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생·학부모·교사들 “내가 본 ‘SKY 캐슬’은…”
드라마 ‘스카이캐슬’과 교육현실
고3 수험생 “과장 있지만 현실”
학부모들 “아이들 괴물 만들 수도”
현직 교사 “교육정책 비난은 성급”
이미 진학교사 입시 컨설팅 있고
제도 보완되며 사교육 영향 줄어
‘24시간 관리’한다고 성과 있을까
교육 전문가 “공교육 불신 우려”
1980년대 입주과외부터 시작된
상류층 사교육 ‘질서교란’ 심각
교사·학부모 소통해 대안 찾아야
드라마 <스카이(SKY) 캐슬>(JTBC) 열풍이 뜨겁다. 이 드라마는 19일 전국 시청률 22.3%(닐슨코리아 제공, 유료 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비지상파 채널 사상 최고의 드라마 시청률을 기록했다. 대한민국 상류층이 부와 지위를 대물림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 교육에 목숨을 거는 과정을 그린 이 드라마는 상류층에 대한 풍자와 함께 치열한 입시 경쟁 현실을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 후반으로 갈수록 인기가 치솟는 이 드라마 내용을 둘러싸고 각종 교육 담론도 쏟아지고 있다. <한겨레>는 교육 당사자인 학생, 교사, 부모, 교육 전문가들에게 ‘내가 본 스카이 캐슬’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카이 캐슬>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각자가 생각하는 교육 현실을 이야기해 공감대를 이룰 지점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고 아니꼬워요. 모든 학생이 그런 것은 아니라서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전교 1등 예서(배우 김혜윤) 이야기를 친구들과 많이 해요.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인성이 저러면 인기가 없다고요. 그런 친구들이 좋은 대학은 갈지 몰라도 사회에 나가면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대구 대진고등학교 3학년 김단경(19) 학생은 또박또박 지적했다. 지방에 사는 김단경 학생은 특히 이 드라마에서 부모들이 입시 과정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과정을 보며 불편함과 함께 분노를 느꼈다. 입시 코디네티이터 김주영(김서형)은 드라마에서 자신이 맡은 학생 예서의 내신 성적은 물론 봉사활동, 학생회장 선거 등 모든 과정에 개입한다. 김단경 학생은 드라마 같은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이미 주변에서 부모 및 사교육 관계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입시에 개입하는 사례를 목격하거나 소문을 통해 들었다.
“자기소개서 대회나 백일장 대회가 있는데 학원에서 예상 문제를 뽑고 미리 써온 경우를 봤어요. 미술도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대신 그려준다는 얘기도 들리고요. 저는 그런 일들이 공정한 경쟁이 아닐뿐더러 경쟁하는 친구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봐요. 정부가 그런 행위를 제재하는 법을 마련했으면 좋겠어요. 사교육만 그런 것도 아니죠. 학교 선생님도 자신이 좋아하는 학생들에게 지도를 해준다거나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특별반을 모아서 관리해주는 경우도 있거든요.”
학생들은 “드라마가 약간 과장이 있지만, 상위 1% 학생과 99% 학생이 국가가 만든 제도 안에서 싸운다는 설정이 사실에 기반한 것 같다”며 “게임으로 치면 레벨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거죠”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느끼는 현실 인식은 정확하다. 실제로 2017년 기준, 사교육을 받는 초·중·고 학생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38만4천원이었다. 이는 2007년(28만4천원)보다 33% 늘어난 수치다. 월 소득 600만원 이상인 가구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42만5천원인데 월 소득 200만원 미만 가구 사교육비 9만3천원의 4.57배로 그 격차는 날로 벌어지고 있다.
부모들 중에도 드라마 속 치열한 입시 경쟁이 현실과 흡사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울 압구정동에 살면서 고등학교 3학년 자녀의 입시를 마친 김혜승(가명)씨는 고급 입시 정보를 얻기 위에 부모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는 모습이 현실을 반영했다고 본다. 그의 주변엔 전교 1등 아이가 어떤 학원에 다니고 어떻게 공부하는지 알기 위해 혈안이 된 엄마들이 있다. 공부를 썩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딸은 학원에서 ‘내신 대비 소수정예반’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이들끼리 팀을 짜는 일도 엄마들이 좌지우지했다. 김씨는 “팀을 짤 수 있느냐 없느냐가 엄마들 간 주도권을 결정했다”며 “직장맘은 배제되고 엄마가 아이 공부에 열의가 있으며 자신의 자녀보다 성적이 높은 아이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전했다.
과도한 자녀 교육 및 사교육 의존 서사에 거부감을 표시하는 부모들도 있었다. “갭(차이)이 느껴지죠. 제 주변에는 그렇게까지 하는 부모들은 없거든요. 기껏해야 아이가 원하는 학원을 보내주는 정도죠. 그런데 그런 일들이 현실에서 있다고들 하고, 드라마 인기로 입시 코디네이터 찾는 사람이 늘었다는 기사를 보며 씁쓸했어요.”
인천시에서 중고생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 이은영(가명)씨는 드라마 속 한서진(염정아)처럼 다른 가치를 배제하며 오로지 성적 올리기에 신경쓰면서 자식을 키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씨는 “드라마 속 영재(송건희)나 예서처럼 부모가 만들어주는 점수로 좋은 대학에 붙는 아이들은 결국 괴물이 될 것”이라며 “이미 그런 괴물들이 우리 사회에서 불법 행위를 많이 저지르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스카이 캐슬>에서는 학교나 교실, 교사의 존재는 미미하다. 교사가 나오더라도 ‘인터넷 강의’를 틀어주며 대충 수업을 때우려는 한심한 모습으로 나온다. 지난해 발생한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태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 사설 학원 관계자와 결탁해 학교 시험지를 빼돌리는 학교 관계자의 존재도 암시된다.
“<스카이 캐슬>은 교육 드라마가 아니에요. 학교는 거의 안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교육 대 사교육’이라는 드라마에 존재하지 않는 대립 구도를 전제하지만, 드라마는 단지 그것을 양념으로만 사용할 뿐이고 서사 구조의 중요한 축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많은 언론과 사교육 관계자들이 학교와 교육 정책을 비난하는 용도로 이 드라마를 활용하는지 모르겠어요.”
17년차 공립고등학교 ㄱ 교사는 <스카이 캐슬>의 열풍과 함께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대한 비판과 ‘정시 확대론’이 언론 등을 통해 증폭되는 것이 당황스럽다. 학종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마치 정시를 확대하면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어폐가 있기 때문이다. 정시 모집이 확대되면 사교육 업체들과 사교육을 마음껏 받을 수 있는 계층에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 ㄱ 교사의 판단이다. 또 사교육 경력 10년, 공교육 교사 경력 10년차인 ㄷ 교사는 입시 코디네이터의 존재가 과거부터 쭉 있었던 현상이라고 말한다. 사교육 업계에서는 입시 컨설턴트가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드라마와 차원은 다르지만 각 교육청에서도 진학 지도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입시 컨설팅을 해준다. ㄷ 교사는 오히려 극히 일부 층의 과도하고 불법적인 사교육 실태가 전부인 것처럼 과장돼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런 식으로 부모들의 공포와 불안이 커지면 사교육 의존율이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드라마 열풍으로 서울 강남 학원가에 입시 컨설팅 문의가 늘고 있다고 한다.
ㄷ 교사는 “예서처럼 24시간 관리한다고 해서 성과가 있을까”라고 반문한다. ㄷ 교사에 따르면, 법으로 정해진 입시 컨설팅 비용은 1분당 5천원으로 1시간을 기준으로 30만원을 넘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많은 아이들은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 올라가면서 내신 관련 컨설팅을 한번씩 받는다. 다음으로 고등학교 1학년 학생부 기록을 바탕으로 내신과 관계를 따져 한번 더 받고, 2학년 때 한번 더 받는다. ㄷ 교사는 “학생부에 기록하는 모든 내용이 정성 평가로 이뤄지고, 학교 밖이 아닌 학교 내 활동을 기반으로 기록한다”며 “제도가 보완되면서 과거보다 사교육 관계자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는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한때 사교육 1번지에서 유명한 입시 상담가로 활동했고, 이제는 교육 시민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재원 행복한공부연구소 소장(비영리 시민단체 아름다운배움 소속)은 무한경쟁, 과속질주로 치닫는 교육 현실에 대해 짚는다. 박 소장은 “과거엔 미우나 고우나 공교육을 믿고 지지하는 중산층 세력이 존재했는데 이젠 거의 붕괴 상태”라며 “상류층의 지극히 비정상적인 교육 방식이 나오는 이 드라마에 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지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스카이 캐슬>에 나오는 입시 코디네이터는 1980년대 중반에도 있었어요. 그때도 입주 과외 교사가 성적은 물론 생활지도, 원서 내는 것까지 다 책임졌거든요. 그 당시에는 사교육이 고도화되지 않아서 그 정도만 한 거죠. 시간이 지날수록 사교육 업체들이 창궐하면서 상류층 아이들이 전략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합니다. 상류층은 언제나 공교육을 깔봅니다. 공교육이 잘되기를 바라지 않아요. 자신들을 남들과 구분짓고 싶어하고, 어떻게든 지배층이 되어 경제력을 독점하고 싶어 하니까요.”
박 소장은 드라마 속 사교육 내용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작가의 의도와 달리 공교육 불신 분위기가 커졌다고 진단한다. 한국의 상류층은 오래전부터 공교육 질서를 무너뜨려왔다. 조기 교육을 통해 ‘나이’라는 질서를 무너뜨렸고, 선행학습을 통해 ‘학년’도 무너뜨렸다. 박 소장은 “운전을 할 땐 누구나 교통질서를 잘 지킬 것이라는 신뢰가 필요하다”며 “(교육에 관해선) 최상류층이 과속을 하며 무한 경쟁을 시작했고 이제는 누구도 질서를 지키지 않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사교육은 공교육의 질서를 교란시켰고, 가수요를 창출할 정도로 힘이 세졌다. 이런 상황에서 사교육의 힘을 꺾고 질서를 지켜줄 세력이 필요하지만 많은 학부모는 ‘교육 소비자’로 전락했다.
“해방 이후 우리는 한번도 제대로 공교육을 해본 적 없는 것 같아요. 사교육의 힘은 세졌고, 교육당국도 대학들도 학부모들의 불안을 가중시키기만 했지요. 입시 제도를 자주 바꿨고, 대학들은 경쟁률을 높여 인기를 끄는 방식으로 운영돼왔고요.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생각있고 의식있는 부모들마저 이런 현실에서 ‘학원 안 가면 손해 본다’는 경험을 하거나 교사들마저 학생이나 부모에게 ‘학원 가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생겼다는 겁니다.”
박 소장은 무질서 그 자체인 교육 현실에서 최소한의 공교육 기본 질서를 지키기 위한 긴급 처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선행학습 규제법이나 ‘교육 김영란법’ 등을 통해 사익을 위해 공교육을 교란시키는 일들을 강력하게 규제하면서 대안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내신 1등급에게만 경시대회, 봉사활동 등을 몰아준다거나 사교육 업계의 공교육 교란 행위 등에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학부모 문화 운동이 절실합니다. 부모들이 공교육을 믿고 지지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교사들이 학부모와 더 소통하고 손을 잡아야 합니다. 교사 집단에서 학부모들이 왜 공교육을 불신하는지 묻고 함께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학부모운영위원회나 학부모회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정부나 교사들도 공교육 정상화 프레임이나 교권 회복에만 머무르지 말고 학부모들과 더 소통해야 합니다. 부모들에게 정책은 멀지만 교사들은 가까운 존재거든요.”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