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 방학에 쉬는 것이 세금 도둑질이라고요? [더(The)친절한 기자들]
[더(the) 친절한 기자들]
“교사의 방학 폐지해달라”는 청와대 청원글…7800여명 동의
학기중 연월차 쓸 수 없는 교사들, 방학 기간에는 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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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직무유기로 국민의 혈세가 줄줄 새고 있습니다.”
초·중·고교에서 본격적인 여름방학이 시작된 7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 하나가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 교육 공무원 <41조 연수> 폐지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인데요. 교사들이 방학 기간을 “집 청소, 밀린 집 정리, 본인 자녀들과 여행, 피부과 예약, 미용실 예약 등 개인적인 일에 (쓰면서) 그 연수라는 명분을 들이댄다”며 “세금으로 월급 받아 미용실 가고, 피부과 가서 점 빼고, 마사지 받으며 집에서 편하게 쉬는 건 도둑질이나 다름없다”는 내용의 글입니다.
교육공무원법 제41조란, ‘연수기관 및 근무장소 외에서의 연수’ 조항으로 교원은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소속 기관의 장의 승인을 받아 연수기관이나 근무장소 외의 시설 또는 장소에서 연수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학생과 달리 교사에게는 방학이라는 기간에 대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조항을 원용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글을 올린 청원인은 쉽게 말해 교사들이 일반 직장인들과 달리 방학이라는 기간 동안 연수를 핑계로 사실상 휴식을 취하는 ‘상대적 특혜’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교사의 방학을 폐지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 청원은 24일 현재 7800여명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와 유사한 취지의 글이 추가로 10건 넘게 올라와 있습니다. 교사들의 방학 급여를 실제 방학 돌봄이 이뤄지는 가정에 나눠주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청원인들의 주장을 하나씩 짚어 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교육공무원법 제42조에 따른 연수는 방학을 이용해 지난 교육 활동을 정리하고 다음 학기 교육 활동을 준비하기 위해 주어진 기간입니다. 방학 등 휴업일은 교원의 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학교장의 승인을 거쳐야 합니다. 학교장에게 연수 계획서를 제출하고 연수가 끝난 뒤 보고서 역시 제출해야 합니다. 연수 기간을 취지에 맞지 않게 사용할 경우 감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교사들은 수업 준비를 위한 연수 외에 해마다 60시간 이상 받도록 권고하는 교육청 ‘직무 연수’도 받아야 합니다. 강제 사항은 아니지만 연수 실적이 성과평가와 성과급에까지 영향을 주는 만큼 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방학에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방학 때 연수원 교육은 신청자를 다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교사들의) 수요가 높다”며 “물론 실적에 반영되는 것도 영향이 있지만, 교과 과정이 자주 바뀌는 데다 사교육 수준도 높아져 60시간 이상으로 연수를 받으려는 교사들이 많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연수가 필요한 건 결국 방학 기간 동안 교과 수업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수업 내용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교사들은 설명합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24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교과 과정이 계속 바뀌고 학생들 사교육 수준도 갈수록 높아지는데 교재 연구는 방학이 아니면 할 수가 없다”며 “교육청에 원격 연수 프로그램 등도 있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연수를 받는 추세”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공부하지 않는 교사는 보충수업 수강 신청 등에서 차이가 나 살아남기가 힘들다”며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원들의 자발적인 교육 연구모임인 ‘교원학습공동체’가 만들어질 정도로 연수 열기가 뜨겁다”고 덧붙였습니다.
다음은 청원인이 언급한 개인적인 국외여행과 관련한 문제 제기입니다. 개인적인 국외여행은 사실 교육공무원법상 연수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교사들은 학기 중에 연월차 휴가를 쓰기 어려운 탓에 주로 방학 기간 동안 연월차 휴가를 소진하면서 국외여행을 갑니다. 연월차 휴가는 교사들의 합당한 휴가입니다. 게다가 교사들은 연월차 휴가를 모두 쓰지 못하더라도 따로 보상비를 받지 못합니다. 물론 연월차를 쓰지 않고도 연수를 위한 ‘공무외 국외여행’을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역시 연수계획서와 보고서 등을 제출해 학교장의 승인을 얻어야 합니다. 가족 여행 등을 이유로 ‘공무외 국외여행’을 가기는 까다로운 조건인 겁니다.
■연수 외에 각종 당직과 방과후 교실 관리도 맡아
교사들이 연수로만 방학을 보내는 건 아닙니다. 학교 규모마다 일수는 다르지만, 방학 기간 동안 교무실 당직 근무와 방과후교실 관리 등을 해야 합니다.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독서캠프와 영어캠프 등 자체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프로그램은 전담교사가 진행한다 하더라도 안전 지도와 관리는 교사의 몫입니다. 학기 중뿐만 아니라 방학 때도 진행되는 돌봄교실과 방과후프로그램 역시 마찬가지인데, 학급수가 적은 학교는 프로그램마저 교사가 맡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의 경우 방학 때도 보충학습이 있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이 밖에도 한 부모 가정이나 다문화가정, 북한이탈아동 등 사회배려대상 학생들을 방학 중이라도 예외 없이 챙겨야 합니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지역이거나 학급수가 적은 학교는 방과후 프로그램과 방학 교육 프로그램을 교사가 모두 떠맡기도 한다”며 “이런 경우 아예 방학 때 쉬지 못하기 때문에 기피 현상이 심하다”고 말했습니다.
학기 중에도 단순히 수업 시간만 업무 시간으로 보기 어렵다는 호소도 교사들 사이에서 나옵니다. 각종 행정 업무를 도맡아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 학교마다 둔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는 전문적인 법률지식이 없는 교사들이 위원으로 참여해 가해·피해 학생 간 갈등을 중재하고 결과 보고까지 맡고 있습니다. 학교폭력 처리와 관련해 학부모 등으로부터 각종 민원과 소송까지 당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한 교사는 교사들에 대한 불신에 지쳐 “차라리 방학을 없애달라”는 청원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 교사는 청원글을 통해 “교사가 사회의 적폐 세력으로 몰리는데 가장 큰 원인인 교사의 방학을 없애달라”며 “저는 적폐가 아니라 아직도 이 나라, 대한민국의 교육 발전과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무명의 교사”라고 호소했습니다. 또 다른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도 “교사라는 직업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며 “이번 방학도 단 한 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보충학습을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업무 시간 외에도 퇴근 이후 진로 상담 등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교사의 업무를 수업 시간으로 한정해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지난 5월 교육계에서 스스로 ‘스승의 날’을 폐지하자는 움직임이 일기도 했습니다. 점점 교사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형식적인 날을 둬 부담만 가중하고 있다는 여론이었습니다. 교육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까지 최근 5년 동안 폭행, 폭언·욕설, 성희롱, 수업방해 등 학생, 학부모 의한 교육 침해 행위는 모두 1만8211건으로 집계됐습니다. 17년 차 고교 교사는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서 “더 이상 스승 같은 ‘보람직’은 학교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교육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근로자일 뿐”이라며 스승의 날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무려 50여년 전인 1963년에 제정된 교육공무원법이 이제 와서 논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시 주 52시간 노동을 하자고 해도 여전히 긴 노동 시간에 시달리고, 노동자나 혹은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 환경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이 “불공정하게 특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찾아 분노를 표출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서로에 대한 배려 혹은 연대가 조금 더 필요하진 않을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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