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의 등산로, 거기 새로운 산이 있다
알고 쓰는 등산장비 이야기
절벽에서 길을 찾는 암벽등반…생각보다 안전
인수봉을 오르는 등반자. 같은 산이지만 수직의 길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
우리나라 국립공원 중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산은 북한산이다. 인구의 절반이 사는 수도권에 있고 대중교통으로도 쉽게 접근이 가능한데다, 다양한 등산로와 함께 북한산의 정상인 백운대의 웅장함과 거기에서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풍광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백운대를 수십번 올라갔었다. 백운대에서 서울 시내 방향으로 향한 눈길을 반대편으로 돌리면 또 하나의 진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인수봉이다. 육안으로는 백운대(836m)와 비슷한 높이의 인수봉(811m)은 한 덩어리의 화강암으로 보이는 절벽이다. 그런데 그 절벽에 개미처럼 많은 사람이 매달려 있다. 20여년 전 어느 날 나는 그 사람들을 보면서 깎아지른 저 절벽에도 길이 있음을 알았고, 암벽등반에 입문하게 되었다. 절벽에도 수직의 길이 있다. 하지만 반드시 등반 장비가 있어야 갈 수 있으며, 사용법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안전 장비는 선택 아닌 필수
암벽을 오르는 방식에 따라 인공등반(aid climbing)과 자유등반(free climbing)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인공등반은 등강기나 줄사다리 등의 보조 장비를 이용하여 오르고, 자유등반은 장비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등반자의 능력으로 오른다. 여기서 ‘자유’의 의미는 장비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가지 유의할 점은 장비에 ‘의존하지 않고’ 등반한다는 것이 장비 ‘없이’ 등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런 장비 없이 단독으로 등반하는 것은 솔로등반, 또는 프리 솔로(free solo)라고 따로 분류한다. 장비에 의존하지 않는 자유등반에서도 앞에 오르는 사람이 추락할 경우 큰 부상을 당하지 않도록 안전 조처를 마련해주어야 하고, 정상에서 하강을 할 때는 반드시 안전한 장비를 사용해야 한다.
중력을 거슬러 수직의 길을 오르는 암벽등반은 자칫 발을 잘못 딛거나, 바위를 잡은 손이 미끄러지면 추락하게 된다. 추락은 심각한 부상이나 사망 사고로 이어진다. 그래서 다른 어떤 아웃도어 활동보다도 안전 장비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암벽등반 장비들은 최소한 수십년간 그 안전성이 입증된 것들이며, 정확한 사용법을 숙지하고 매뉴얼대로 사용한다면 안전하게 등반을 즐길 수 있다.
개인 암벽장비를 모두 착용한 등반자가 북한산 인수봉에 서 있다. |
지표면까지의 추락을 막기 위해 2명 이상 서로 줄을 묶어서 등반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등반 장비는 개인마다 모두 갖춰야 하는 장비들이다. 맨 앞에서 등반하는 사람을 선등자라고 하는데 선등자는 좀 더 많은 장비가 필요하다. 여기에서는 선등자의 뒤에서 등반하는 후등자 기준으로 필수 장비를 알아보자. 암벽등반을 위한 필수 장비는 헬멧, 하니스(전신벨트), 하강기, 카라비너(로프 등 장비를 고정하는 고리), 암벽화, 로프 등이다. 그중 로프는 등반 루트에 따라 개인마다 모두 갖춰야 하는 것은 아니다.
헬멧은 추락했을 때 머리 부상을 최소화해줄 뿐 아니라 정상적인 등반 도중 위에서 떨어지는 낙하물로부터 머리를 보호해준다. 등반용 헬멧은 가볍고 견고한 소재로 만드는데, 장시간 격렬한 신체활동을 해야 하므로 공기가 통하도록 중간중간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하니스는 허리에 둘러매는 안전벨트인데 등반자가 거꾸로 매달려도 이탈하지 않도록 양쪽 다리 허벅지를 모두 끼울 수 있게 되어 있다. 하니스는 로프를 연결하고, 바위의 각종 확보물에 체결하여 등반자의 추락을 예방한다.
카라비너는 각종 확보물이나 로프를 하니스와 연결하는 용도로 쓰인다. 선등자는 루트에 따라 10개 이상의 카라비너가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후등자 역시 2~3개의 카라비너를 항상 가지고 등반하는 게 좋다. 캠핑 소품으로 사용하는 액세서리 카라비너는 절대 등반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등반 장비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카라비너는 국제산악연맹(UIAA)의 인증을 받은 암벽등반용을 사용해야 한다.
북한산 인수봉 절벽을 등반하는 사람들. |
의외로 안전한 아웃도어 활동
암벽등반은 바위를 오르는 행위뿐 아니라 정상에서 안전하게 하강하는 활동을 포함한다. 하강기는 로프를 타고 내려올 때 로프에서 이탈하거나 급격하게 미끄러져 추락하는 것을 막아주는 장비이다. 대부분의 하강기는 함께 등반하는 사람의 추락을 예방하는 확보 기능을 가지고 있다.
암벽화는 접지력이 뛰어난 고무 소재의 밑창을 가지고 있으며, 바위의 작은 돌기나 틈을 잘 디딜 수 있도록 발가락 쪽이 일반 등산화보다 빼죽하게 되어 있다. 평소 신는 신발보다 조금 작은 크기를 선택하는 게 좋다.
그 외에도 안전을 위한 필수 장비는 아니지만 하강을 하거나 다른 등반자와 연결된 로프를 잡을 때 등반장갑을 끼면 좋고, 손이 땀에 젖으면 미끄럽기 때문에 손을 건조하게 해주는 초크가루와 초크를 담는 초크백 등도 필요한 장비들이다.
암벽등반은 생각보다 매우 안전한 아웃도어 활동이다. 다만 필수 장비를 반드시 갖춰야 하며 그 사용법을 정확하게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 좋은 가을날 수직의 길로 산에 올라보자. 거기 새로운 산이 있다. 다음 편에서는 다른 암벽등반 장비 종류와 사용법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본다.
글·사진 이현상 그레이웨일디자인 대표, <인사이드 아웃도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