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의 시대는 이제 끝난 걸까요
친절한 기자들
이웃나라의 사법부 판단에 반발해 무역 관계를 볼모 삼은 일본 정부 탓에, 한국 국민은 일심단결해 한결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이란 말이 열렬히 호출되는 곳은 불매운동의 현장만이 아닙니다. 유통업체도 저마다 ‘국민’의 대표임을 자처하며 민심 붙잡기에 한창입니다. 도통 어떤 맛인지 궁금해지는 ‘민생 김’부터, 서민술 소주의 아성까지 넘볼 만한 ‘국민 가격’ 대표주자 ‘4900원 와인’까지.
안녕하세요? 유통 분야를 취재하는 현소은입니다. 불매운동과 ‘애국 마케팅’이 열렬한 업계에 최근 또다른 소식이 있었습니다. 대형마트 1위 이마트(계열사 포함)가 2분기 장사에서 적자(299억)를 봤다는 내용입니다. 2분기는 원래 유통 비수기인데다가 일시적으로 적자 한번 볼 수도 있지 않느냐 싶지만, 이마트는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1993년 신세계의 사업부로 만들어진 뒤 주요 상권에 매장을 내며 빠른 속도로 몸집을 키웠고, 2011년 신세계에서 분할한 뒤에는 줄곧 흑자를 냈습니다. 홈플러스가 ‘삼성물산→테스코→사모펀드’ 등 주인 교체로 격변기를 거치고, 롯데마트가 흑자·적자를 오갈 때도, 이마트는 준수한 실적을 유지해왔습니다. 이마트의 적자가 단순히 이마트의 위기를 넘어 유통업계 패러다임의 변화로 받아들여지는 이유입니다.
이마트의 적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소비 양태가 변한 영향이 큽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유통업체 매출 중 대형마트 비중이 2%가량 빠질 때 온라인 비중은 3%가량 늘었습니다. 구매 건수도 매달 전년 대비 평균 3%씩 빠졌습니다. 그만큼 고객수가 줄었단 거죠. 고객층도 치우쳐 있습니다. 1~2인 가구 비중이 큰 20대에게 3~4인 가구 중심의 대형마트는 ‘낯선’ 공간입니다. 30~40대는 손가락으로 휴대폰 몇번 두드리면 끝나는 온라인 쇼핑, 모바일 쇼핑으로 갈아타고 있습니다. 결국 50대 이상 소비자가 주를 이루는 셈입니다. 지속가능성에 물음표가 찍히는 이유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마트들이 내놓은 대책이 ‘국민가격’(이마트), ‘극한가격’(롯데마트) 등입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고객을 끌어모으던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취지입니다. 물론 ‘초저가’는 일부 품목에 제한되지만, ‘4900원 와인’이나 ‘9900원 청바지’ 같은 미끼상품으로라도 일단 고객이 매장에 발을 디디게 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아직은 대형마트가 강점이 있는 신선상품 쪽에도 힘을 주겠다고 합니다.
가격과 상품 경쟁력을 다 잡겠다는 이 계획은 얼핏 흠잡을 데 없어 보이지만, 한번 더 들여다보면 순탄치 않아 보입니다. ‘초저가’는 온라인 업체들도 적자를 감수해가며 공략하는 부분입니다. 대형마트가 절실하게 ‘귀환’을 바라는 20~30대를 복귀시킬 해법이 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입니다. 이들은 편리성,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 등을 고려해 쇼핑 채널을 선택합니다. 경쟁자는 자꾸만 늘어나는데, 소비자와의 소통 방식은 고차방정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대형마트는 20~30대를 붙잡기 위한 해법도 내놨습니다. 일렉트로마트(이마트) 등 전문점이나 ‘체험형’ 매장(롯데마트)을 통해 체류시간을 늘리겠다는 구상입니다. 하지만 이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당분간 출혈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다양한 신사업을 벌이는 이마트는 차입금이 증가세고, 부채비율도 늘었습니다(2017년 83.2%→2019년 상반기 102.4%). 투자에 따른 ‘수확’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입니다. 당장 2분기에 삐에로쑈핑, 부츠 등 전문점 적자가 188억원에 이릅니다. 여러 씨를 열심히 뿌리다 보면 하나쯤은 ‘대박’을 치겠지만 무엇일지, 또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지난 30년간 대형마트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거위도 노쇠하기 마련입니다. 목 좋은 지역 땅을 호쾌하게 사들이던 ‘땅부자’ 대형마트의 모습은 이제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부동산까지 팔아가며 급한 불 끄기에 나섰습니다. 절박한 목소리로 국민을 부르는 대형마트는, 이 위기를 넘기고 다시 ‘국민대표’가 될 수 있을까요?
현소은 산업팀 기자 s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