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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고 삭힌 홍어 먹는 나라 또 있네~

[ESC] 맛

한때 홍어 취식 경험은 서울 미식가 기준


흑산도 홍어 귀하지만, 연평도산 홍어도 맛나


여러 부위 중 특히 코가 별미 중 별미


아이슬란드에서 삭힌 홍어 등 맛봐


차별과 혐오의 대상인 한국의 홍어


“음식이 왜 차별의 상징으로 쓰이죠?”

한겨레

십여년 전만 해도, 서울 미식가의 기본 조건에는 홍어 취식 경험이 들어갔다. 얼마나 센 걸 먹었느냐에 따라 등급(?)이 정해졌다. 입천장이 홀랑 벗겨진 체험의 횟수가 중요했다. 봄의 홍어애탕, 간과 기름장의 궁합, 코와 거시기 같은 특수부위도 거론됐다. 홍어는 그냥 홍어가 아니었고, 그 이상이었으며 정치적이기까지 했다. 홍어 삭힘이 흑산도에서 나주에 이르는 이동 경로에 의한 자연스러운 관습이라는 인문지리설도 나왔고, 그렇지 않다는 반박도 있었다. 홍어로 전라 좌우도가 나뉘었다. 이순신 장군 시절도 아닌데 말이다. 섬진강, 영산강 라인을 따라 홍어와 가오리(서대)라인이 갈라지는 것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토록 정치·사회·경제·문화에 국토지리를 다 포괄하는 생선이 역사에 있었던가. 고등어도 명태도 멸치도 살짝 못 미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정치적 혐오로 쓰이기도 하는 한 맺힌 생선이다. 홍어 다큐멘터리를 같이 찍은 독일인 다니엘 린데만이 이런 말을 했다.


“유럽에서 이탈리아인을 무시할 때 흔히 스파게티 인간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 같은 수위는 절대 아니에요.”

한겨레

나는 뒤늦게 홍어의 맛에 뛰어들었다. 홍어는 생각만 해도 입맛을 다시게 한다. 조린 홍어 껍질, 다진 등뼈로 만든 쌈, 홍어 날개 스테이크, 홍어 튀김 같은 걸 창조해 먹는 전형적인 비주류이기는 해도. 글 끝에 간단한 레시피가 있다. 아, 홍어라면이 제일 맛있다.


홍어는 삼합이란 게 유명하다고 하여 목포에 갔다. 이 동네가 원조라니. 유명 홍어집 사장님을 앉혀두고 세 시간을 물었다. 거기서 얻은 재미있는 대답 몇 가지. 사투리는 대충 상상력을 동원해서 복원(?)했다.


“홍어고, 삼합이고 원래 식당에서 폴던 게 아니지라. 결혼식이나 상가에 가믄 나오는데 왜 사묵어. 나중에 서울 사람들, 출향 인사들이 아무 때나 와서 달라고 하니 팔게 됐제. 우리 집도 처음엔 그냥 술안주 팔다가 나중에 홍어전문집이 됬응게.”


“항아리에따가 지푸라기 넣고 삭힌다고? 인자는 그리 안 해. 김치냉장고가 얼마나 존데.”(물론 항아리 고집파 사장님들도 있다.)


“삭힌 놈은 삭힌 대로 좋고 안 삭힌 놈은 그대로 맛있제.”


잔치나 상가에 나오니, 사 먹는 식당 음식이 아니었다는 거. 김치냉장고의 저온숙성기능이 워낙 좋아서 항아리보다 낫다는 거. 한 가지 더하면, 홍어는 제철이 뻔해서 봄에서 가을까지는 잡은 놈을 얼려두고도 파는데, 고기의 특성상 얼려도 품질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한 말씀 더.


“우린 흑산도치를 취급허는디, 팔찌 찬 놈이여. 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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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것이 워낙 유명해서 원산지 보호를 위해 바코드가 떡 찍힌 플라스틱 태그를 달고 유통된다. 노량진 같은 데 경매로 안 나오고, 자체 유통망으로 직접 팔린다. 우와.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다른 지역산도 맛있다. 홍어는 회유하는 고기다. 남도에서 멀리는 이북까지 서해안을 타고 월경한다. 나는 연평도산을 노량진에서 받아 보았는데, 이 또한 엄청 맛있었다. 산지도 산지이겠지만, 개인 소견으로는 제철도 중요하다. 이 즈음은 철이 끝나간다고 아뢰오.


홍어살도 살이지만 특수부위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코다. 사람 코도 그렇지만 연골도 더 많고 말랑하다. 사람은 홍어 같은 바다 생물에서 진화하지 않았을까. 숙성하면 젤라틴처럼 변한다. 이놈이 절품이다. 아주 제대로 삭아서 향이 박하처럼 퍼진다. 홍어집에 갔는데, 그 집 사장이 코를 주거든 며느리나 사위 삼자는 뜻이다. 애피타이저로 나오는 내장으로는 지라와 간이 있다. 지라는 좀 붉고 간은 지방이 많아서 연한 분홍빛을 띤다. 기름장에 찍어야 좋다. 입안 가득 기름기가 번지고, 그대의 입가에는 웃음이 번진다. 이것저것 다 얻어먹었는데, 이것까지 먹었다면 진짜 횡재다. 홍어 껍질 데침이다. 홍어회를 만들자면 껍질을 벗겨야 한다. 이놈을 모아서 데치면 진액이 나오는 희한한 맛이다. 비늘 있는 고기 껍데기와는 전혀 다른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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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겨울에 아이슬란드에 갔다. <광주문화방송> 제작팀과 함께 홍어를 찍으러. 이 나라는 홍어를 먹는다. 그것도 삭힌 놈으로. 홍어가 한국에서 차별의 언사로 쓰인다는 말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방송 분량이 안 나온다. 이를테면 이런 답을 듣고자 했는데.


“그래요? 이런 미친놈들. 홍어가 왜 차별의 대명사입니까?”


그런데 이런 대답이었다.


“저, 그게 무슨 뜻이에요? 음식이 왜 차별의 상징으로 쓰일 수 있죠?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흑흑.”


그랬다. 그런 대답을 들으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화가 났다.


홍어를 먹으니, 당연히 잡는 어부가 있다. 홍어가 엄청 크다. 바다가 크니 고기도 크다. 맛은 사실 좀 떨어진다. 먹이가 달라서겠지. 한 가지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다. 홍어를 잡으면, 살만 잘라 삭혀서 스테이크로 쓰고, 나머지는?


“버리죠.”


코며, 내장이며, 꼬리며, 거시기며. 아이고 아까워라. 저걸 수입해서 팔아봐?

한겨레

홍어 스테이크는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도 판다. 물론 삭히지 않은 거다. 날개(정확히 말하면 지느러미)는 일종의 샥스핀(상어 지느러미) 같다. 연골조직이 촘촘해서 스테이크용으로 기막히다. 소스는 부산물과 뼈에 화이트와인을 넣어 끓이면 된다. 찜으로 해도 맛있다. 육수와 토마토소스를 넣고 푹 조리면 서양식으로도 멋진 메뉴가 된다. 누가 이 글을 읽거든 팔아보시라. 튀김은 말 그대로 튀기는 것인데, 마요네즈를 찍어 먹으면 맛있다. 최고는 홍어라면이다. 횟감을 정리하고 나면 부스러기들과 내장이 남는다. 이걸 쓸어 넣고 끓인다. 라면수프로 간하고 면을 넣는다. 파를 넉넉히 다져서 뿌리는데, 고수가 있으면 최고다. 단, 시중에 파는 손질한 홍어회는 튀김밖에 만들 수 없다. 그냥 회로 드시라.


박찬일(요리사·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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