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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인정한 아이돌의 퇴출…‘현아’가 스스로를 말할 권리는?

현아와 이던 열애설 불거지자

기획사 큐브는 17분만에 부인

두 사람이 2년 연애 인정하자

큐브는 ‘신뢰 깼다’며 임의퇴출

 

제 목소리 내 신뢰가 깨졌다면

화보에 현아 의향은 반영됐을까

아이돌을 기획상품으로만 소비

상품 아닌 인간으로 존중해주자

연애 인정한 아이돌의 퇴출…‘현아’가

트리플에이치 활동 중 무대 위에서 다정한 스킨십을 해 열애설이 퍼지자 이를 인정한 현아(왼쪽)와 이던(오른쪽)이 소속사로부터 임의 퇴출됐다. 큐브엔터테인먼트 누리집 갈무리

지난 9월13일 오전, 큐브엔터테인먼트는 소속 가수 현아와 이던의 임의 퇴출을 발표했다. 큐브가 내세운 이유는 ‘신뢰’였다. 8월2일, 프로젝트 그룹 ‘트리플에이치’ 활동 중 무대 위에서 현아와 이던이 다정해 보이는 스킨십을 했다는 것을 근거로 열애설이 퍼지자, 회사는 열애설 보도 17분 만에 “친한 사이일 뿐 연애는 사실무근”이라며 열애설을 부인했다. 하지만 당일 저녁 현아와 이던은 <연합뉴스>와 “무대에서 팬들의 눈을 바라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우리 둘 다) 같았다”며 2년 동안 연애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인터뷰를 했다. 큐브가 말하는 ‘신뢰’란 이걸 의미한다. 회사가 극구 부인해 놓은 열애설을 두 사람이 회사와 상의 없이 인정해버린 탓에, 신뢰가 깨져 더 이상 같이 일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열애설 인정했다고 임의 퇴출

그러나 큐브의 개국공신이자 가장 큰 수익원인 현아를 퇴출한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웅성이기 시작했고, 오후 1시30분쯤엔 회사 주식이 전일 대비 9.76% 급락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회사는 몇 시간 만에 신대남 대표를 통해 “논의 중이었을 뿐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일”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여기까지도 대체 무엇이 맞는 이야기인지 싶어 혼란스러운 와중에, 큐브는 더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걸었다. 같은 날 <스포츠서울>은 큐브의 다른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퇴출은 확정된 것이 맞다. 번복되는 일은 없다”는 기사를 냈다. 퇴출한다고 했다가, 논의 중이라고 했다가, 다시 확정된 사안이며 번복은 없다고 이야기하는 이 모든 일이 하루 동안 일어난 것이다. 뭘 어쩌고 싶은 건지 모르겠는 갈지자 행보 속에서 팬들은 혼란스러웠고 주주들은 당황했으며 큐브의 주식은 이틀 동안 11% 폭락했다.


시간은 어영부영 한달 가까이 흐르고, 급기야 현아가 큐브에 쓴 자필 편지가 세간에 공개됐다. “(전략) 9월13일 퇴출 기사를 접했습니다. 직접 만나서 통보를 해도 되겠지만 말입니다. 저는 모든 걸 수용하고 9월16일 목동 큐브 회장님 댁에서 최종 합의하여 조기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껏 주주총회를 소집하여 그 결과를 통보해준다고 했지만, 그 후 지금까지 묵묵부답입니다. 한 빌딩에서 위아래 핑계를 대고 시간을 끌며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시간입니다. 두달 되는 긴 시간 동안 저는 기다리기 너무 힘이 듭니다. 오는 15일(월)까지 답신을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신사적으로 계약이 해지되기를 소망합니다. (후략)” 큐브는 지난 10월15일 “현아와 계약 해지에 합의했다. 지금까지 함께해준 아티스트와 팬분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조만간 이던의 계약관계에 대해서도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다”라는 짧은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갔으니 차분하게 되짚어보자. 열애설이 터진 건 이던의 원 소속팀 펜타곤의 팬클럽 창단을 일주일 남겨 놓은 시점이었다.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보이그룹의 경우 멤버의 열애설이 타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걸 고려하면, 큐브 입장에선 그 시점에 두 사람의 연애 사실이 밝혀지는 게 탐탁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펜타곤의 팬들 중에는 두 사람의 연애 발표에 불쾌함을 표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 놓고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큐브는 아티스트가 회사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연애를 인정한 탓에 신뢰가 깨졌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 회사는 열애설 보도 17분 만에 극구 부인하는 공식 입장을 발표할 때 현아와 이던에게 의향을 물어봤을까? 두 사람 모두에게 사실 확인을 거치고, “앞으로 이러이러한 일정이 있으니,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난 다음에 열애 사실을 공개하도록 하자”라고 설득하고 동의를 구한 뒤, 회사의 입장을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이라고 믿기에 17분은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런 과정이 선행되었다면 애초에 열애설이 부인된 직후 두 사람이 따로 인터뷰를 잡았을 일도 없었으리라. 그리고 신뢰란 쌍방이 서로를 존중할 때에만 의미를 지니는 가치이다.


물론 큐브는 앞으로 현아를, 펜타곤을, 트리플에이치를 어떤 콘셉트로 내세우고 싶은지에 대한 전략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며, 그 콘셉트를 통해서 하고 싶은 스토리텔링이 있었을 것이다. 현아와 이던의 연애 사실이 공개되면서 그러한 계획들에 차질이 생겼을 수도 있다. 중장기적인 수익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회사 입장이 난감할 것이라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유로 아티스트에게 퇴출을 통보하는 것은, 회사가 이들을 사람으로 보는 대신 철저하게 기획 상품으로만 소비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면, 사람의 사정에 맞춰 계획을 변경하고 콘셉트를 수정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큐브는 열애설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아티스트의 의향과 반대되는 입장을 공식으로 내세웠고, 열애설 때문에 신뢰가 깨졌으니 더 일할 수 없다며 퇴출을 결정했다. 상대를 사람이 아닌 상품으로 바라본 게 아닌 이상에야 일어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돌 산업에서 아티스트의 의향이 얼마나 존중받고 실제 결과로 반영되는가는 굉장히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사람 자체를 상품으로 삼아서 판매하는 산업의 속성상, 상품이 되는 당사자의 의지가 얼마나 반영되었느냐에 따라 산업을 바라보는 윤리적 판단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아는 미성년자일 때부터 섹시 콘셉트의 무대를 해왔고, 그가 한국 나이로 성년에 접어들 무렵에는 온라인에서 카운트다운을 해가며 성희롱성 발언을 일삼는 남자 팬들이 득시글했다. 큐브 또한 그런 시선으로부터 현아를 보호하기보단, 그가 성년이 되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섹시 콘셉트로 승부수를 걸었다. 현아가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보여주는 발랄하고 허술한 매력을 잘 알고 있던 팬들 중에는, 콘셉트에 별다른 변화를 주는 대신 화보나 무대의 수위만 갈수록 세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이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팬들이 그걸 인내했던 건 콘셉트 결정에 현아 본인의 의향도 반영되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애라는 가장 사적인 일조차 아티스트와의 의향 조율 없이 회사가 그 입장을 대신 밝히고, 아티스트가 본인의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신뢰가 깨졌다고 이야기한다면, 그동안 현아의 행보에 수반된 온갖 성적 대상화와 퇴폐적인 화보들을 결정하는 과정에 과연 현아 본인의 의향이 얼마나 반영된 건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현아의 새출발을 축하해주자

무턱대고 큐브만 콕 집어 부도덕하고 무능한 회사라고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현아와 이던의 사례처럼 일이 심각하게 불거진 사례가 드물어서 그렇지, 이와 같은 일들은 우리의 시야 밖에서 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큐브처럼 규모 있는 중견 기획사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큐브보다 더 규모가 작은 군소 기획사에서는 아티스트에 대한 대우와 존중이 더 열악할 것이라는 추측도 억측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케이팝 아이돌 산업 자체가 아티스트를 사람으로 대우하는 대신 성적 대상화와 인간의 상품화를 일삼는 부도덕한 측면이 극에 달한 산업이라고 지적한다. 나 또한 그 지적에 동의하지만, 이미 한국 대중문화 산업의 거대한 축이 된 이 산업을 하루아침에 다 뒤집어엎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환경을 점진적으로나마 개선하기 위해 어떤 일들이 필요할까? 글쎄,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지갑을 열어 산업을 지탱해주는 최종 소비자인 팬들이 먼저 앞장서서, 아티스트는 기획상품이기 이전에 인권을 보장받고 제 의향을 존중받아 마땅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 큐브와의 계약 해지를 마무리한 현아의 새 출발을 축하해주는 일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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