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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박상원, 30년 우정의 울림…“서로에 대한 존경이 삶의 버팀목”

[쉼톡①] 2022년 비대면 시대, 우리 같은 ‘찐친구’ 찾아보면?


아들같은 동생, 박찬호 “형 보며 내 삶과 미래 벤치마킹”


친구같은 형, 상원 “메이저리그 잘 버텨내줘서 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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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 순간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2년 전 10월의 마지막날 밤. 전 야구 선수 박찬호(이하 박찬호)는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서울 남산예술센터 지하 연습실에 나타났다. 데뷔 41년 만에 처음으로 1인극에 도전하는 ‘우리 형’ 배우 박상원(이하 박상원)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누군가의 부축을 받지 않으면 계단도 못 오르내릴 만큼 위태로운 몸 상태. 리허설이 끝난 뒤 박찬호는 힘겹게 몸을 움직여 무대 위 박상원을 폭 안아주었다. 모든 세포가 제자리를 찾아간 듯, 그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타인의 보듬음이 저토록 안정감을 줄 수 있다니.


“형의 데뷔 이후 첫 1인극이라 시간 날 때면 응원을 갔어요. 못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가만 앉아서 보는데요, 뭐. 제가 힘이 된다면 가야죠.” ‘굳이 뭐 하러’에 대한 궁금증은 1년여가 지나서야 해소됐다. 2021년 11월25일 밤 9시께, 서울 강남의 한 건물 3층 박상원의 개인 작업실에서 만난 박찬호가 답했다. 박찬호의 사무실도 같은 건물 12층에 있다. 단독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박찬호는 형의 제안에 흔쾌히 <한겨레> 독자에게 새해 좋은 기운을 나눠주기로 했다. “아닌데. 인터뷰 제안서를 보니 취지가 좋아서 하는 건데.” 한번 물리면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박찬호식 유머’가 시작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사람이 희망이라던 우리는 사람을 피해 살았다. 한 조사를 보면, 국민 절반이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더 불행해졌다”고 느끼고, 그중 절반이 어려워진 경제 활동과 재정 상태를 이유로 꼽았다. 이런 현실은 국민 절반을 우울하거나 외롭게 만들었고, 불신, 이기심, 폭력성 등의 감정을 증폭시키고, 사람 사이 더 높은 벽을 쌓았다.


어쩔 수 없이 코로나와 함께 가야 하는 ‘위드 코로나’의 서막 2022년. ‘박 브러더스’의 30년 우정에 주목한 건 이런 이유다. 아무리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시대라지만, 사람을 견디게 하는 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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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원과 박찬호는 1995년 겨울, 서울의 한 호텔 수영장에서 처음 만났다. “찬호와 그곳 헬스클럽 수영장에서 우연히 만났어요. 그날 점심을 함께 한 게 인연의 시작이었죠.”(박상원) “제가 형한테 먼저 다가갔어요. 낯이 익어서 순간 프로 선배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갔더니 어어 박상원씨인 거예요. 인사했죠. 대스타인 형이 먼저 점심 하자고 해서 긴장했어요.”(박찬호) 당시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지만 1승은 하기 전이다. 평소 야구를 좋아하던 박상원은 “미국 가서도 잘됐으면 좋겠고, 응원하는 마음에 밥 한끼 사주고 싶더라”고 했다.


친구 사이에도 운명이라는 게 있는 걸까. 그날의 짧은 점심은 두 사람을 30년간 이어줬다. 박찬호는 미국에 가서도 먼저 꾸준히 박상원한테 연락을 했다. 휴대폰이 보급되기 전이다. 박찬호는 “공중전화로도 걸었지만, 주로 손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때 찬호가 준 편지는 지금도 다 갖고 있어요.” 편지뿐인가. 인터뷰 시작 전 박상원은 수십년 전부터 모았을 박찬호의 선수 시절 기사들을 담은 파일 집을 한가득 가져왔다. 야구 선수 박찬호의 시작부터 끝이 한눈에 펼쳐진다. “이때가 마운드에 처음 섰을 때, 이때는 첫 승리 했을 때고….” 사진만 보고도 때와 장소가 술술 나온다. 그간 몇번을 얘기했을까? 박상원은 “찬호의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함께한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이런 선수는 없었으니까요. 뿌듯하죠. 다 기록해두고 싶죠.” 그의 마음은 이미 사진 속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런 형을 동생이 그냥 둘 리 없다. "형, 또 봤어? 아직도 갖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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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호의 시간에만 서로 옆에 있었다면, 둘의 우정 끈은 일찌감치 끊어졌을 것이다. 두 사람의 ‘우정’에서 2022년의 ‘희망’을 떠올린 건 성과보다, 그 성과를 내기 위해 서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부터 챙긴다는 점에서다. “당신이 옆에서 지켜본 20대, 30대, 40대의 박찬호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느냐”는 질문에 박상원은 의외의 대답을 했다. “우리의 영웅, 메이저리거라고들 많이 얘기하죠. 저도 찬호의 삶을 존경해요. 하지만 전 늘 찬호가 안쓰럽다는 생각부터 들어요. 승수를 챙겨서 스포츠 신문 1면에 나오는 것보다, 그 1승을 위해 찬호가 어떤 고통을 겪었고, 겪고 있는지 아니까. 찬호가 승수를 챙기면 신문에 그 사실만 대서특필되지만, 호텔에서 파스 붙이고 아파하고 있는 순간들은 대부분 관심 갖지 않죠. 전 오래 봐왔고 너무 잘 알아서 그런지, 마음이 그래요.” 박상원은 박찬호 경기가 잘 안 풀린다 싶으면 당장 미국으로 가서 직관했다. 박찬호는 “형이 현장에서 경기를 관람할 때면 늘 이겼다”고 말했다.


박상원이 박찬호의 찬란했던 시절을 “안쓰럽다”고 표현한 데는 그의 마음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박찬호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나라가 힘들 때 온 국민의 희망이었다. 그도 너무 잘 알아서 매 경기, 던지는 공 하나하나에 국민의 희망을 담아야 했다. 야구 선수로서 그의 커리어보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희망을 주느냐 그러지 못하느냐가 어쩌면 그를 짓눌렀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에게 박상원은 그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좋은 친구는 스승이 된다고 했던가. 박찬호는 “20대 메이저리그 초기에 누구보다 나를 걱정하는 형을 만나서 힘든 순간도 견뎌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상원이 사람들에게 하는 배려, 겸손함, 예의 그리고 삶의 방법들, 그걸 그대로 따라 배웠다고 한다. 박찬호는 자신이 그라운드 밖에서 별다른 사고 없이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것을 박상원을 보며 저절로 배워진 것들 때문이라고 했지만, 박상원은 스스로 자기관리를 잘하는 “녀석”이라고 말했다. “전 찬호를 그렇게 오랫동안 보고, 술자리도 데리고 갔지만, 술을 단 한잔도 권한 적이 없어요. 절대 주지 않았어요. 누가 주려고 해도 얘는 술 못 마신다고. 컨디션에 지장을 주면 안 되니까요. 본인도 자기관리 하느라 마시질 않았어요. 이제는 가끔 한두잔 정도 마시기는 하는데, 그래도 전 안 따라줘요.”(박상원) “이젠 내가 먼저 따라 마시니까. 히히.”(박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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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원과 박찬호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하다가 후배에게 중심을 넘겨줬다. 같은 경험을 한 친구이기에 분야는 달라도 그 공감대가 컸다. 아이엠에프 시절 박찬호에게 환호하던 사람들은, 메이저리그에서 뛴 10년 동안 부침을 겪을 때, 한국으로 왔을 때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박찬호를 다독여주고 고민을 함께해준 친구 역시 박상원이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과정이 둘이 함께였기에 조금은 괜찮았을까? “나는 지금도 할 게 너무 많고, 끝을 느낄 수가 없는 걸요? 다음주 광고 촬영에, 드라마 준비에, 연극 준비, 문화재단 일에, 학교 수업. 아직은 못 느끼지만… 정신적으로는 알죠. 하하. 그래도 찬호 같은 동생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되고, 디딤돌도 되고.”(박상원)


“저도 할 일이 많아요. 청소도 해야 하고, 애들 픽업도 해야 하고. 하하. 예전에 형이 잠깐 고민한 적이 있었어요. 주인공에서 자리가 바뀔 때는 고민이 많을 거잖아요. 저도 그래요. 선발에서 불펜으로 내려가게 되고 방출도 되고 그러면서 미래에 대한 그림을 새로 그려야 하는데 그전처럼 확고하지가 않게 되면 불안해지거든요, 고민되고. 분명 미래에는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확신이 없어요. 이런 것 때문에 고민하는데, 형을 보면서 내 삶을 봤어요. 형은 그때 당시에 그 전에 하지 않았던 배역들을 맡고, 사진, 그림 등 다양한 방법으로 미래에 대한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가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언젠가 나도 이런 일이 생기겠구나 생각하게 되죠. 형이 사는 모습을 보고 내 삶을 그리고 벤치마킹을 할 때가 많아요.”


박찬호가 박상원에 대해 너무 좋은 말만 한다고? 박상원은 더하다. 투머치토커라는 별명을 인정하느냐고 물으니 대답이 이랬다. “그건 상대방한테 최선을 다해 이야기한다는 거 아닌가? 최선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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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수염 난 모습으로 7개월만에 만나 화제가 됐던 두 사람. 박찬호 SNS 갈무리


두 사람한테 우정은 “서로의 존경이 바탕이 된 것”이라고 했다. 박상원은 “박찬호가 운동과 인간성, 멘털이 모두 좋아야 하는 메이저리그에서 잘 버틴 걸 존경한다”고 했고, 박찬호는 “1인극에 도전한 걸 보면서 얼마나 노력했겠나, 그 모습을 존경한다”고 했다. 하지만 형만 따라다니던 20대 박찬호와 공사가 다망해진 49살 박찬호는 다르다. 박상원은 “다 좋은데 옛날에는 내가 찬호를 독차지했는데, 요즘에는 찬호도 자기만의 리그가 있어서 (자주 못 보는 게) 약간 서운하다”고 했다. “형 서운해요?”(박찬호) “그게 당연한 건데….”(박상원) 나이 들수록 더 서운할 일 많을 거라니 그제야 피식 웃는다.


박찬호가 말했다. “나는 형을 가족, 친형이라고 생각하는데, 형은 나의 보호자로 생각하는 거죠. 한국에 오면 최대한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게 해주고, 이것 조심해라, 저것 하지 마라 늘 신경써 줬어요. 미국 진출 초반에는 전 제가 공인이라는 생각을 못했어요. 한국에 오면 형만 졸졸 따라다녔는데, 이제 형 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으니 섭섭한 기분이 드는 거겠죠. 그렇지? 맞지?”(박찬호) 옆에 있던 박상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두 사람이 예쁘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 처음 같을 순 없다. 그러나 사랑의 농도는 갈수록 짙어진다. 두 사람은 서로의 밝은 미래를 위해 여전히 진심을 아끼지 않는다. “올해는 찬호가 예능에 너무 많이 소비되지 않았으면 해요.”(박상원) “그래서 형 얘기 듣고 예능 많이 안 하려고요.”(박찬호)


분야도 다르고, 나이도 다른 두 사람이 30년 동안 우정을 유지해온 것에서 2022년의 희망이 보인다. 어떤가, 비대면 시대일수록 박찬호-박상원 같은 ‘찐 친구’가 그립지 않은가?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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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원이 오는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하는 1인극 <콘트라바쓰> . 재연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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