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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 아니어도 좋아…걸으며 느끼는 양양의 봄 [ESC]

커버스토리 강원도 양양 걷기 여행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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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대표 여행지인 강릉이나 속초에 밀려 변방 취급받던 양양이 전국권 여행지로 뜬 데는 서핑의 영향이 컸다. 2015년 ‘국내 첫 서핑 전용 해변’을 모토로 ‘양양 서피비치’가 하조대 일대에 들어서면서 20~30대 서퍼들이 이곳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세련된 카페와 상점들, 게스트하우스들이 덩달아 문을 열고, 고급 브랜드 팝업스토어나 대기업 신차 시승 행사 등도 열리면서 양양은 서퍼가 아니어도 찾는 이가 빠르게 느는 여행지가 됐다. 양양군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양양을 찾은 관광객이 130만명에 이른다. 사람이 몰리면서 양양도 소란스러운 곳이 됐다. 고즈넉함을 선호하는 이들이 방문할 이유가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찾아보면 양양에도 수수하고 소박한 여행지가 많다. <한겨레>가 그중 몇곳을 골라 걷기 여행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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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제교육원(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선사유적로 840) 정문에서 리조트 ‘솔비치 양양’ 방향으로 도로(군도 5호선)를 따라 3~4분 걸어가면 ‘솔바람산책길’이란 글자가 적힌 팻말을 발견한다. 이 코스 걷기 여행의 시작점이다. 헐렁하게 쳐진 ‘주차금지’ 경고 줄을 넘어 바다 쪽으로 향하면 희한한 소리가 들린다. 이곳을 찾은 지난 5일은 바람이 세찬 날이었다. 웅웅웅. 우우웅웅. 4년 전에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탄 적이 있다. 굵어진 빗발이 연신 열차 유리창을 치며 울었다. 밤이 내려앉아 새까매진 창은 빗소리에 옅은 공포를 얹었다. 그 소리는 마치 쇠줄에 묶인 짐승의 울음 같았다. 양양에서 맞닥뜨린 그 소리, 웅웅웅. 홀린 것처럼 그 소리에 빨려 들어가 도착한 곳은 송전해변. 거친 파도가 부르는 소리였다. 여행객은 한명도 없었다. 황명숙 양양군청 관광과 팀장은 “서퍼나 관광객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매우 조용한 해변”이라고 말한다. 이곳이 알려지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여름만 해도 이 일대에는 군사용 철책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지난해 가을, 양양 낙산대교에서 송전해변으로 이어진 철책은 동해안 군 경계철책 제거 사업의 일환으로 철거됐다. 지역민들이 오솔길 조성에 나선 것도 이때부터다. 최진만(61) 손양면 가평리 이장은 “주민들을 위한 산책길을 만들었다. 소나무가 울창했는데, 걷기 수월하게 솎아냈다”고 한다. “외지인은 모르는, 지역민만 아는 숲길”이라고 강조했다.


송전해변을 뒤로하고 돌아서면 본격적인 ‘솔바람 오솔길’ 여행이 시작된다. 해변을 따라 걷는 산책은 더는 하기 어렵다. 부대가 주둔해 있다. 민간인 출입을 금지한다. 부대장 명의의 경고판엔 이렇게 적혀 있다. “이를 위반한 이는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제24조에 따라 처벌받는다.”


이내 소나무들 사이에서 화살표 모양의 흰색 팻말을 발견한다. 인적이 드문 오솔길에서 방향타가 되는 나침반인 셈이다. 화살표를 따라가지 않으면 무덤을 만날 수도 있다. 최 이장은 “오래전부터 있던 것인데, 세월 따라 내려앉은 이름 없는 무덤들”이라고 했다. 대낮이라도 막상 그 앞을 지날 때는 호러 영화가 생각난다. 하지만 산 자가 죽은 자에게 두려움을 갖는 건 성찰이 부족해서다. 그 어떤 삶이었든지, 지난한 세월을 견뎌냈다는 면에서 산 자는 죽은 자에게 경외감을 가져야 한다.


곧게 뻗은 이곳의 소나무는 곧 마음의 평화를 찾아준다. 어린나무도 보인다. 안식을 속삭인다. 정부가 탄소흡수원으로 인증한 ‘산림탄소상쇄의 숲’이다.


오솔길은 솜이불 같다. 전날 온 봄비로 후드득 떨어진 솔방울이 말똥처럼 널브러져 있다. 걷다 보면 부대 초소가 나온다. 사진 촬영은 금지다. 이윽고 길이 두갈래로 나뉘는데 왼쪽으로 가면 소규모 운동시설이 보인다. 오른쪽 길 끝엔 강원국제교육원 건물이 있다. 달고 짠 도시 걷기 길과 다르다. 수수한 오솔길이다.


☞‘솔바람산책길’ 팻말-송전해변-화살표 모양 흰색 팻말-군부대 가평초소 문-강원국제교육원: 대략 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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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어 떼가 몰려왔네. 신기해라.” 지난 4일 남대천을 찾은 속초 주민 이보배(60)씨가 샛강에서 발견한 황어를 보며 말했다. 산란기(4~6월)를 맞아 고향 남대천으로 돌아온 것이다. 오대산 두로봉에서 발원해 양양군 양양읍을 관통하는 남대천에 너비 3m, 길이 약 2㎞ 남짓의 인공 샛강 조성이 시작된 때는 2017년. 2014년부터 추진한 남대천 정비사업 ‘남대천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결과다.


양양교에서 북쪽으로 걷다 보면 반겨주는 게 샛강 황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화살처럼 구부러진 징검다리 2개. 260개가 넘는 돌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다. 왕복 시간은 15분. 여행객들에겐 신기한 볼거리지만 지역민에게는 생활 수단이다. 소비적인 관광을 지양하고 지역민의 삶에 파고들어 그들과 교류하는 ‘로컬 여행’의 중요성이 점점 더 대두되는 요즘이다. 징검다리뿐만 아니라 양양대교 교각에서 발견한 중국집 전화번호는 지역민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로컬 여행’에 닿아 있다.


양양대교 왼쪽 도로를 3~4분 걸으면 연창빗물펌프장이 보인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나무가 일렬로 도열해 있는 ‘남대천 벚꽃길’도 나타난다. 지난 5일 이곳의 벚꽃은 전날 온 비로 일부는 눈송이처럼 바닥에 떨어져 흔적도 없지만, 여전히 악착같이 매달려 봄의 마지막을 배웅하려 애쓰는 꽃잎들이 남아 있다. 설사 다 떨어지고 한송이만 남았다 한들 어떠리. 계절의 마지막 자취를 목격하는 것도 여행의 맛이다.


☞양양교-징검다리 왕복-양양대교-연창빗물펌프장-남대천벚꽃길-낙산대교: 대략 1시간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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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면사무소(양양군 강현면 정암리 450-4)에서 도로를 건너면 데크길이 펼쳐진다. 이 길 아래 몽돌해변이 이어진다. 해변엔 성인 얼굴만한 큰 돌부터 달걀 모양의 작은 몽돌까지 섞여 있다. 평지를 걷는 것보다 힘이 두배 든다. 발목을 다칠 수도 있다. 등산화를 추천한다.


차르르. 몽돌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가 사뭇 예사롭지 않다. 음악 소리 같다. 클래식이나 가요, 팝송이 아닌, 최근 고인이 된 세계적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평생을 바쳐 만든 독특하고 창의적인 그런 소리 말이다. 그는 음악이란 ‘시간예술’이라고 했다. “직선적인 시간 속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켜나가는 창작 활동“이라고 말이다.(<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몽돌해변에서의 시간도 ‘직선’일까. 도보 여행자에겐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강현면사무소 건너편 데크길-정암 몽돌해변-헤밍웨이길 팻말 : 왕복 1시간 남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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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막국수와 자연농원


여행지 변화의 실제 근간은 지역민과 이주민의 삶이 교차하면서 자리 잡게 마련이다. 양양도 예외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문 연 ‘단양면옥’ 사람들과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양양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팜일레븐(11)’ 가족들이 대표적이다. 양양의 ‘올드 앤 뉴’인 이들을 지난 4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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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맛집 단양면옥


“개업일은 잘 몰라요. 그냥 일제 때 연 것만 알죠.” ‘단양면옥’(양양군 양양읍 남문6길 3) 주인 장성금(63)씨는 말한다. 시어머니 윤을옥(2014년 작고)씨의 시어머니인 조영희(1965년 작고)씨가 창업자다. 창업자 조영희씨는 16살에 결혼하면서 고향 충북 단양을 떠나 양양에 정착했다. 식당 이름에 ‘단양’이 들어가는 이유다. 그는 막국수를 말기 시작했다.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해 국수를 익혔다. 농부였던 남편이 땀 흘려 키운 농산물이 재료였다. 장날에만 팔았다. 맛이 좋았다. 문전성시는 당연한 결과. “할머니는 손맛이 좋았어. 소주도 좋아하셨지.” 장씨의 남편이자 단양면옥의 또 다른 주인인 고광휘(69)씨의 누이 광옥(72)씨가 거든다. 벚꽃 피는 계절에 특히 많이 팔려 ‘벚꽃 막국수’라고 불렸다.


시어머니(조영희)의 맛을 며느리(윤을옥)가 이었다. 그는 1965년부터 함흥냉면을 팔기 시작했다. 새 역사가 얹어진 것이다. 가게도 지금 자리로 옮겼다. 면 위에 올라가는 가자미무침을 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70년대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했어.” 장씨가 흐릿한 기억에 기대 시어머니를 반추하자 광옥씨도 회상에 잠긴다. “인자하시고 음식 만드시는 것 좋아했지. 남에게 해 먹이는 것 특히 즐거워하셨어.”


3대로 이어진 맛의 비결은 재료와 양념 배합 비율에 있다. 장씨는 말한다. “메밀도 동네 방앗간에서 직접 빻아 쓰고 가자미도 동해안 거죠.” 막국수 식당 대부분은 업소용 포대 메밀가루를 쓴다. 정성스러운 재료 준비가 100년 된 맛집의 품격을 잇는 요소였던 것. 고추장이 아닌 고춧가루를 양념 재료로 쓰는 것도 신의 한수. 고추장은 자칫 텁텁한 맛을 낼 수 있다. 장씨는 조리법 현대화에 나섰다. “어머니는 그냥 감으로 턱턱 맛을 내셨는데, 난 다 계량화했어요. 염도계도 쓰죠.” 세 여자가 100년에 걸쳐 이어온 단양면옥의 맛은 그 시간만큼 매콤하면서 슴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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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일레븐의 유리 온실. 찾는 이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을 만큼 세련됐다.

■ 5년차 ‘팜일레븐’


산길을 따라 언덕에 오르면 파스텔 톤 유리 온실이 눈에 들어온다. 자연농원 ‘팜일레븐’(양양군 서면 원당골길 42). 본래 돌산이었던 이곳에 이국적인 온실과 정원, 숙박시설 3동, 베이커리 카페, 커뮤니티 공간 등이 들어서게 된 이유는 최길순(63)씨의 꿈 때문이다.


강릉에서 태어났지만 삶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낸 그는 대기업에서 기획·마케팅 업무를 했다. 출장차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농원이나 정원에 눈길이 갔다. 자신만의 공간을 그렇게 가꿔보자는 꿈이 생겼고 2013년에 퇴직을 ‘감행’했다. 2015년에 땅을 매입하고 2019년 팜일레븐을 열었다.


“100년이라고 치면 25년씩 4단계로 나눠 살기로 했어요. 처음 25년은 나의 성장기, 그다음 25년은 가족을 위한 삶, 세번째 25년은 나 자신을 위한 시간, 나머지 25년은 베풀며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세번째 25년’에 팜일레븐에서 살고 있다.


왜 하필 이 돌산이었을까. “몇년간 ‘차박’까지 하면서 다녔어요. 우연히 이곳에 왔는데 산자락 풍경이 마음에 쏙 들었죠.” 남설악 자락과 점봉산 등의 풍경이 그림엽서처럼 펼쳐진다. 전체 부지 면적은 약 11에이커(4만9천여㎡). 농장 이름에 숫자 ‘11’이 들어가는 이유다. 부인 송성림(58)씨는 빵을 구웠고 딸 최서원(31)씨는 정원을 가꿨다. 온갖 야생화와 고운 꽃이 유럽 궁궐 정원 부럽지 않게 만발했다. 절제미에 도회적인 세련미를 곁들인 팜일레븐은 단박에 엠제트(MZ) 세대를 사로잡았다. 그들의 에스엔에스(SNS)에 ‘양양 힙한 여행지’로 올랐다.


하지만 지금 그는 고민이 깊다. “어느 날 ‘이걸 왜 하나, 행복해야 하는데 그런가’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아름답게 풍부한 빼기의 삶, 의미 있는 일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꿔놓는 일, 그런 것에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어서.” ‘잠시 멈춤’도 용기가 필요한 일. 5개월째 베이커리는 문을 닫았다. 그는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며 인터뷰를 마쳤다. “인생은 정답이 없어요.”


양양/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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