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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숲을 달린다···나는 ‘러닝 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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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러닝 크루


서울 마포구 러닝 크루 ‘와우산30’

야간 도심 러닝 현장 찾아가 보니

수평적 문화 속에 달리는 쾌감

기부 크루 등 다양한 팀 많아

‘런예인’(러너+연예인)도 등장

마라톤대회는 축제이자 페스티벌

한겨레

최근 20~30대를 중심으로 달리기 문화가 바뀌고 있다. 예전에 없었던 ‘러닝 크루’(running crew·달리기 팀)가 중심이 되면서다. 예전 마라톤 동호회하고는 이름부터 다르다. 주로 ‘러닝 클럽’(Running Club)의 약자인 ‘아르시’(RC)를 붙여 이름 짓는다.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 부럽지 않은 근사한 로고도 개발해 운동복에 붙인다. 포털 ‘카페’가 아닌 ‘인스타그램’이 주요 활동무대다. 장안에 인기 많은 러닝 크루 ‘와우산30’의 야간 도심 러닝 현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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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밤 8시. 러닝 크루 ‘와우산30’을 만나기 위해 경의선 숲길로 향했다. ‘와우산 30’은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30길에 위치한 한 광고기획사의 직원들이 주축이 돼 2014년께 결성한 러닝 크루다. 씩씩! 흡흡~ 숲길 공터에서 생경한 소리가 들렸다. 뛰기 전 몸풀기를 하는 ‘와우산 30’ 팀원들이었다. 이윽고 반바지와 세련된 운동화, 모자를 눌러 쓴 10명이 두 줄로 열을 맞춰 뛰기 시작했다. 그들 손에는 빨갛고 노란 경광등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산책 나온 주민들의 시선이 그들 등에 꽂힌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이젠 오히려 즐거워요.” 러닝 경험이 많은 패션디자이너 송지선(35)씨가 말했다. 매주 화요일 밤마다 10~20여명의 ‘와우산30’ 크루가 이곳에 모여 함께 뛴다. 대부분 직장인이기에 이들은 주로 ‘야간 도심 러닝’을 한다. 아파트 불빛과 화려한 상가 간판을 뒤로하고 무리 지어 달리는 그들의 모습은 빡빡한 도시 생활에 해방된 자유인처럼 보였다.


러닝 크루에 가입해 달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다이어트나 마라톤 완주가 목표가 아니다. 연대는 중요시하지만, 소속감이 주는 압박이나 강압적인 위계질서가 없는 수평적 문화에 이들은 매료됐다. 20~30대 비슷한 또래가 모이는 것도 인기 요인이다. 최근 러닝에 푹 빠져 일주일에 3~5번은 참여한다는 약사 이채림(30)씨는 “러닝은 솔직한 운동이라서 좋다. 하는 만큼 호흡도, 기록도 발전하는 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와우산30’에 합류한 지 5개월 된 회사원 곽나래(28)씨는 “운동해 건강해지는 것도 좋지만, 일상에서 꾸준하게 하는 일이 생긴 것이 더 좋다”고 얘기한다. 20대가 대부분인 ‘와우산30’에서 연장자에 속하는 김사언(43)씨는 “오래 사귄 동네 친구보다 러닝 크루를 만났을 때 유대감이 더 강하게 든다”고 말한다. “이곳에 오면 친구들 만나 흰소리를 할 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 깊은 공감을 나누기 때문에 외로움도 덜하다.” 이런 이유로 러너들은 틈만 나면 모여 뛴다. 심지어 푹 빠져 다음 날 아침 러닝을 위해 운동복을 아예 입고 자는 이도 많다고 한다. 김일재(34)씨는 “물론 ‘런태기’(러닝+권태기)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잠시”라고 말한다.


10여분 달리자 이들은 횡단보도 앞에 도착했다. 빨간불이다. 팀원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폭풍 수다에 빠졌다. “최근에 예쁜 러닝화 하나 샀는데, 모양도 예쁘지만, 발이 무엇보다 편하다”, “마라톤대회들, 개최 날짜를 정리했다” 등이 오가는 동안 신호등 색은 어느 틈에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이들은 다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날 ‘와우산30’의 러닝은 ‘정규런’(일주일에 한 번 날짜를 정하고 달리는 것)이다. 러닝은 때와 장소, 구성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된다. ‘오픈런’은 별도의 사전 신청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러닝이다. ‘게스트런’은 크루 이외의 손님을 초청해 함께 달리는 것이다. 갑자기 모이는 ‘번개런’도 있다. 대부분 인스타그램 등 에스엔에스(SNS)로 공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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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크루의 특징 중 하나는 ‘굿즈’다. 프리랜서 박한빛누리(33)씨는 “예전엔 형광의 화려한 러닝복을 많이 입었다면, 요즘은 러닝 크루의 굿즈를 착용하는 게 멋있다”고 말한다. 러닝 크루의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는 대표적인 굿즈다. 헤드밴드, 반바지, 러닝용 가방, 물통, 수건 등에 팀의 로고를 찍어서 제작한다. ‘와우산30’은 스포츠 의류 브랜드 나이키 등과 컬래버레이션으로 굿즈를 만들었다. 또 다른 러닝 크루인 ‘피아르아르시(PRRC)1936’는 그들의 정체성을 투영한 호돌이 캐릭터 티셔츠를 제작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심지어 한때 청담동 편집숍 ‘분더샵’에서 판매하기도 했다.


러닝 크루라고 해서 다 같진 않다. 달리기는 공통분모지만, 팀마다 다른 강한 개성은 그들을 구별하는 중요한 요소다. ‘와우산30’은 ‘작은 홍대’라 불릴 만큼 구성원들의 직업이 그 지역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잡지 에디터, 사진가, 카피라이터, 패션디자이너 등 다채롭다. 현재 구성원은 42명이다.


그런가 하면 ‘유콘’(UCON)은 기부와 러닝을 결합한 팀이다. 서울과 대구에서 활동하는 260여명의 회원은 달린 거리 1㎞당 400원씩 환산해 매월 기부한다. ‘에스아르시’(SRC)는 러닝을 통해 서울의 숨겨진 보물을 재발견한다는 취지의 팀이다. 이 팀이 개최하는 ‘앨리캣 레이스’는 러너가 서울 골목길 5개를 선정하고 달리는 순서를 설계해 제시하는 대회다. 에스아르시 운영자 유승우(27)씨는 최근 성수동 일대 러닝 코스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성수동 연무장길을 따라 뛰었다. 신발 부자재 공장과 새로 생긴 카페가 공존하고 있는 길이라서 뛰는 내내 뉴욕 첼시 지역을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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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그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살피면 멋진 복장을 하고 도심을 달리는 모습이 가득 올라가 있다. 에스엔에스 활동은 러닝 크루의 필수품이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지 않는 러닝 크루가 거의 없기에, 초보자들은 인스타그램을 훑어보고 자신과 맞는 팀을 고르면 된다. 이러다 보니 인기 있는 러닝 크루는 ‘런예인’(러너+연예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이들은 러닝계의 인플루언서(인터넷 등에서 영향력 있는 1인)다.


어느덧 밤은 깊어가고 ‘와우산 30’ 회원들의 힘찬 숨소리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경의선 숲길 초입에서 경의선 책거리를 지나 서강하늘다리와 대흥동 일대를 달린 다음 지하철 서강대역을 지나 공덕역에 도착한 이들. 손목시계의 바늘은 밤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날 이들은 6㎞ 정도를 달렸다. 볼이 발그레해진 송지선씨는 “함께 뛰면 신난다. 마라톤대회도 열심히 참여하는 편인데, 다양한 러닝 크루를 만나 그들의 응원을 받으면 아드레날린이 솟는다”고 한다. 이들은 마라톤대회가 자신의 최고 기록 경신이 목표인 경쟁의 장이 아니라 신나게 노는 축제라고 한다. 긴장되는 결전의 날이 아니라 파티다.


지난 3월 열린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도 각양각색 러닝 크루의 깃발이 만국기처럼 펄럭였다. 서울 시내 5개의 러닝 크루가 연합해 ‘비티지 서울’(BTG SEOUL·Bridge the Gap Seoul)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대회 전날 성수동에 모여 페스티벌도 열었다. 유콘 이지환씨는 “휴가보다 다가오는 대회 날을 더 기다린다”고 말한다. 이들은 행복의 일상을 달리기로 수놓고 있다.


오늘, 여기 뛰어볼까요?

러닝 크루들은 자주 찾는 달리기 코스는 따로 있다. 마구잡이로 도심을 뛰거나 숲이 우거졌다고 선택하지 않는다. 그들이 추천하는 코스를 소개한다.


서울 반포 한강공원 코스


토끼굴에서 시작해 잠수교를 지나 세빛섬을 반환한 뒤 돌아오는 코스. 총 7km 거리다. 밤에 이곳을 뛰면 잠수교의 분수 조명이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다른 러닝 크루 팀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초보에게도 좋은 코스.


남산 북쪽 순환로 코스


남산도서관 안중근 동상 앞 집결해 간단히 몸을 풀고 음식점 목면산방 쪽 진입로를 지나 석호정과 국립중앙극장 방면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 코스. 반환하는 지점은 국립중앙극장 버스 정류장. 6.5km 거리. 계절의 변화를 흠뻑 느낄 수 있는 러닝 코스다.


서울 성수동 코스


지하철 성수역에서 모여 뚝섬역 방향으로 뛰어가다가 서울숲 쪽으로 좌회전해 창작 플랫폼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잠깐 숨을 고르고 한강까지 뛰는 코스다. 7km 정도 거리. 성수동만의 감성이 있는 골목과 한강을 즐길 수 있다.


이태원-경리단길 코스


지하철 한강진역에서 출발해 이태원역을 지나 녹사평역까지 달리는 코스다. 경리단길로 접어든 뒤 ‘보석길’이라고도 불리는 회나무로13길 골목과 언덕을 오른다. 그랜드하얏트 서울 호텔까지 4.5km 정도다. 인파를 뚫고 가는 도심 러닝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손기은 객원기자

러닝 

빠른 속도로 움직여 뛰는 일. 요즘 러닝은 조깅이나 마라톤과는 다른 일종의 문화 현상이다. 20~30대가 주축인 ‘러닝 크루’(running crew)들이 퇴근 후 빌딩 숲 사이를 질주한다. 세련된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와 운동화를 착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기능성 장비와 디지털 기기의 도움을 받아 체계적으로 기록도 관리한다. 함께 뛰는 것, 멋있게 뛰는 것 자체가 라이프 스타일이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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