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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기회 만들어낸 27살 ‘연재노동자’ 이슬아

구독모델 개척 이슬아 작가


지난해 2월 ‘일간 이슬아’ 창간

작가가 독자에게 이메일로

직접 글 보내주고 구독료 받아

한달에 20편, 구독료 1만원


“아무도 안해봤으니 해보자 생각”

1년만에 작가들 사이에서 확산

“내 파이 줄어든 것 아니에요

구독시장 자체가 커지고 있어요”


알바, 누드모델, 만화가 등 하다

학자금 대출 갚으려 연재 시작

“하고 싶은 일, 돈 버는 일

사회 위한 일…일치시키고 싶어”

한겨레

이슬아 작가는 지난해 2월 작가가 직접 독자들에게 글을 보내고 구독료를 받는 서비스 ‘일간 이슬아’를 시작했다. 이 구독 서비스 모델은 여러 작가가 따라 하는 등 최근 출판계의 새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18년 2월, 친구에게 하나의 이름을 들었다. 이슬아. “요새 잠자기 전에 이슬아의 글을 읽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 자정을 기점으로 메일 확인을 자꾸 하게 된다니까.” 이 말은 두가지 면에서 나를 놀라게 했다. 난생처음 듣는 작가가 메일로 일일 연재를 한다니, 심지어 그 작가가 보내주는 메일을 매일 기다린다니.


이슬아 작가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그러다 ‘일간 이슬아’ 구독자를 모집한다는, 오토바이를 타고 신문을 배달하는 여성이 등장하는 노란색 포스터를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간 이슬아’는 출판사나 홈페이지 등 중간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 작가가 독자에게 이메일을 통해 직접 글을 보내주고 구독료를 받는 서비스였다.


포스터의 복고풍 감성 때문에 피식 웃다가 다음 두 문장을 마주하고 나는 숙연해지고 말았다. “아무도 안 청탁했지만 쓴다!” “날마다 뭐라도 써서 보낸다!” 패기와 성실함 없이는 불가능한 선언이었다. 내게 필요한 태도이기도 했다. 나는 이 새로운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한달에 스무편의 글, 구독료는 편당 500원꼴인 1만원이었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밤이라는 무채색 시간이 알록달록해졌다. 스물일곱살이지만 아직도 혼자 자는 게 무서운 이슬아, 두려움에 직면하면 자기도 모르게 기도하는 이슬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이슬아…. 이슬아의 이야기지만, 온전히 이슬아의 것만은 아닌 이야기였다. 그의 글은 공감하면서 상상하게 만들었다. 2018년 3월에 쓴 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각자의 몸을 정면으로 통과한 이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말하느라 막차를 놓치고 싶었다.” 그의 몸을 정면으로 통과한 이야기들이 매일 밤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 잡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기회를 만든 사람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슬아라는 사람에, 이슬아가 쓴 글에, 이슬아의 용기에 환호했다. 그리고 여러 작가가 그의 이메일을 통한 구독 모델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올해 4월, 그는 책 출판 등의 일정 때문에 잠시 중단했던 ‘일간 이슬아’의 두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천일야화>에 등장하는 페르시아 왕비 셰에라자드처럼, ‘출판계의 셰에라자드’는 매일 밤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 6월23월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카페에서 이슬아를 만났다.

“몸에 익었지만 쉬워진 건 아니에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일간 이슬아’ 두번째 시즌 연재를 시작해서 어느덧 3개월 차에 접어들었어요. 2주간 쉬었다가 초여름호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오늘로 3일째예요.”


연재가 이제 몸에 익었나요?


“익은 것 같아요. 물론 익었다고 쉬워진 건 아니에요.(웃음) 왜, 윗몸일으키기를 잘한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마감시간인) 자정이 다가올수록 긴장감이 드는 게 좋고 스스로를 몰아치는 느낌이 쫄깃합니다.”


독자들 반응은 매번 있나요?


“늘 오는데 같은 사람들이 보내는 건 아니에요. 재미없다고 하는 경우엔 허탈하죠. 한편으론 독자들의 삶을 보게 돼요. 이를테면 3교대를 하는 간호사가 잠깐 쉬실 때 제 글을 읽는다고 해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에서 잘 읽고 있다는 분도 기억에 남네요. 정말 다양한 독자들이 있구나 매일 깨달아요.”


이메일 연재라 국경을 쉬 넘나드는군요. 젊은이들이 주 구독자겠죠?


“젊은 세대가 이메일을 많이 쓰지만 딸이 이메일을 받고 그 텍스트를 복사한 뒤 채팅창을 통해 어머니께 보내주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반면, 각자 돈을 내고 따로 구독하는 부부도 있어요. 메일함이란 것은 굉장히 개인적인 수신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연결되는 기분이 들 때가 많을 것 같네요.


“네. 지난 4월호 연재 글에 2016년 10월 열악한 노동 환경을 비관하며 자살한 이한빛 피디를 언급한 적이 있어요. 얼마 뒤 그분과 군 생활을 함께한 여성 독자의 피드백을 받았어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더욱 생생해지는 기분이었어요. 세상은 참 좁고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지요.”


이슬아는 매일 글을 쓰고 보내는 일을 일방향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글이 씨앗이 되어 또 다른 이야기를 물고 돌아올 수도 있다고 믿는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일간 이슬아’를 시작했잖아요. 대출받은 학자금이 얼마였나요?


“2500만원이 조금 넘었습니다.”


돈을 갚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는데, 굳이 일일 연재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그때도 레진코믹스 등 여러 플랫폼에 웹툰을 연재하고 있었어요. 제가 그리고 싶은 만화가 아니더라도 돈을 준다고 하면 플랫폼에 맞춰 이야기를 일부러 만들었지요. 그래야 생활비를 겨우 벌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다 문득 ‘내가 제일 쓰고 싶은 걸로 작업할 수 없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죠. ‘나는 언제쯤 하고 싶은 일과 돈 버는 일이 일치할까’라고 자문하기도 하면서요. 근데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보통 40대가 되면 일치한다는 거예요.”


선생님이요?


“어딘(김현아, 작가이자 청소년 여행학교 ‘로드스꼴라’의 대표 교사)이라는 분이에요. 제가 글쓰기 모임인 ‘어딘글방’에서 17살 때부터 20대 중반까지 글쓰기를 배웠거든요. 작가가 되고 싶어서 학교 밖 글쓰기 모임에 찾아간 거예요. 어느 날 선생님이 40대가 되면 하고 싶은 일과 돈 버는 일, 사회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 같아진다는 거예요. 마법 같은 소리잖아요. 제가 아는 40대 중 그런 사람은 거의 없었거든요. 만약 내가 ‘일간 이슬아’를 연재하면 저 중 두가지 혹은 세가지를 달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40대까지 기다릴 수 없었군요.(웃음)


“지금껏 아무도 안 했으니까 해보면 재미가 있겠다, 만약 성공한다면 어떤 이유로 성공하고 실패한다면 어떤 이유로 실패할까 궁금했어요. 학자금 대출이 워낙 큰돈이라 아르바이트를 해서 갚을 수 있는 액수가 아니잖아요. 과감하게 시도해보자 이런 느낌이었죠.”


거기서 받은 글쓰기 교육이 이슬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내 이야기를 얼마큼 어디까지 잘 쓸 수 있는지 훈련하는 기회였어요. 선생님께선 다른 사람의 슬픔이 마치 내 슬픔처럼 느껴질 때가 글 쓰는 사람이 성장하는 순간이라고 말씀하셨죠. 그래서 ‘일간 이슬아’를 시작할 때, 내가 잘 본 것에 대한 글, 내가 잘 통과시키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했죠.”


‘일간 이슬아’를 하고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일간 이슬아’ 이전에는 한번도 매일 쓰는 사람인 적이 없었어요. ‘일간 이슬아’ 첫날부터 강제로 그런 사람이 되었지요. 제가 맨날 쓸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되어 좋았습니다. 마치 매일 달리기를 하며 체력을 늘려갔던 경험처럼 말이에요. 지난해 연재 글이 책으로 나왔을 때는, 웹상에서만 존재하던 작가가 책이라는 물성으로도 스스로를 소개할 수 있게 되어 기뻤어요.”

첫달 구독자 수 보고 ‘큰일 났다’ 생각

한겨레

2018년 ‘일간 이슬아’ 창간호 포스터. 중국음식점 찌라시를 패러디한 디자인으로 구독자를 모집했다. 이슬아 제공

2018년 2월부터 여섯달 동안 연재를 하는 동안 무명작가는 수만명의 팬을 지닌 인기 작가로 거듭났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엄마와 딸의 귀엽고 뭉클한 그림 에세이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문학동네)와 독립출판물 <일간 이슬아 수필집>(헤엄)을 동시에 세상에 내놓았다. 연재 글을 묶은 <일간 이슬아 수필집>은 1만부가 팔렸고 독립출판물을 취급하는 동네책방을 대상으로 한 ‘2018 올해의 독립출판’에 선정되기도 했다.


처음 연재할 때 구독자가 얼마나 됐나요?


“구독자 수는 비밀이에요. 정말이지 깜짝 놀랄 만큼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50명 정도를 예상했는데 훨씬 많았으니까요.”


그럼 연재 첫달에 ‘이거 되겠다’ 하는 자신감을 얻었나요?


“아뇨. ‘큰일 났다’고 생각했지요. 주중에 매일 글을 보내는 게 약속인데, 이것을 지키지 않게 되면 많은 이들이 화를 낼 거 아녜요. 되겠다는 생각은 두달째부터 들었어요. 왜냐면 첫달의 구독자 수가 줄지 않고 두번째 달까지 연결되었으니까요. 첫달 구독자들이 재밌게 봤다는 거잖아요.”


구독자 수의 변동은 없나요?


“대체로 비슷한데 조금씩 늘어났어요. 책도 만들어야 하고 쓰는 에너지가 다 소진돼 지난해 가을부터 올봄까지 쉬었다가 올해 4월 두번째 시즌을 시작했는데, 그때 가장 구독자가 많았어요. 제가 세월호 얘기나 윤리 문제인 동물권, 채식주의 관련해서도 심심찮게 쓰거든요. 그런 글을 쓸 때마다 구독자들이 많이 떨어져 나가요. 가벼운 재미를 위해 봤던 사람들은 이제 구독을 안 하는 느낌이에요.”


김현진(‘월간 살려줘요 김현진’), 이랑(‘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 이다(‘일간 마감’) 등 ‘셀프 연재’를 하는 작가가 늘어나고 있어요.


“잘됐다고 생각해요. 저도 처음에 동료 웹툰 작가인 잇선 덕분에 구체화할 수 있었거든요. 잇선은 후원금 형태의 연재를, 저는 구독료 형태의 연재를 생각한 거죠. 다른 창작자도 이를 활용해서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들에게 독자가 생긴다고 해서 제 파이가 줄어든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일정 수의 구독자를 여럿이 나누어 갖는 게 아니에요. 구독 시장 자체가 커지고 있어요. 서로에게 시너지가 된 거예요.”


이슬아는 21살 때인 2013년 제5회 <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에 ‘상인들’이라는 작품으로 당선된다. 소설 하나가 완성될 무렵, 마침 손바닥문학상 공지를 봤던 게 큰 행운이었다. 나중에 다른 등단 절차를 알아보기도 했지만, 수상작들을 보고 상을 못 탈 것 같아 도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글을 배우면서 다른 누군가에게 글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대상은 주로 아이들이었다. 만화가 양영순의 요청으로 2주마다 여수에 내려가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게 됐다.


여수까지 먼 길이었겠어요.


“양영순 작가님이 10살 딸과 친구들을 가르쳐줄 수 있느냐고 해서 갔죠. 제가 글도 열심히 쓰고 돈도 열심히 번다는 걸 알고 글쓰기 교사로 성장할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여수에 5년 동안 다녔어요. 새벽 기차 타고 갔다가 자정 넘어 돌아왔어요.”


처음에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일간 이슬아’를 시작했지만, 이제 그에게 글쓰기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되었다. 그는 한달에 스무편의 글을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돈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연재로 번 돈으로 사회초년생에게는 태산처럼 보이는 그 빚을 다 갚았다. 돈은 으레 돈으로만 갚을 수 있다. 글로 돈을 번다는 사실은 그가 글쓰기 노동을 하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다. 그리고 노동에 대한 대가는 아주 중요하다.


스스로를 ‘연재노동자’라고 지칭하더라고요.


“책 나온 다음엔 작가라는 호칭을 좀 더 많이 쓰는 것 같지만, 어쨌든 연재 노동이 제 일과 중에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있잖아요. 제가 이렇게 일부러 그렇게 말하는 이유도 있어요. 원고 청탁을 많이 받는데 어쩜 이렇게 돈 얘기를 안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원고료를 밝히지 않는 매체가 많다는 거죠?


“네, 되게 많아요. 저는 맨 처음 메일에 원고료와 지급일이 정확히 명시돼야 한다고 봐요. 글쓰기라는 노동으로부터 제 몸과 마음을 잘 지키려면 임금을 확실히 받는 게 중요하니까요. 시급 모르는 채로 일 시작하면 안 되잖아요.”


‘일간 이슬아’를 계속하는 데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네요.


“외부 매체 청탁을 통해 버는 원고료보다 ‘일간 이슬아’ 연재로 버는 돈이 더 많아요. 연재 전에도 스리잡 체제를 유지하며 늘 열심히 돈을 벌어왔으니 연재를 관둔다고 해도 생활은 해나갈 수 있을 듯해요. ‘일간 이슬아’가 언제까지나 유효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일간 이슬아’의 대부분은 수필이잖아요. 쓸 때 철칙 같은 게 있나요?


“누군가를 가르치려고도, 섣불리 위로하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서점의 에세이 판매대에 가면 자꾸 다 괜찮대요. 괜찮지 않아서 책을 읽을 텐데, 제목부터 괜찮다고 하니 김빠지는 거죠. 위로가 남용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위로라는 것은 희귀한 경험이잖아요. 함부로 위로하지 않고, 과시하지 않고, 가르치려 하지 않겠다는 걸 늘 기억하고 써요.”

“매일 밤 9시 글쓰기 시작, 12시 마감”

한겨레

지난달 23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이슬아 작가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그는 ‘일간 이슬아’를 연재하기 전에도 카페 아르바이트, <페이퍼> 객원기자, 글쓰기 교사, 누드모델, 만화가 등으로 돈을 벌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누드모델 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알몸 그리는 게 재미있어서 혼자 누드화를 많이 그렸어요. 몸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거든요. 전형적인 미인의 모습이 아니라서 답답했고요. 만약 알몸으로 하는 일을 하면 어떤 점에서 홀가분해지지 않을까 싶었어요.”


누드모델 경력에 대해 말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누드모델이 다른 직업보다 더 비참할 것도 없고 숭고할 것도 없잖아요. 별 망설임 없이 여러 노동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슬픔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저는 글만큼이나 몸을 보여주는 게 부끄러워요.


“좋은 포즈 취하는 걸 스케치하기 위해 다른 모델들의 알몸도 많이 봤거든요. 그때 느꼈어요. 사람의 몸이라는 게 각자 다른 아름다움이 있지만, 실은 모든 몸이 조금씩 초라하구나. 마음이 홀가분해졌어요. 살이 얼마큼 더 있고 다리가 조금 더 길고, 이런 게 안 중요해졌죠. 나와 타인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담해지고 한결 편해진 것 같아요.”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에서는 만화도 그렸어요.


“글쓰기 교사로 여수에 내려갔을 때 양영순 작가님이 너는 쉽게 읽히는 글을 쓰니까 만화를 해봐도 되겠다고 말씀했어요. 스케치북에 동그라미 그리는 것부터 시작해 가볍게 연습했는데, 놀랍게도 매일 하니까 금방 만화가가 되더라고요.”


만화를 그리면서 달라진 게 있나요?


“글도, 만화도 이야기를 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덜 설명하면서 더 잘 말하는 법을 배웠어요.”


그는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도할 때, 두려움을 이긴 건 호기심이었다. 호기심을 북돋워준 것은 용기였다. 그는 요즘 동생 이찬희(26)와 함께 ‘이슬아×이찬희 듀오’를 결성해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준다. 최근에는 작사와 작곡도 하고 있다. 잘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꾸준히 하는 것이다. 계속하는 것이다. 그것을 그는 하고 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사람은 드물고 이것도 계속하고 저것도 계속하는 사람은 귀하다. 이슬아는 귀한 사람이다. 그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일, 돈 버는 일, 사회를 위해 해야 하는 일에 대해 고민한다. 그가 글에서 계속 동물권과 환경 문제, 비거니즘(완벽한 채식주의)과 소수자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루의 일과가 어떻게 돼요?


“가능하면 일찍 자고 8시에 일어나요. 일어나서 청소하고 밥 먹고 운동하면 오전이 다 가요. 그렇게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몸이 늘 맑고 상쾌해요. 오래 앉아서 일하는데 몸이 망가지지 않으려면 근육이 받쳐줘야 하거든요.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는 날엔, 씻지 않고 책을 들고 나가요. 일어나자마자 책 읽는 것이 되게 좋더라고요. 낮과 밤에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느라 정신이 산만한데, 아침은 나만의 고유한 시간인 것 같거든요. 오후에는 글쓰기 교사로 출근하거나 메일 응답 같은 업무를 하고 저녁이 될 때쯤 글을 쓰기 싫어하기 시작하는 시간이 찾아와요.(웃음) 그러니까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그때는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많이 해요. 밤 9시부터 ‘일간 이슬아’를 진짜 쓰기 시작합니다.(‘일간 이슬아’는 매일 자정 즈음에 발송된다.)”


궁극적인 목표는 소설가라고요?


“어떤 이야기에는 악한 목소리로만 드러낼 수 있는 진실이 있어요. 그런데 저를 화자로 세워놓고는 그렇게까지 악해질 수 없어요. 실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말하게 되면, 그의 저열한 부분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드러낼 용기가 없어지는 거죠. 선한 이야기도 세상에 필요하겠지만 저는 좀 답답해요. 지독한 이야기가 잘 말할 수 있는 게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소설을 쓰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 게 될까요?


“저와 주변을 더 비건적인 신체이자 사회로 만들기 위해 효과적으로 노력하고 싶어요. 운동복 모델도 하고, 작가로서도, 헤엄 출판사 대표로서도 성장하고 싶고요.”


그는 언제나 쓰는 사람이자 언제든 배울 준비가 된 사람이다. 돌아오는 길에 프랑스의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말이 떠올랐다. “실패하고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 글쓰기는 실패를 거듭하는 일이다. 더 잘 넘어지기 위해 다시 일어나는 일을, 이슬아는 하고 있다. 녹취 원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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