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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어체에 열 글자도 훌쩍…요즘 드라마 제목, 왜 구구절절한가요?

‘선배, 그 립스틱…’ ‘제발 그 남자…’ 등

감정 담아 말하는 듯한 제목 인기

드라마 내용·주인공 심정 드러내

시선 사로잡고 공감·몰입력 높여

웹소설·웹툰 리메이크 많아지고

인기 에세이 긴 문장 제목 영향

예능도 힐링 취지 구어체 많아져

구구절절 속내 담은 75자 제목

‘…뒤돌아보지 말아요’도 등장

한겨레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제발 그 남자 만나지 마요!!” 절절하다. 한 남자가 여자를 향해 사랑을 갈구하는 듯한 대사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짝사랑 좀 해본 사람이라면 내 얘기 같아 금방 눈물 뚝뚝 흘릴 것 같은 심금을 울리는 문장들은 대사가 아니라 드라마 제목들이다.


요즘 드라마와 예능에서 감정을 담은 긴 구어체 제목이 인기다. 특히 드라마에서는 주인공 심정을 드러내며 시선을 사로잡고, 공감을 사며 단번에 몰입력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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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이면서 간절한 긴 구어체 제목만으로 화제를 모은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 제이티비시 제공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제이티비시)는 지난 18일 시작한 로맨스 드라마다. 화장품 회사를 배경으로 후배이자 연하남 채현승(로운)이 선배 윤송아(원진아)에게 저돌적으로 다가가 사랑을 고백하는 모습이 코로나19로 흐릿해진 마음을 설렘으로 채운다. 지난 12일 끝난 <제발 그 남자 만나지 마요>(엠비시에브리원)도 남녀의 사랑이 소재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는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오티티) 넷플릭스에서 만드는 오리지널 시트콤으로, 국제대학교 기숙사에서 벌어지는 다국적 학생들의 이야기다.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미정)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미정)와 박보영이 나오는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티브이엔) 등 방영을 앞둔 작품 중에서도 긴 구어체 제목이 유독 많다. 지난해 8월에는 에세이집 제목 같은 <연애는 귀찮지만 외로운 건 싫어!>(엠비시에브리원)도 방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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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어체 제목으로 눈길을 끈 <제발 그 남자 만나지 마요> . 엠비시에브리원 제공

제목만 읽어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그림이 그려지고, 주인공의 심정이 읽힌다.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제작진은 21일 <한겨레>에 “제목은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가 발현되는 중요한 장면에 나오는 대사다. 전 남자친구로 비유되는 립스틱을 바르지 말라는, 과감하고 도발적인 남자 주인공의 대사는 기존에는 없었던 낯설지만 신선한 제목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문장형 제목은 감정적으로 다가가는 느낌이어서 시청자들이 캐릭터에 쉽게 공감하고 동화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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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영 주연의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등 방영 예정작 중에서 긴 구어체 제목이 유독 많다. 티브이엔 제공

이젠 오티티까지 채널이 많아지고 드라마가 쏟아지면서 독특한 제목은 눈길 끌기에도 요긴하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제작진은 “긴 구어체 제목은 독특한 느낌이 있어 제목만 듣고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이동윤 피디는 “제목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무기다.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과거에도 <미안하다 사랑한다> <괜찮아 사랑이야>처럼 구어체 제목은 있었지만, 일반적이고 추상적이었다면 최근에는 감정·상황 등을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표현해 마치 내 심정을 대변한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 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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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10월 방영한 에세이집 같은 제목의 드라마 <연애는 귀찮지만 외로운 건 싫어> . 엠비시에브리원 제공

2018년 이후 출판시장에서 구어체 제목의 에세이집이 인기를 끌면서 어색함을 덜게 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등 어른의 반듯한 조언이 아니라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현실적인 다독임이 삶에 지친 청춘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화제를 모으며 구어체 제목의 대중성을 입증했다.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제작진은 “최근 웹툰과 웹소설 원작이 많아진 것도 이런 현상이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 드라마는 대부분 원작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도 웹소설이 원작이고,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는 웹툰이 원작이다. 2020년 성공한 작품 중에서 웹툰·웹소설 원작이 대략 절반을 넘어선다. 카카오페이지는 2021년부터 3년간 웹툰 65편을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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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뒤돌아보지 말아요> 의 원래 제목은 첫줄 ‘유희열’부터 ‘뒤돌아보지 말아요’까지 총 75자. 축약이 유행하는 시대 속내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역발상이 눈길을 끈다. 티브이엔 제공

드라마 제목도 시대별로 유행을 탔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파리의 연인> <장밋빛 인생> 같은 다섯자 제목이 잘되면서 우후죽순 쏟아졌다. <주몽> <대장금> <내 이름은 김삼순> 등 주인공 이름을 내세우는 건 시대 관계없이 이어진 성공법칙이었다. 요즘 화제작도 이름을 앞세운 <경이로운 소문>(오시엔)이다. 줄임말이 유행한 몇년 전부터는 드라마 제목도 줄여 불렀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를 ‘지구망’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한 콘텐츠 홍보대행사 대표는 “짝수보단 홀수를 선호하는 등 줄임말 제목도 성공법칙이 있다. 방영 전에 어떻게 줄일까를 심각하게 논의한다”고 말했다. 이젠 구어체가 흐름을 이어가는 것일까.


예능에서도 구어체 제목의 변화가 뚜렷하다. 이전에도 있었지만, 최근 <서울엔 우리 집이 없다>(제이티비시)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티브이엔) <조금 불편해도 괜찮아>(티브이엔) 등 유독 많이 쏟아져 나왔다. 지난 22일 시작한 <뒤돌아보지 말아요>(티브이엔)의 원래 제목은 무려 75자. <유희열×젝키가 공약으로 그냥 발라드 하나 부르기로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일이 커져 신곡까지 만들게 되고, 우리 모두의 심정을 담은 노래가 나오게 되었는데 제목이 바로 뒤돌아보지 말아요>다. <뒤돌아보지 말아요> 신효정 피디는 “요즘 예능은 유튜브 플랫폼과 함께 제작되는 경우가 많아 글자 수 제한이 적어진 것도 이유다. (줄임말이 유행하는 시대에) 역발상으로 지금까지 사정을 제목에 다 녹여보자고 했다. 오히려 구구절절 설명하니 궁금증과 흥미를 유발해 다양한 콘텐츠 사이 우리만의 특성을 살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은 긴 구어체 제목이 반드시 시청률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듯하다.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는 1·2회가 1~2%대, <제발 그 남자 만나지 마요>는 0%대에 그쳤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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