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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의 눈물’ 닦아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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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찬일이 만든 가지구이. 사진 박찬일 제공

예전 수습 요리사 시절에 제일 하기 싫은 일 중의 하나가 가지 손질이었다. 하기야 그 시절에 무엇이든 좋은 일이 있겠나. 팬에 고기를 굽겠나, 파스타를 버무려보겠나. 그저 몸으로 때우는 일이 수습 요리사의 몫이 되게 마련이니까. 가지를 다루는 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그러니까 날 시켰겠지.) 폭이 1㎝ 못 되게 잘라서 소금을 뿌려두었다가 널따란 철판에 굽는 게 전부였다. 가지를 따끈따끈하게 구워두면, 부주방장쯤이 그걸로 ‘요리’를 했다. 구운 가지를 켜켜로 쌓고 그 사이사이에 피스타치오로 양념한 리코타치즈를 넣어서 냉장한 후에 주문이 들어오면 바질을 넣은 토마토소스를 차갑게 뿌려서 애피타이저로 냈다. 고기처럼 쫄깃한 식감과 리코타치즈의 밀도가 침을 나오게 하는 효과가 있어서 아주 인기 있는 전채요리였다. 가지는 이탈리아 국민이 다 먹는 편이고, 특히 남부 사람들이 즐긴다. 가지나 토마토는 둘 다 가지과의 식물이며 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왔다는 혈통도 같다. 도입 초기에 관상용이었다고 하며, 독이 있다는 소문에 식용으로는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인류가 누군가. 독버섯, 식용버섯도 스스로 먹어(실험해서) 구별해내는 지악스러운 종 아닌가. 침통한 유언을 남기고.


그 가지와 토마토를 식용으로 먹기 시작한 사람들이 이탈리아의 유대인이었다는 말이 있다. 당연히 중세의 유대인은 ‘나라’가 없었으니 유럽 전역에 흩어져 살았고, 이탈리아에서도 구박을 면치 못했으리라. 오사카에 살던 우리 동포가 일본인들이 먹지 않고 버리는 소와 돼지 내장을 구워 먹었던 것처럼, 그들도 집단 거주지인 ‘게토’에서 가지와 토마토를 먹었다고 한다.


가지와 토마토는 비슷한 처지여서 누군가의 중매로 만나서 요리가 되는데, 그중에서 현존 우주 최강은 ‘파르미자노 디 멜란자네’라고 생각한다. 원래 남의 나라 요리 이름은 거창해 보인다. 쉽게 풀면, ‘토마토와 파르미자노 치즈류를 오븐에 함께 넣고 구운 가지’ 정도가 된다. ‘가지 라자냐’라고도 한다. 파르미자노 치즈면 치즈지 치즈류라고 쓰는 건, 꼭 파르미자노치즈만 넣는 게 아니라는 역사적 사실 때문이다. 파르미자노치즈는 지금은 누구나 사 먹을 수 있지만, 과거에는 매우 비싸서 남부의 가난뱅이들은 쳐다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남부에 치즈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파르미자노치즈처럼 딱딱하게 굳혀 만든 치즈가 있었다. 이런 거로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파르미자노치즈는 한국으로 치면 미원이나 소 양지 육수, 젓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농축된 감칠맛이 있어서 미원처럼 가루 상태로 술술 뿌리고, 양지육수처럼 밑 양념으로 쓴다. 당신이 인터넷에서 보고 만든 이탈리아 요리가 뭔가 맘에 안 들면, 파르미자노치즈의 가루를 아낌없이 뿌려보라.(미원을 섞으면 금상첨화다.) 친구들이 레시피를 물어볼 것이다.


이 요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가지 요리 중에 세계에서 복잡한 건 없다. 우리 엄마의 유일한 가지 요리는, ‘쪄서 죽죽 찢어서 양념으로 무치는’ 그거, 바로 그거였다. 쪄서 금방 무쳐내면 따뜻한 요리였고, 냉장고에서 묵었다가 나오면 찬 요리가 되는, 그런 거다. 그러다가 상태가 맛 갈 것 같으면 친구인 콩나물무침과 함께 비빔밥의 토핑으로 변신했던 그 요리. ‘엄마, 미안해요. 나는 엄마의 가지 요리가 세상에서 제일 맛없었다고 생각해요.’


이 가지 요리는 물론 와인 안주로도 적격이다.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물론 올리브유를 아껴 넣어야 가능하겠다. 먼저 가지를 길게 잘라서 소금을 살짝 뿌려둔다. 수분이 나오는데, 그걸 ‘가지의 눈물’이라고 한다. 하여튼 그걸 닦아내고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 물 묻혀서 기름에 튀긴다.(다이어트하실 분은 튀기지 말고 팬에 구워라. 물론 튀겨야 더 맛있다.) 시판 토마토소스와 모차렐라치즈, 가루치즈를 적당히 켜켜로 넣어가며 층을 쌓는다. 토마토소스는 가능하면 양념이 복잡하게 섞이지 않은 간단한 거로 구하자. 경험상 뭐가 많이 들어간 것일수록 맛이 없다. 가루치즈는 이탈리아산 파르미자노나 그라나파다노를 추천한다. 이런 양념을 얼마나 넣느냐고? 적당히 넣는다. 짜면 빵과 같이 드시고, 싱거우면 옛날 교과서 영어회화를 하시면 된다. “우주 패스 미 더 솔트 플리즈?”

박찬일표 가지구이

재료 : 가지 500g, 토마토소스(양념 안 한 거 추천) 300g, 모차렐라치즈 100g, 가루치즈 30g, 달걀 1~2개, 올리브유 약간, 바질 몇 잎, 빵가루 3큰술, 후추, 소금 약간


만드는 법


① 가지를 1㎝ 미만으로 길게 썬다. 소금을 가볍게 뿌려 30분 둔다. ② 토마토소스는 한번 가볍게 끓인다. 뜨겁게 둔다.


③ 가지는 물기 닦아내고 밀가루, 달걀 푼 물 순서로 묻혀 튀기거나 아니면 그냥 팬에 노릇하게 굽는다. 튀기는 게 맛있지만 귀찮다.


④ 라자냐 그릇 같은 것에 토마토소스·가지·모차렐라치즈·가루치즈 순서대로 섞고 다시 토마토소스로 시작하는 순서대로 재료를 그릇에 채운다. 채울 때 층마다 재료 분배에 주의한다. 200도로 예열한 오븐에 20분 이상 굽는다. 에어프라이어는 안 써봤지만, 재료가 그릇에 담겨 있기 때문에 어려울 것 같다.


⑤ 빵가루를 술술 뿌리고, 바질을 썰어서 올린다. 후추와 좋은 올리브유를 넉넉히 뿌린다.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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