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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면발과 닭육수가 만나면 [ESC]

이윤화의 길라잡이 맛집 _ 닭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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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 식문화에 대해 전시를 기획한 적이 있었다. 당시 문헌과 어르신들의 말씀을 토대로 과거 식문화 흔적을 찾아보니 1950~60년대 음식에서는 칼국수와 수제비가 압도적인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가난한 시절, 미국 원조 밀가루로 만들어 먹던 ‘생존 음식’이었으리라. 그래서인지 연세 드신 어르신들께 별미로 칼국수를 권하면, 밀가루 음식 앞에 ‘별미’를 붙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은 분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국수의 원료는 대개 메밀과 녹말이었다.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에 밀가루는 중국 화북에서 수입해왔기에 ‘진말’(眞末)로 불렸고 ‘성례(成禮, 결혼식) 때가 아니면 먹지 못할 귀한 식품’ 중에 하나로 꼽혔다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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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귀하디귀했던 밀가루는 생존의 밀 음식을 거쳐, 밀국수의 개성과 찰짐을 비교하며 완성도를 따지는 치열한 미식 경쟁 시대에까지 오게 됐다. 밀가루는 수분이 더해져 반죽이 될 때 형성되는 글루텐이라는 단백질에 따라 종류가 나뉘고 탄력이 달라지며 ‘쫀득하다’, ‘풀어진다’는 표현을 쓰며 식감을 구분하게 된다. 그 탄력 면발이 물에 들어가면 또 달라진다.


칼국수로 예를 들면, 면을 끓는 물에 넣어 끓이는 ‘제물 칼국수’와 삶은 면을 찬물에 헹군 뒤 뜨거운 국물을 붓는 ‘건진 칼국수’로 나뉜다. 칼국수의 전분기가 적고 국물이 맑은 편이면 건진 칼국수인 경우가 많다. 제물 칼국수는 자칫하면 밀가루 내가 날 수도 있고 국물은 탁하고 면이 거칠 수 있지만 장점은 면에 간이 잘 밴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장점은 바로 ‘탁한 국물’이 아닐까 한다. 면의 전분기와 육수, 건더기가 어우러진 걸쭉한 수프 같은 국물이 주는 포만감이 제물 칼국수의 매력이다.


특히 닭한마리 전골의 남은 육수에 사리나 면을 추가한 닭곰탕과는 다른, 올곧이 칼국수를 위한 닭의 존재감을 살린 전문점용 ‘닭칼국수’는 제물 칼국수가 갖는 면발과 국물의 조화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대표 음식 중 하나다. 또한 녹진한 닭 국물을 듬뿍 머금은 차진 면발의 든든한 한 그릇은 이 시대에선 ‘확신의 별미’이리라. 이에 닭칼국수 맛집 몇 곳을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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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칼국수’의 닭칼국수를 받으면 ‘노포는 군더더기가 없구나!’라고 느낀다. 연한 간장 빛 칼국수로 밝은 화려함은 없다. 비위가 약한 사람들이 약간 닭 냄새가 난다고 툴툴거린다면, 이 정도 향내가 진정한 닭칼국수라고 단골은 바로 맞받아칠 것 같다. 먹고 나면 또 생각나는 묘한 매력이 있다.(서울 동대문구 왕산로 247-1/02-967-6918/ 닭칼국수 9천원)


‘79번지국수집’은 경희대 인근의 인기 국숫집. 여러 국수와 전류 모두 가성비가 좋다. 닭칼국수의 걸쭉한 국물이 매력적이다. 닭살이 풍성히 올라가진 않지만 국물과의 조화가 환상이다.(서울 동대문구 회기로13길 25/0507-1344-9494/ 닭칼국수 6천원)


제주의 ‘원항아리칼국수보쌈’은 지역민들이 찾는 30년이 넘은 노포다. 식당에 들어가면 잘 삶아진 닭살을 하나하나 손으로 찢고, 볶은 무를 넣어 제주 메밀쌈인 빙떡을 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닭칼국수엔 밝은색 국물에 쫄깃한 면발과 닭살, 유부가 들어있다. 제주답게 빙떡 한 개도 곁들여 나온다. 깔끔하고 든든한 한끼 닭칼국수다.(제주 제주시 복지로1길 11/064-757-0370/닭칼국수 8000원)


글·사진 이윤화 다이어리알 대표·‘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 트렌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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