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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보글 끓는 탕에 풍덩 빠진 닭

백문영의 먹고 마시고 사랑하기

한겨레
그 동네에 명물 음식이 있다는 것만큼 여행자의 마음을 흔드는 건 없다. 서울 종로 빈대떡 거리, 장안동 기사식당 거리, 당산동의 곱창 거리 등 서울은 동네마다 식도락가를 다른 맛으로 유혹한다. 이제 미식은 서울 전체를 아우르는 키워드이자 트렌드다.

유난히 쌀쌀한 겨울날 대낮이었다. ‘따끈한 국물에 술 한 잔 마시자’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반갑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올해는 술을 덜 마셔보자는 계획을 세웠더랬다. 하지만 낮술만큼 즐거운 일이 있을까. 행동은 마음보다 빨라서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나는 버스를 타고 내달리고 있었다.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동대문종합상가 방향으로 가다 보면 각종 의류 부자재와 섬유 제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을 만난다. 이른바 종합시장 골목이다. 값싸고 주문하면 금세 나오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이 골목은 ‘닭 한 마리’로 대표되는 닭 칼국수 집들이 많고 유명하다. ‘세상에 이렇게 단순한 음식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출하지만, 맛만은 예사롭지 않다. 세숫대야만 한 양푼에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넣은 뒤 팔팔 끓여 먹는 음식이다. 골목에 들어서면 닭 끓는 냄새가 구수하게 퍼진다.


이 골목에서 제일 유명한 식당은 ‘진옥화할매 원조 닭 한 마리’다. 하지만 어쩐지 지나치게 북적이는 곳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옆집에 눈을 돌렸다. 묘하게 고즈넉한 정서를 풍기는 ‘원조 원할매 소문난 닭 한 마리’에 들어갔다. 어린이와 도란도란 모여 앉은 가족들, 지금 막 데이트를 시작한 것 같은 젊은 커플, 나이가 지긋한 노부부까지 이곳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다양했다. 닭 칼국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집의 닭을 제대로 먹기 위해서는 ‘소스 제조’가 필수다. 매운 고춧가루를 넣은 다대기와 식초, 간장, 겨자를 적당히 풀어 새콤달콤하고 매콤한 소스를 만들어야 한다. 닭이 익기 전에 이미 익은 떡과 큼지막한 감자를 건져 소스에 찍어 먹었다. 시큼하고 알싸한 이 맛! 닭 육수가 제대로 밴 감자의 고소함이란! 잘 익은 닭 다리를 건져내 소스에 찍어 먹고 국물을 마셨다. “소주가 아주 제대로 들어간다”는 소리가 계속 튀어나왔다.


유명한 곳은 다 이유가 있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음식에도 그 동네의 역사와 공력이 숨어 있다. 넉넉하고 푸근한 음식 한 그릇이 주는 위로는 생각보다 크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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