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한 슈터 손흥민, 그는 슛이 아니라 공을 아낀다
[한준의 EPL리포트]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 AP 연합뉴스 |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23골)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은 효율적인 공격수로 통한다. 득점 1위인데 슈팅 순위는 10위(35경기 86회)다. 경기당 슈팅이 2.4회에 불과하다. 팀이 크게 앞서고 있는 상황에 득점왕을 노린 노리치시티 전에 7개나 슈팅을 해서 늘어난 것이다. 공동 득점왕 무함마드 살라흐(리버풀)는 139회 슈팅을 시도해 슈팅 횟수도 1위다. 2위는 해리 케인(133회·토트넘), 3위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110회·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영국에서는 몇 안되는 슈팅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얻는 손흥민을 두고 ‘무자비하다’(ruthless)는 표현을 쓴다. 손흥민은 올 시즌 시도한 86회 슈팅 중 49회를 유효 슈팅으로 기록했다. 슈팅 정확성이 57%에 이른다. 슈팅 3개당 1골을 넣은 셈이다. 레스터시티와 경기에서 보여준 왼발 중거리슛, 노리치시티 전 오른발 중거리슛은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슈터라는 것을 증명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손흥민의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이 왜 슈팅을 아끼는지 궁금해 한다. 슈팅을 더 자주 시도해야 득점도 늘어나는 게 아닐까? 손흥민이 너무 양보하고, 이타적으로 플레이한다고 아쉬워하는 시선도 많다. 실제로 프리미어리그 슈팅 시도 상위 3위를 차지한 살라흐, 케인, 호날두는 ‘난사’라는 표현이 따를 정도로 자주 슈팅을 시도한다. 그런데 손흥민은 가공할만한 양발 슈팅력을 갖추고도 슈팅을 남발하지 않는다.
손흥민의 기록에서 인상적인 수치 중 하나는 공격수로는 매우 높은 패스 성공률이다. 패스 성공률은 상대 골문에서 멀고 우리 골문에서 가까운 수비수가 높다. 상대 진영에서는 과감한 패스로 공격 활로를 열어야 해서 성공률이 떨어지고, 우리 골문 근처에서는 최대한 안전한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케빈 더브라위너(맨체스터 시티)의 2021~22시즌 패스 성공률은 82.5%였다. 살라흐의 패스 성공률은 79.9%에 불과하다. 그런데 손흥민의 패스 성공률은 무려 86.6%다. 노리치전에는 92%의 패스 성공률을 기록했다.
손흥민의 패스 성공률이 높은 이유는 안전한 패스를 많이 시도하기 때문이다. 손흥민이 슈팅이나 돌파를 과감하게 시도할 타이밍에 안전한 패스를 택하는 이유는 턴오버로 인한 수비 전환 상황이 팀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그만큼 상황을 차분하게 판단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무리한 플레이로 공을 빼앗기고 수비 전환 상황이 되면 본인을 포함한 선수단 전체의 체력 소모가 커진다. 토트넘 선수단이 가진 수비 문제가 극대화되는 우려도 있다.
잉글랜드 전 대표 수비수 조너선 우드게이트는 영국 <비비시>(BBC)에 출연해 경기 내내 공간과 동료, 상대 선수, 공의 위치를 살피는 손흥민의 플레이를 “최고의 선수들이 주로 하는 플레이다. 손흥민은 축구 지능이 뛰어나기에 월드 클래스”라고 설명했다.
손흥민은 지네딘 지단, 리오넬 메시처럼 몇 수 뒤를 내다보고 플레이하기 위한 상황 인지 능력을 갖췄다. 최대한 공 손실을 줄이며 머릿속으로 이미 시뮬레이션이 끝난 뒤 판단한다. 슈팅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모한 시도로 공을 낭비하는 게 팀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노리치전에서 보여준 시원한 오른발 중거리슛, 월드컵 예선 이란과 홈 경기 때의 벼락같은 오른발 중거리슛은 손흥민이 슈팅을 두려워하는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슛을 아끼는 게 아니라 공을 아끼는 것이다.
축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