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 없어도 당당한 그들처럼…‘복수가 돌아왔다’
황진미의 TV 톡톡
<복수가 돌아왔다>(에스비에스)는 학원 로맨스와 코미디의 외피를 쓴 사회고발극이다. 예측을 살짝 벗어나는 극본과 공들인 연출이 돋보이며, 유승호·조보아의 호연이 각별한 케미스트리를 빚는다. 덕분에 장르를 무시로 넘나드는 드라마임에도 어색함이 없다.
드라마는 9년 전 억울하게 학교에서 쫓겨난 강복수(유승호)가 복학하여 ‘복수’를 펼친다는 서사를 담는다. 9년 전 사건의 악연으로 얽힌 손수정(조보아)과 오세호(곽동연)는 교사와 재단이사장이 되어 있다. 고교동창이 이사장과 교사와 학생으로 만나다니, 황당한 설정이지만 드라마는 세 사람의 필요와 욕망이 맞물리는 지점을 만들어낸다. 즉 나름의 디테일한 공정을 통해 현실감과 설득력을 부여한다.
드라마는 첫사랑의 연인이었으나 사소한 오해로 큰 상처를 입힌 손수정이 강복수와 오해를 풀고 다시 연인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강복수가 학교의 비리를 폭로하는 서사를 펼친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사학비리는 매우 체계적이다. 한 학생을 자살시도로 몰고 간 과도한 경쟁과 차별 뒤에는 추악한 비리가 숨어 있었다. 학종(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학을 가는 시대에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장식해줄 교내대회 입상은 학부모가 돈으로 산 것이었다. 학교는 학부모에게 돈을 걷어 대회를 개최하고, 입시 컨설팅을 해주는 학원들과 손잡고 정보를 유출한다. 입상자 명단과 상장이 대회를 열기도 전에 만들어졌다. 학과 시험도 마찬가지다. 교장은 시험 문제와 답안을 학부모들에게 건네고, 시험 직후 기부금을 받았다.
어떻게 이런 노골적인 비리에 많은 교사들이 눈감았을까. 교사들도 채용비리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학교는 기간제 교사에게 정교사 자리를 수천만원에 팔았다. 납품업체로부터 리베이트도 받았다. 몇배로 부풀린 가격으로 납품받고, 차액을 현금으로 돌려받았다. 재단에게 학교는 온갖 방법으로 이윤을 뽑아먹을 수 있는 창구였고, 이런 식으로 착복한 자금을 축적해 ‘사학의 꽃’인 대학을 설립할 예정이다.
강복수와 그를 돕는 이들은 학교의 비리를 교육청에 진정도 해보고, 언론과도 접촉해보았지만 허사였다. 강복수는 수집한 증거들로 고발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터뜨린다. 1인 미디어 시대의 복수법이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학교의 문제도 과거 <여고괴담>이나 <말죽거리 잔혹사> 등에서 보았던 과잉억압과 다르다. 과거 학교가 권위주의적인 폭력에 기댄 곳이었다면, 현재 학교는 신자유주의적인 이윤추구의 장이다. 과거 학교가 대입 성적을 내도록 아이들을 옥죄었다면, 현재 학교는 대입 성적을 학부모에게 판다. 한두 명의 폭력교사의 일탈이 문제가 아니고, 재단과 학교 전체가 거대한 입시 장사를 하는 셈이다.
최근 <스카이(SKY) 캐슬>(제이티비시)과 <복수가 돌아왔다> 등 교육 문제를 다룬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것은 교육이 계급 재생산의 고리라는 현실 인식과 더불어, 숙명여고 사태로 촉발된 입시에 대한 불신이 작용한 탓이다. <스카이 캐슬>은 최상층에서 벌어지는 사교육의 실태를 밀도 있게 고발하였다. 그러나 드라마의 취지와는 반대로 최고급 사교육 시장을 향한 선망과 불안을 부추기며 광고로 귀결되는 역작용을 낳았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스카이 캐슬>의 세계는 바깥을 조망하는 시선이 없는 폐쇄계이기 때문에, 자멸의 서사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복수가 돌아왔다>의 세계는 바깥을 조망하는 시선을 갖는다. 바로 복수가 외부적인 시선의 담지자다. 그는 9년 전에도 “공부는 못하지만, 멋지고 정의로운 나”를 어필하며 유유자적 생활하던 인물이었고, 9년간의 사회생활을 통해 학교 안의 규율과 경쟁이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지 않음을 알아버렸다. 또한 지금 대입을 목표로 삼지 않기에, 성적을 중시하지도 않는다. 그런 이유로 복수는 학교의 비리에 맞설 수 있는 히어로가 되어, 자신만의 해법으로 학생이 ‘셀프 감금’한 유리부스를 부순다. 고작 학생에 불과한 복수가 이사장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그의 시선과 욕망이 학교에 묶이지 않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학생과 교사와 이사장이라는 수직관계에 놓인 인물들이 내면적으로는 완전히 역전되어 있음을 아이러니하게 보여준다. 가장 강자처럼 보이는 오세호는 이중구속적인 엄마로 인해 열등감과 선망에 휩싸여 피학공격을 일삼는 딱한 인물이다. 가난하지만 자존감이 강한 손수정은 오세호의 사랑을 받는데 전혀 관심이 없으며, 교사로서의 꿈과 성취를 중시해왔다. 그는 비리에 유혹되었던 자신의 과오를 털어놓으며, 양심선언을 통해 간절히 원했던 정교사 자리를 던지려 한다. 비록 기간제일망정 늘 좋은 선생이 되고 싶었던 손수정은 ‘먼저 난 사람’의 길을 보여주는 행위를 통해 진정한 선생이 되고자 한다.
드라마는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학생이 전교 1등을 하는 등 더러 비현실적인 요소를 품지만, 강고한 자본의 시스템을 돌파하는 법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 가장 약자가 가장 강자를 이길 수 있는 무기는 바깥을 보는 시선과 다른 삶을 욕망하는 마음이다. 가진 것 없는 강복수와 손수정이 초연하고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우리도 그들처럼!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