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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심 “서른 살 뛰어넘은 사랑 한번은 있을 수 있잖아요”

30일 개봉 ‘빛나는 순간’ 주연

국민 며느리·국민 엄마 아닌

로맨스 주인공으로 변신

“멜로 파격적이지만 좋았어요”

한겨레

영화 <빛나는 순간> 에서 주연을 맡은 고두심. 명필름 제공

“잘 이겨내니 ‘아름다운 순간’이 왔어요.(웃음) 서른살 어린 남자와 로맨스라니. 물리적으로도 쉽지 않고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할 수 있죠. 그만큼 특별한 것이긴 하지만 한번은 있을 수 있는 일이잖아요. 사실 이런 역할은 너무 행운이죠.(웃음) 상대 배역에 어떤 배우가 캐스팅되나 했더니 지현우인 거예요. 지난해 봄 촬영할 땐 피부도 하얘서 남성적 느낌이 덜했는데 1년 만에 보니 근육을 키워서 강한 남성이 돼 있더라고요. (영화를) 지금 찍었어야 하는데.(웃음)”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고두심은 유쾌하고 시원시원했다. 이날만은 ‘국민 며느리’나 ‘국민 엄마’가 아닌, 멜로영화의 주인공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방송3사의 연기대상 최다수상자이자 백상예술대상까지 거머쥔 유일한 한국 배우인 그가 실로 오랜만에 파격적인 멜로 연기에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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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빛나는 순간> 스틸컷. 명필름 제공

30일 개봉하는 소준문 감독의 <빛나는 순간>은 제주 해녀인 진옥(고두심)이 서른살이나 어린 다큐멘터리 피디 경훈(지현우)과 사랑에 빠지는 남다른 소재의 영화다. “멜로가 파격적이지만 좋았어요. 해녀의 내면이 강하게 그려져야 하는 작품이었죠. 어느 배우보다 한국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이 나를 놓고 시나리오를 썼다며 ‘제주도 하면 고두심이고 고두심의 얼굴은 제주도의 풍광’이라고 손편지를 써서 보내기까지 했는데 어떻게 거절을 할 수 있었겠어요.(웃음)”


서울에서 내려온 피디 경훈은 해녀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진옥을 찾아간다. 물질도 1등, 성질도 1등인 진옥은 경훈의 제안을 냉담하게 거절한다. 진옥의 마음을 열기 위해 경훈은 동네 허드렛일을 도맡아하지만, 진옥은 그런 경훈이 귀찮으면서도 밉지만은 않다. 진옥이 제주 아이들에게 해녀 물질 시범을 보여주는 날, 경훈은 바닷속에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는 진옥이 걱정돼 물속으로 뛰어든다. 결국 수영을 못하는 경훈을 진옥이 구해낸 뒤, 바다에서 연인을 잃은 경훈의 상처를 알게 된다. 마음을 연 진옥은 촬영을 허락하고 두 사람은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인터뷰를 하게 된다. 제주4·3사건에서 부모를 잃고 딸마저 바다가 앗아간 진옥의 삶을 알게 되면서 경훈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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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빛나는 순간> 스틸컷. 명필름 제공

어린 연인과의 사랑 이야기지만, 영화는 둘의 특별한 사랑을 특별한 방식으로 다루지 않음으로써 특별한 성취를 이뤘다. 영화는 편견에 사로잡힌 불편하고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기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사랑의 빛나는 순간을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담아내는 것에 주력한다. 모든 사랑이 그러하듯 이들의 사랑도 그저 애틋하고 쓸쓸하다.


영화 속에서 고두심은 제주 출신답게 제주 방언을 능숙하게 구사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제주 살아서 제주 방언 쓰는 데 문제없어요. 이번에는 잘 안 알려진 방언을 소개하고 싶어서 진짜 해녀삼촌(손윗여성을 이르는 제주 방언)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죠. 제주에서 촬영하면서 어릴 적 먹던 음식도 맘껏 먹고 사랑하는 제주 풍광도 원없이 볼 수 있어 좋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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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빛나는 순간> 스틸컷. 명필름 제공

사실 고두심에겐 물 공포증이 있었다. 그러나 제주의 정신인 해녀 역할을 대역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수영장에서 연습을 많이 했어요. 또 촬영장이 고향 바다였던데다 제주 해녀 상군들이 현장에 많이 나와 있어 저들이 나를 건져줄 것이라는 안도감도 들었죠. 감독님이 ‘됐다’고 하는데 잘난 척하느라고 ‘한번 더 해보자’ 오기를 부리기도 했어요. 그렇게 물 공포증을 이겨냈죠. 지금 제주 바다에 넣으면 어떻게든 헤엄을 칠 수 있어요.(웃음)” 그토록 기다렸던 멜로 연기지만 “70살의 나이에도 잘 소화할 수 있었던 건 상대 배우인 지현우 덕분”이라며 “여린 이미지와 달리 내면의 강인함이 있는 배우였다”고 했다.


배우는 때로 영화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경훈이 귀를 파주던 장면에서 화사하게 웃을 때나, 화장품을 고르며 입술을 앙다물 때,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에 한참 동안 방안에 서 있는 장면 등에서 그의 연기는 이미 연기 너머에 가 있다. 고향 제주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 제주4·3사건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어 감사하고 기뻤다”며 “진옥의 상처를 털어놓는 장면에서 대본에도 없는 4·3 얘기가 나도 모르게 쏟아져 나오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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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빛나는 순간> 스틸컷. 명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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