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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살처분 가축 무료퇴비로 속여 불법 매립 의혹…경찰 수사중

수년전 매몰된 돼지·닭 사체 파내


랜더링 처리하는 천안 한 업체


논산·천안·용인 등 지자체와 계약


트럭 기사 “작업한 척 사진 조작”


멸균처리 등 않고 그대로 불법매립 의혹


집채만한 가축무덤선 검정물이…업체는 “계분”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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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키보다 높게 쌓인 흙더미를 집게로 살짝 긁어내니 구더기가 들끓는 돼지 사체가 드러났다. 역겨운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코를 찔렀다. 옆에는 돼지 턱뼈와 닭 날개뼈 등으로 뒤덮인 사체 더미가 50m 길이의 비탈면을 가득 덮었다. “지난여름 폭우로 지반이 무너져 사체 더미가 드러났어요. 6월에 왔을 때는 사체를 먹는 까마귀와 고양이가 득실댔죠. 저기 침출수도 보이네요.” 동행한 환경단체 관계자가 가리키는 곳엔 비탈면 아래로 흐르는 검은 침출수가 보였다. 침출수는 산 아래 참외 비닐하우스를 향해 흘러갔다. 인근에는 경주 고분만한 크기의 사체 더미에서 나온 침출수가 낙동강 지류인 백천으로 흐르고 있었다. 지난 14일 찾은 경북 성주군 일대에는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수년 전 매몰됐던 가축들의 사체가 여기저기 뿌려져 있었다. 가축 사체를 처리하는 한 업체가 멸균처리 등 필요한 조처를 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이곳에 뿌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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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 강원도 횡성, 전남 곡성 등 전국에 뿌려진 살처분 가축 사체


1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충남 천안에 위치한 ㅎ산업은 지난 4~7월 충남 논산시와 천안시, 아산시, 경기도 용인시 등과 ‘가축 매몰지 소멸화’ 사업 용역을 맺었다. 계약에 따르면 ㅎ산업은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등으로 매몰된 가축 사체를 파낸 뒤 오염된 매몰지를 복원하고, 파낸 사체는 렌더링(사체를 분쇄해 고온·고압으로 멸균처리한 뒤 미생물과 발효해 퇴비로 활용하는 작업) 방식으로 처리해야 한다. ㅎ산업은 고정식 렌더링 기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가 선호하는 업체다. 이동식 렌더링 기계만 보유한 다른 업체는 매몰지 주변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소음과 악취로 민원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ㅎ산업과 운송 계약을 맺은 업체의 운전기사들과 환경단체는 ㅎ산업이 렌더링을 하지 않고 가축 사체를 처리해왔다고 <한겨레>에 밝혔다. 운송업체인 ㅅ개발 소속 트럭기사 ㅈ씨는 “ㅅ개발 관계자가 땅주인에게 질 좋은 유기성 퇴비를 무료로 준다고 속였다. 처음 한 두번은 일반 퇴비를 갖다준 뒤 매몰지 사체를 왕겨와 섞어 퇴비처럼 만들어 운반하게 했다”며 “ㅅ개발 관계자의 지시에 따라 ㅎ산업에 안 들르고 논산 매몰지에서 곧바로 성주로 이동해 사체를 내린 적도 있다”고 밝혔다. 실제 ㅎ산업이 운임비 정산을 위해 트럭기사들에게 발부한 계량확인서를 보면, 사체를 실은 트럭이 ㅎ산업에 들어올 때 무게를 잰 시간과 나갈 때 잰 시간이 1분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매몰지에서 가져온 가축 사체를 ㅎ산업 작업장에 내려 렌더링을 하지 않고 곧바로 목적지로 향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루 평균 25톤 트럭 3~4대가 움직였기 때문에 지난 5월부터 최근까지 최소 90~100대 분량의 가축 사체 수천톤이 경북 성주와 강원도 횡성, 전남 곡성과 영암, 충남 청양 등 전국에 뿌려졌을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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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개발 트럭기사 ㅇ씨가 ㅎ산업에게 받은 계량확인서. ㅇ씨 제공

■“렌더링 현장 지켜본 공무원 없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가축 매몰지 사후 관리 지침’을 보면 지자체는 처리 결과를 사진과 함께 첨부해 농식품부에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ㅎ산업과 계약을 맺은 지자체들은 직접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대신 ㅎ산업이 제출한 사진을 제출받았다. 충남 아산시가 받은 사진을 보면 렌더링 기계에 가축 사체를 투입하고 잔존물을 폐기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는 조작된 사진이라는 게 트럭기사들의 주장이다. 트럭기사 ㅇ씨는 “ㅎ산업의 렌더링 기계는 흙이나 돌 등 이물질이 안 섞인 ‘깨끗한 가축 사체’만 처리 가능하다. 지난 5월께 매몰지 사체를 렌더링 기계에 넣고 돌렸는데 한 트럭 분량을 처리하는 데 15시간가량 걸렸다. 하루에 트럭 3~4대 분량이 몰려서 처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렌더링 과정을 지켜보러 따라온 공무원이 하나도 없었다. ㅎ산업은 우리보고 잠깐 트럭을 멈추고 서 있으라며 사진을 수십장 찍어 지자체에 짜깁기해 보내곤 했다”고 말했다. ㅈ씨는 “ㅎ산업 직원들도 자신들이 매몰지 사체를 렌더링할 능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지자체에 사진을 보낸다며 크레인으로 돼지 사체를 들어 렌더링 기계 투입구 위로 들고 갔다가 사진 찍은 뒤에는 다시 트럭에 싣는 일을 반복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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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충남 아산의 한 매몰지에서 가축 사체를 파낸 뒤 묻을 곳을 못 찾아 한달째 트럭이 사체가 실린 채 길가에 방치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지만, 아산시는 사진을 통해 작업 완료 여부를 판단해 발주금액 4천여만원을 ㅎ산업에 완납하기도 했다. 아산시 관계자는 “매몰지에선 ㅎ산업 작업 광경을 감독했지만 공장까지 따라간 적은 없다. 사진을 보고 작업 완료 여부를 판단했다”고 말했다. ㅎ산업은 폐기물 경로를 작성하는 ‘올바로 시스템’에 행선지를 허위 작성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ㅎ산업 막대한 수익 얻었다…국고 환수 조처 필요해”


ㅅ개발의 실질적 대표인 권아무개씨는 2018년 1600여톤의 음식물 폐기물을 퇴비로 둔갑시켜 영산강에 버린 혐의로 전국에 지명수배됐으나 별다른 처벌 없이 지난해 ㅅ개발을 차렸다. 수개월 동안 이들을 추적한 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전국에 구제역 등으로 매몰된 가축 사체가 뿌려져 환경오염은 물론 전염병 감염 위험까지 발생했지만, ㅎ산업과 ㅅ개발은 막대한 수입을 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고 환수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에 대한 수사는 전북지방경찰청에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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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산업에 일감을 준 지자체 관계자들은 “매뉴얼대로 진행했으나 렌더링 과정을 지켜보지 못할 때가 있었다. 수사 결과가 나오면 자체 조사를 검토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체가 불법 투기된 지자체들도 진상규명에 들어갔다. 성주군 관계자는 “시료 채취 등 균 검출 작업을 시행하고 있으며 환경평가도 들어갈 예정이다. ㅎ산업과 ㅅ개발에 대한 수사의뢰도 해놓았다”고 말했다.


ㅎ산업 관계자는 <한겨레>에 “사체가 아니라 계분이며, 경찰 수사를 통해 계분임이 밝혀지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업체 관계자는 또 “경북 성주에 렌더링 처리하지 못한 매몰지 사체가 일부 쌓인 것은 맞지만 ㅅ개발이 독단적으로 저지른 일로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 권씨가 지명수배 됐는지도 몰랐다”며 “다만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사체를 전량 회수해 처리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반론보도] 살처분 가축 불법 매립 의혹 관련


본지는 지난 9월17일 살처분 가축 불법 매립 의혹 관련 기사에서 천안시의 ㅎ산업이 가축 사체를 멸균처리 등 필요한 조처를 하지 않고 경북 성주 등 전국 곳곳에 무료퇴비로 속여 묻었다는 등의 내용을 보도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ㅎ산업은 “매몰지에서 발굴한 가축 사체는 모두 렌더링 방식으로 정상 처리하였으며, 법령을 위반해 살처분 가축을 불법매립한 사실은 없다”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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