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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흐르는 물 보며 ‘물멍’ 때리러 갈래요?

지난 장마에 누운 나무도 잎 피는 길


곡성읍~섬진강 출렁다리 강 따라 12.6㎞


1박 2끼 포함 3만6000원 여행 상품도

한겨레

지난 2일 해 뜰 무렵 전남 곡성군 곡성읍 신리 ‘침실 습지’ 풍경.

강이나 계곡 트래킹(도보 여행)을 해 본 이라면 알 것이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물을 계속 바라보게 된다는 걸. 바닷가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와는 조금 다르다. 파도가 빙벽 두른 마음을 산산이 깨트린다면, 강물은 배배 꼬인 감정을 천천히 아래로 흘려보낸다. 까까 머리처럼 연둣잎 피는 봄날 섬진강은 언제나 ‘옳다’. 벚꽃은 이미 엔딩 크레딧 자막이 올라가는 중이지만, 잎은 이제 막 물오르고 있다. 섬진강은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전북 진안에서 발원해 남원, 곡성을 지나 구례, 하동, 광양으로 이어진다. 벚꽃길로 유명한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 섬진강은 가 봤지만, 곡성은 처음이었다. 지난 1~2일 섬진강 따라 12~13㎞ 걸었다. 멍하니 물만 바라보며 걷는 ‘물멍’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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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곡성 여행자 라운지’에서 배달해 준 점심 도시락.

여느 때 같으면 홀로 지도 보고 길 찾아갔겠지만, 이번엔 걷기 여행 상품을 이용했다. 가격에 혹했다. 1박 2일 동안 3만6000원 내면 민박 또는 게스트하우스 숙소와 두 끼 도시락을 제공한다. 주변 식당, 상점에서 현금 대신 쓸 수 있는 2만원권 지역 상품권도 준다. 기점으로 돌아올 때 타야 하는 군내 버스비 현금 1000원과 기념품, 간식은 덤이다. 곡성 주민 8명이 참여하고 있는 협동조합 ‘섬진강 두꺼비’가 운영하는 ‘섬진강 물멍 트레일 워킹’ 상품이다.(총 거리 12.6㎞)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원하는 지역 단위 농촌관광 사업 ‘곡성여기애’ 상품 중 하나다. 농림축산식품부와 곡성군청이 여행 경비 70%를 지원해 1박 2일 3만6000원이라는 비현실적인 가격을 책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가격만큼이나 ‘착한 여행’을 추구한다. 이른바 ‘생태 관광’이다. 여행자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자연 생태계, 지역 주민과 상생을 도모하는 여행이다. 지역에서 난 농산물로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수거하고 지역 상품권을 배부해 지역 경제에 보탬을 준다. 하루 최대 15명, 팀별 최대 4명까지 예약을 받아 개별 자유여행으로 운영해 사회적 거리 두기도 실천한다.


지난 1일 오전 11시 곡성읍 카페 ‘그리곡성 여행자 라운지’부터 줄곧 물 따라 걸었다. 영운천, 곡성천, 섬진강 따라 길이 이어진다. 벚꽃은 ‘기차 마을’ 주변을 물들였고 흰뺨검둥오리 두 마리는 사이좋게 곡성천을 유영했다. 곡성천 둑길 따라가면 침실 습지 전망대를 만난다. 점심 장소다. ‘그리곡성 여행자 라운지’에서 도시락을 배달해줬다. 주먹밥 2개, 크로켓 2개, 김치, 도토리 전, 두부 샐러드, 연근, 방풍나물 장아찌, 월남쌈 등이다. 음료는 식혜와 커피를 제공한다. 곡성 지역 특산물 토란과 지역에서 채취한 각종 농산물을 재료로 쓴다. 쉼터 의자에 앉아 섬진강 바라보며 순식간에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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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물결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빛나는 침실 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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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은 지난여름 장마로 침수 피해를 보았다. 습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침실습지 전망대까지 물이 넘쳤다고 한다. 습지 버드나무들도 머리끝까지 잠겼다. 물이 빠지자 나무들은 기울어지고 꺾이고 쓰러져 있었다. 그 뒤 처음 맞은 봄, 뿌리만 간신히 땅에 붙인 채 바닥에 누워버린 버드나무에서도 잎이 돋아났다. 무성했던 가지가 반 토막 난 버드나무도 다시 가지를 뻗고 잎을 피워 균형을 잡아갔다. 그사이 새로 자란 것처럼 보이는 키 작은 버드나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늘로 줄기를 곧게 뻗었다.


침수를 겪고 다시 잎 피는 습지에선 왠지 모를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역경을 딛고 다시 삶을 꾸려가는 광경처럼 보인다. 추선호(47) 섬진강 두꺼비 대표는 “지금 침실습지에선 지난해 여름 물 사태로 피해 입은 자연이 스스로 일어서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곳곳에 모래톱과 작은 웅덩이도 많아져 새와 수생식물이 머물 공간은 오히려 더 넓어졌다”고 말했다. 이날 걷기 참가자는 총 3명. 광주에서 지역 일간지 단신 기사를 보고 왔다는 최광석(60)씨는 “운동도 할 겸 섬진강을 한번 걸어보고 싶어서 왔다”며 “흐르는 강물과 습지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고 말했다.


침실습지는 2016년 11월 국내 하천 습지로는 처음으로 국가 습지 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생물 다양성이 뛰어나고 생태적 가치가 우수하다고 평가받은 것이다. 멸종위기종 1급 수달(천연기념물 제330호)과 흰꼬리수리(천연기념물 제243-4호), 멸종위기종 2급 삵, 남생이, 새매, 새호리기, 큰말똥가리 등 총 665종 생물이 서식한다. 습지 면적만 약 203만7000㎡(61만6000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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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마을에서 섬진강 따라 달리는 증기기관차 닮은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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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침실습지부터 섬진강이다. 남쪽 구례 방향으로 걷는다. 침실습지 전망대에서 나무다리와 ‘퐁퐁 다리’(구멍 뚫린 철제 다리)를 건너 강변 자전거 길을 따라가면 된다. 섬진강은 봄 풍경으로 가득했다. 멀리 푸른 산엔 산벚꽃이 듬성듬성 흰 무늬를 입혔고, 가까운 강변 키 큰 나무들은 연둣빛으로 반짝였다. 강가엔 이따금 홀로 낚시하거나 재첩 줍는 이들이 보였다. 봄바람 맞으며 자전거 타는 사람들, 곡성읍 ‘기차마을’에서 출발해 벚꽃길 달리는 증기기관차 닮은 기차까지, 모두가 봄이었다. 그런데도 대부분 시간 동안 강물을 바라보며 걸었다. 흐르는 강물을 보면 마음이 편해졌다. 어느덧 ‘도깨비 마을’(국내외 도깨비 조각상 1000여기를 전시하는 유아숲체험원) 입구와 한옥 카페 ‘두가헌’을 지났다. 이쯤이면 거의 다 온 것이다. 섬진강 출렁다리를 건너 반대쪽 강변 따라 약 15분 되돌아 걸으면 된다. 강 숲을 끼고 걷는 길이다. 침수를 겪어 흐트러지고 쓰러진 나무와 짙푸른 초목이 공존하는 곳이다. 종착지인 두계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군내 버스를 타면 다시 곡성읍 기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다음날 새벽 침실 습지에 다시 찾아갔다. 이맘때쯤 일교차가 심한 날엔 강 안개가 피어오른다고 했다. 해돋이도 보고 운 좋으면 수달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새벽 6시 여명이 밝아왔다. 강 안개와 수달은커녕 해마저 구름에 가렸다. 구름 사이를 간신히 비집고 새어 나온 빛이 강을 물들였다. 노르스름한 잔물결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빛났다. 쓰러진 나무에 핀 잎도 빛으로 반짝였다. 그제서야 생각했다. 이 작은 빛줄기야말로 나무엔 아주 귀한 것이리라.

섬진강 ‘물멍’ 여행 수첩


여행 방법: 여행자 라운지 ‘그리곡성’(전남 곡성군 곡성읍 읍내18길 6/061-363-5650)에서 진행하는 ‘섬진강 물멍 트레일 워킹’은 사전 예약제다. 오는 25일까지 하루 최소 2명 이상, 최대 15명까지 예약 받는다. 팀별 4명까지 예약할 수 있다. 민박 또는 게스트하우스 숙박과 두 끼니(도시락) 포함해 1인당 3만6000원. 현장에서 지역 상품권(2만 원권)과 군내 버스비(현금 1000원), 기념품, 간식을 제공한다. ‘그리곡성’ 누리집(blog.naver.com/and_gs) 참고.


7일 현재 오는 25일까지 주말은 매진됐다. 평일에 가기 어렵다면 지도를 보고 전남 구례 방향으로 곡성천과 섬진강 따라 걸으면 된다. 초반엔 곡성천을 왼쪽에 끼고 걷다가 이화교를 건너서 오른쪽에 끼고 걸으면 침실습지 전망대를 만난다. 침실습지에서 나무 다리와 ‘퐁퐁 다리’를 건너 줄곧 섬진강을 오른쪽에 끼고 강변 자전거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섬진강 출렁다리를 건너서 반대쪽 강변 자전거 길 따라 되돌아 걸어 나오면 된다. 가다 보면 큰 대로변으로 나가는 길이 보인다. 그 대로변에 두계마을 버스정류장이 있다. 군내버스를 타고 곡성역 근처로 올 수 있다.


기타 정보: 여행자 라운지 ‘그리곡성’은 곡성역(KTX 정차역)에서 도보 10분 거리다. ‘섬진강 기차마을’(곡성군 오곡면 기차마을로 232/061-360-8379) 입장료는 성인 기준 5000원, 하루 5차례 운행하는 증기기관차 이용료는 별도.(성인 왕복 좌석 기준 9000원) ‘섬진강 도깨비 마을’(곡성군 고달면 호곡도깨비길 119-97/061-363-2953) 입장료는 성인 기준 5000원. ‘도깨비 마을’ 입구에서 오솔길 따라 약 1㎞ 걸어 들어가야 한다. 좁은 임도 따라 차량으로도 주차장까지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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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전남)/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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