리(명태 새끼) 안주를 국내 최초로 개발한 이도 강효근씨다. 그가 고안한 고추장 양념장과 노가리 조합은 단박에 입소문이 났고, 사람들이 몰렸다. 금쪽같은 세월이 흐르면서 가게 주변엔 맥줏집들이 하나둘 들어섰고, 마침내 을지오비베어는 이들의 좌장이 됐다. 골목의 상징이 된 것이다. 전국에 넘쳐나는 술집 골목들과의 차별점이 바로 이런 을지오비베어의 역사성에 있다. 이런 이유로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는 2018년에 이 집을 ‘백년가게’로 지정했다. 백년가게는 중기부가 100년 이상 보존가치가 있는 가게를 발굴해 지원하는 정책이다. 서울시도 2015년에 이 골목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을지오비베어를 ‘골목의 원조’라고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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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부터 창업주의 딸 강호신(63)씨와 그의 남편 최수영(68)씨가 을지오비베어를 운영한다. 연로해진 아버지를 대신해 영업 일선에 나선 강씨 부부는 창업 철학을 을지로에서 계속 이어가길 바랐으나 바뀐 건물주는 퇴거를 요청했다. 5년 법정 다툼 끝에 지난해 4월 여섯번째 강제집행이 이뤄지면서 을지로 거리를 떠나야 했다.
“언젠가 을지로로 돌아갈 거예요. 아버지를 향한 저의 최소한의 예의이자 의무입니다. 아버지가 평생 일궈내신 곳을 지켜내지 못한 게 가슴 아파요.” 지난달 25일 만난 강호신씨의 목소리에는 통한의 설움이 섞여 있었다.
당장은 을지로에 터 잡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일생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할 수는 없는 노릇. 강씨 부부는 지난 3월, 경의선책거리 인근(마포구 와우산로37길)에 새롭게 단장한 을지오비베어를 열었다. 이젠 아들 최성혁(29)씨도 함께한다.
“저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정말 많은 분이 도와주셨어요. 여러 차례 강제집행 때도 인근 상인, 단골 분들, 여러 시민단체가 자발적으로 막아주셨죠. ‘정말 우리 가게를 좋아하시는구나’ ‘장사가 이윤만 추구하는 건 아니구나’를 알게 됐죠. 아버지가 이익만 따지셨다면 결코 없었을 일입니다. 장사가 잘될 때도 가게 평수조차 늘리지 않으셨고 밤 10시면 손님이 넘쳐나도 문을 닫으셨던 분이 아버지셨죠.” 강호신씨가 차분하게 말하며 아버지의 고집을 반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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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연 을지오비베어는 사뭇 풍경이 다르다. 과거 19.8㎡(약 6평) 크기의 공간은 132㎡(약 40평)로 넓어졌고, 야외 테라스도 생겼다. 실내엔 반짝이는 작은 전굿줄이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 성혁씨가 직접 인테리어를 하며 정성을 쏟았다. 을지로 가게에서 사용했던 연탄불은 여전히 이곳에서도 노가리 굽기용으로 쓰인다. 노가리 크기는 더 커졌고 가격은 3000원. 차림표에는 쥐포, 학꽁치, 한치, 번데기 등이 적혀있다. 1만원을 넘지 않는다. 새 메뉴도 생겼다. 소시지, 라면땅, 감자튀김과 치킨 등이다. 맥주 맛은 을지로 시절처럼 변함이 없다. 생맥주 케그(맥주통)는 온도제어장치가 설치된 냉장고 안에서 관리된다. 계절에 따라 맥주 온도를 조절하기 위해서다. 모든 음식의 맛은 온도가 결정한다고 하지 않던가. 가격은 4500원. 예전처럼 청량하다. 폭염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시원함이 장착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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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엔 고색창연한 간판이 걸려있다. ‘OB베어’란 글자와 함께 동글동글한 몸집의 곰이 맥주 가득 찬 잔을 들고 서 있는 그림이 돋보인다.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지켜낸 우리 모두에게 한잔의 위로를 건네는 듯하다.
을지오비베어가 새 출발 했지만, 강호신씨 부부는 마냥 마음이 편치는 않다. 여전히 각종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을지로에서 열렸던 ‘을지오비베어 지키기’ 문화제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정한 소음 기준을 넘었다는 이유로 건물주에게 거액의 돈을 줘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본래 이 거리는 야간 소음 데시벨이 높은 편인데다가 관할 경찰서인 서울중부경찰서가 정한 최대 소음 기준도 넘지 않았다고 최수영씨는 설명한다. 강제집행을 막았다는 이유로 형사재판도 받고 있다.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않았어요. 전 울지 않을 거예요. 을지오비베어 간판 들고 멋지게 부활해서 아버지께 책임을 다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때까지요.” 강호신씨의 단호한 말이 여름을 알리는 봄비 사이로 퍼져나갔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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