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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중기·김동욱·윤박 가르친 이 남자 “뿌듯하냐고요? 다 제 라이벌인걸요”

조연이 주연이다 이준혁


‘내 안의 그놈’ ‘증인’ 등 잇달아 출연

영화·드라마 수백편, 한해 16편 찍기도

‘모션 캡처 1세대’ 마임 전문가에

태권도·우슈·현대무용·발레까지 만능

“연기력 부족해도 다시찾는 배우,

송강호·김명민 사이 접점 찾기 중

이젠 다양한 배역에 목이 마르죠”

송중기·김동욱·윤박 가르친 이 남자

<내 안의 그놈>, <언더독>, <그대 이름은 장미>, <증인>….


연초 극장 나들이에 나선 관객은 이 모든 영화에서 그를 만나게 된다. <내 안의 그놈>에서는 판수(진영·박성웅)의 뒤를 책임지는 오른팔 만철로, <언더독>에서는 자유를 찾는 뭉치 일행의 뒤를 쫓는 사냥꾼 목소리로, <그대 이름은 장미>에서는 파출소 경찰로, <증인>에서는 돈밖에 모르는 생리대 회사 시이오(CEO)로…. 이름만 들을 땐 고개를 갸우뚱할 지 모르지만, 얼굴을 보면 모두가 “아~ 저 배우!”라고 입을 모으는, 이준혁(47)이다.


“잘 생긴 이준혁 아니에요. 언젠가 한 번은 멜로 시나리오가 들어와서 깜짝 놀라 ‘이게 무슨 일?’ 했더니, 잘생긴 이준혁한테 갈 시나리오가 착오로 저한테 온 거예요. 하하하. 저는 주로 강간범·도둑, 뭐 이런 범죄자 역할을 많이….”


최근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배우 이준혁은 개그맨보다 더 재치있는 입담으로 인터뷰를 ‘방해’했다.


포털마다 정보가 달라 데뷔작부터 ‘아리까리’하다. “전부 잘못된 정보네요. 저는 스크린으로는 민규동·김태용 감독의 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인 <창백한 푸른 점>(1998)으로 데뷔했어요. 그 이후 두 감독이 <여고괴담2>(1999)를 찍었는데, ‘너는 여자도 아니고 고딩도 아니니 안 된다’고 출연을 안 시켜주더라고요. 하하하.”

송중기·김동욱·윤박 가르친 이 남자

사실 그는 군을 제대한 1995년부터 극단 백수광부에서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모두가 그랬듯 배고픈 시절이었다. “연극 할 땐 돈을 아예 안 주는 경우가 다반사였죠. 어느 날인가 극단에서 오늘은 좌석이 꽉 찼다며 봉투를 하나씩 주는 거예요. 너~무 좋아서 열어보니 ‘천원’이 들어있는 거예요. 얼마나 화가 나던지…. 천원밖에 안 줘서 화가 난 게 아니라 ‘봉툿값 쓰지 말고 그냥 1200원씩 주지’라는 생각에 화가 치민 거죠. 하하하.”


어릴 땐 영화감독이 꿈이었다. 영화를 좋아했던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부터 <스타워즈> 등을 개봉관에서 보며 자랐다. 중·고등학교 땐 프랑스문화원에서 살았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영화사에서 청소와 잔심부름을 하던 그에게 당시 제작부장이 던진 “너의 시각이 중요하다. 그걸 배우려면 대학로로 가라”는 말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그분이 저의 은인이자 원수라니까요. 하하하.”


연기 중에도 몸으로 하는 ‘마임’이 그의 전문 영역이었다. <늑대소년>(2012) 송중기의 늑대인간 연기지도를 했고, <미스터 고>(2013)의 고릴라 연기를 담당했으며, 게임 <리니지>의 캐릭터 동작을 만든 그는 우리나라 ‘모션 캡처 1세대’ 중 한 명이다. “좋은 말로 한국의 앤디 서키스지. 모션 캡처는 얼굴이 안 나오니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초상권도 없으니까요. 그래도 저의 유일한 밥벌이였어요. 그 덕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7~8년 강의도 했고요.” 당시 가르쳤던 학생 중엔 김동욱, 윤박 등 유명 배우도 많다. “뿌듯하냐고요? 다 저의 경쟁상대인데요? 하하하.”

송중기·김동욱·윤박 가르친 이 남자

셋째까지 태어나고 “기저귓값·분윳값이 많이 들어” 본격적으로 영화와 드라마 판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사랑하는 연극을 딱 끊고” 3년간 프로필만 만들어 돌렸다. 배수진을 친 셈이다. “당락에 상관없이 이건 오늘의 일과라고 생각하며 닥치는 대로 오디션을 봤어요. 3년쯤 되니 단역이 하나둘 들어오더라고요.” 그렇게 영화·드라마 수백 편에 조·단역으로 출연했다. 최고 16편까지 찍은 해도 있었다. “조·단역은 통편집 당하는 경우도 많으니 출연작이 헛갈려요. 영화 <끝까지 간다>도 현장에서 김성훈 감독이 너무 웃긴다고 해놓고 싹 들어냈더라고요. 괜찮아요. (출연료) 입금은 됐으니까. 하하하.”


특이한 배역도 많았을 터. “<애니멀타운>에서 소아성애자, <장산범>에서 귀신, <증인>에서 대기업 시이오 처음 해봤네요. 범죄자·강간범 이런 건 너무 많이 했던 ‘루저’ 역의 몇 가지 유형 중 하나일 뿐이죠.” 그는 “연기력은 부족해도 재구매율은 높다”고 자랑했다. 대부분 한 번 작업한 감독은 다시 그를 찾는다. 한 번 만나면 3편은 기본!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장내관, <백일의 낭군님> 박복은 아전, <내 안의 그놈> 만철은 그를 대중에게 가장 강하게 각인시켰다. 작품마다 서로 다른 유형의 코믹연기를 선보이는 것이 강점이다. “애드리브가 상당히 많아요. 하지만 슛 들어가기 전 미리 허락을 받죠. 슛 들어가서 애드리브 하는 건 상대 배우에게도 예의가 아니니까. 늘 송강호와 김명민 사이에서 접점을 찾으려고 합니다. 본인을 그대로 극에 대입하는 송강호와 극 중 인물로 완벽하게 변신하는 김명민, 그 어디쯤?” <내 안의 그놈> 속 명대사 ‘카라멜 마끼아또와 망고 프라푸치노가 나왔네요’ 역시 애드리브다. “특히 이 대사를 치기 전 진동벨이 드르륵 울리는 것처럼 손을 떠는 디테일이 핵심이에요. 그런 작은 부분을 만들어내는 것이 배우의 능력이죠.”


푸근한 아저씨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공수부대 출신이다. <내 안의 그놈> 속 멋들어진 액션 연기의 숨은 비밀이다. 여기서 한 번 더 반전매력. “태권도, 우슈뿐 아니라 현대무용·발레도 배웠어요. 경험에 돈과 시간을 쓰면 언젠가 다 쓸모가 있더라고요.” <언더독>의 사냥꾼 목소리 연기에도 비밀은 있었다. “사촌 누나가 성우인데, 저도 성우시험을 본 적 있어요. 물론 떨어졌지만. 하하하. 더빙은 말로 하는 액션이죠. 말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몸으로도 연기하는.”


그렇게 많은 작품을 하고도 그는 아직 목마르다고 했다. “이제 돈에 목마르다기보단 배역에 목이 말라요. 돈을 생각하지 않을 여유가 생긴 게 좋아요. 다음 번엔 격정 멜로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욕망의 불나방 같은? 서로 합의 하에 하는 사랑 말예요. 지금까지 주로 합의 없이 사랑하는 배역만 맡아서…. 하하하.”


글 유선희 기자, 사진 각 영화사·방송사 제공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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