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일·안성기·최은희·전도연·강수연…우리 시대의 아이콘, 이들뿐이랴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한국영화 100년 빛과 그림자 ③ 우리의 별들
‘다작 스타’ 김진규 ‘카리스마’ 신영균
근대화 혼란 흑백 필름으로 위로
‘만년 청년’ 신성일 524번 출연하며
시대의 면면 작품으로 담아
영화의 꽃이 배우임은 물론이다. 한국영화 100주년을 빛낸 남녀 배우는 셀 수 없이 많다. 한국영화 100년의 자화상으로 ‘시대의 얼굴을 담은 배우들’ 15인을 꼽아봤다.
김승호(1918~1968)는 춘사 나운규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한국 영화사의 절대적·전설적 배우요 스타 연기자였다. 국회의원, 교수, 사장, 사기꾼, 샐러리맨 등 다채로운 배역을 소화해 냈건만, 우리들의 영원한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는 ‘로맨스 빠빠’! 강대진 감독의 <마부>(1961)는 그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형상화한 걸작. 전후 급격한 근대화 과정에서 흔들리는 시대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절절하게 구현했다.
김진규(1922~1998)는 ‘다작 스타’였으면서도 ‘지적’이었고, 진중한 이미지에 부드럽고 섬세했으며, 우수 어린 푸근함과 비애감까지 두루 겸비한 입체적·복합적 배우였다. <하녀>(김기영·1960), <오발탄>(유현목·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1961) 등 최강 걸작들의 주연을 싹쓸이했다. 이만희 감독의 유작 <삼포 가는 길>(1975)의 정씨는 무일푼이면서도 포용·배려·나눔의 서민적인, 우리 시대의 중년으로 내 심상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신영균(1928~ )은 단언컨대 “한국영화의 남성 아이콘”이다. “그 누구보다 개성적인 육체성과 호소력 있는 스타 페르소나를 통해서 급격한 근대화 과정에서 대중들이 겪었던 혼란과 모순을 대리 표출하고 또 위로했다.”(주유신 영산대 교수) 특히 <연산군>(신상옥·1961)의 폭군 연산은 내 인생의 ‘카리스마’로 각인돼 있다.
신성일(1937~2018)은? 비교 불가의 대한민국 대표 스타 아이콘! 출연 영화 524편의 다작을 ‘자랑’(?)하면서도 소모되지 않고 스타성과 동시에 생명력까지 견지했던 불가사의한 ‘영화 청년’. 80대의 나이로 고인이 될 때까지 그와 함께 머물렀던 이미지는 대한민국 ‘청춘 영화’의 대명사 <맨발의 청춘>(김기덕·1964)의 두수였다.
생명력에서 이 배우를 따를 이 있을까? 이장호의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에서 이명세의 <개그맨>(1989)에 이르기까지, 1980년대 한국영화의 페르소나였던 안성기(1952~ ). 박중훈과 환상적 ‘케미’를 이뤘던 <칠수와 만수>(박광수·1988), <투캅스>(강우석·1993), <라디오 스타>(이준익·2006) 등은 어떻고? 그가 없다면 우리 영화계는 얼마나 쓸쓸할까.
1990년대 한국영화를 빛낸 한석규(1964∼ )는 어떤가. <초록 물고기>(이창동·1997)의 막동, <접속>(장윤현·1997)의 동현, <8월의 크리스마스>(허진호·1998)의 정원이 없는 한국 영화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송강호(1967∼ )는 천의무봉의 배우. <반칙왕>(김지운·2000) 이후 <기생충>(봉준호·2019)에 이르기까지 20년 가까이 한국 영화계를 지켜오고 있다. 최민식, 설경구, 황정민 등 걸출한 동료와 선후배 배우들이 동시대를 함께 빛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표작을 특정하기 불가능한 ‘우리 시대 최고 배우’임에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병헌(1970∼ )은 ‘국제성’을 겸비한 국내 유일의 월드스타-연기자다. 김진규의 지적 풍모, 신영균의 남성다운 육체성, 신성일·최무룡의 아이콘적 외모, 안성기의 육중한 연기력, 장동휘-박노식-허장강 등의 액션 파워까지 두루 겸비. <달콤한 인생>(김지운·2005)의 선우로 그가 보여준 클로즈업은 내 삶의 영화 클로즈업이다.
‘최고 여우’ 최은희 ‘70년대 디바’ 김지미
신·구 트로이카 이끈 문희·장미희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강수연·전도연
국제성 겸비한 ‘월드 스타’ 되기도
이제 여자 배우들로 넘어가보자. 황정순(1925~2014). 김승호의 ‘엄마 버전’. “1960년대 변화하는 시대를 따뜻한 모정을 자아내는 연기를 도맡으며 한국적 어머니상을 대표”(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했던 연기자다. 김희갑과 함께 소화해낸 ‘팔도강산 시리즈’의 어머니상은 내 뇌리를 떠난 적이 없다.
한국 영화사 최고 여배우 최은희(1926~2018). 1950~70년대 한국 영화계의 여성 아이콘. 사실 그녀의 삶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녀는 부드러움만 간직한 배우가 아니다. 그녀의 부드러움 너머에는 꿈틀거리는 강함이 있다… 그녀는 내부에 불씨를 간직한 휴화산과 같은 배우였다.”(다음 ‘근현대 영화인 사전’)
아는가? ‘동양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였던 여배우를? 김지미(1940~ ). 불세출의 미모와 여장부 같은 강인한 캐릭터를 토대로 한국영화의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디바. 지미필름을 설립(1987년)해 제작자로도 활동했는데, 임권택의 <티켓>(1986)도 그중 한 편이다. 그 걸작의 ‘인간적 포주’ 지숙은 주연 아닌 조연이었으나, 김지미의 현현이었다.
누군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한 명만 대라면, 예나 지금이나 그 이름은 문희(1947~ )다. 신성일과 호흡을 맞춘 <초우>(정진우·1966)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뒤, 결혼과 더불어 은퇴할 때까지 고작 6년 동안 무려 500여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윤정희, 남정임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이끌었다.
장미희(1958~ ). 정윤희, 유지인과 함께 1970년대 여성 배우 ‘신트로이카’를 형성했던 톱스타. 배창호의 <적도의 꽃>(1983), <깊고 푸른 밤>(1985) 등 주연작의 수준에서 두 스타를 압도한다. <겨울여자>(김호선·1977)의 이화는 <별들의 고향>(이장호·1974)의 경아와 나란히 한국 영화사의 기념비적 캐릭터였다.
강수연(1966~ )은 베네치아(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 <씨받이>(임권택·1987) 등으로 일찌감치 “월드 스타”로서의 인기를 구가했던 한국 대표 여배우다. 혹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은 <처녀들의 저녁식사>(임상수·1998)의 당찬 호정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더 이상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21세기 대한민국 최고 여배우 전도연(1973~ ). <접속>부터 최근작 <생일>(이종언·2019)에 이르는 모든 영화가 대표작이다. 그중 그녀를 2007년 ‘칸의 여왕’에 오르게 한 <밀양>(이창동)의 신애가 더 애잔한 것은 나만은 아닐 터.
전찬일/영화평론가·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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