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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가 왜 책을 냈냐고 묻는다면…‘상관 없는 거 아닌가?’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 펴낸 장기하]

한겨레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 를 펴낸 가수 장기하. 문학동네 제공

“스물한 살 이후로 음악 외엔 하고 싶은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음악을 했고, 많은 사람이 알아보는 가수가 됐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이런 복 받은 사람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의 왼손은 통제가 안 된다. 의지와 관계없이 악기만 연주하려고 하면 힘이 들어가면서 꽉 쥐어진다. 십오년 전쯤 나타난 ‘국소성 이긴장증’이란 희소병 때문이다. 가수가 되기에 앞서 프로 드러머가 되겠다는 꿈도, 기타 연주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병은 그에게 다른 길을 열어줬다. 그가 “이 병이 내게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사실 병에게 엎드려 절하고 싶을 지경”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프로 드러머의 길을 접은 탓에 싱어송라이터로서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꾸릴 수 있었다. 연주를 할 수 없으니 무대에서 자유롭게 퍼포먼스를 할 수도 있게 됐다. “무척 괴롭긴 했지만 ‘이 능력은 여기까지인가보다’ 하고 깨끗이 포기하자, 상상도 못 했던 다른 길이 열렸다”고 그는 말한다.


가수 장기하가 9일 펴낸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문학동네)는 자신의 희소병을 고백하는 글로 시작한다. 아끼던 안경을 잃어버렸다는 사소한 이야기를 왼손의 쓰임을 잃어버린 일로 확장한 뒤, 지난 20년의 음악 인생을 되짚는다. 자신이 좋아한다고 밝힌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속 한 구절을 인용하며 말이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는 형체가 없는 ‘능력’도 다르지 않다고 얘기한다.


이 책에는 장기하의 지난 1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2018년 ‘장기하와 얼굴들 해체’ 이후 6개월가량을 여행을 다니며 쉰 뒤, 지난해 8월부터는 책을 쓰는 데 온전히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저는 노래와 말, 이 두 가지로 생각을 전달해 왔어요. 둘 다 훌륭한 방법인데, 어느 순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9일 출간기념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그가 한 말이다. “중요하지 않은데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에 대해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쓰게 됐고, 제목도 처음 생각한 대로 짓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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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 를 펴낸 가수 장기하. 문학동네 제공

책에는 일상의 소소한 사물이 소재로 등장한다. 안경, 냉장고, 쌀밥, 라면 등 하루하루 마주치는 것들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삶의 태도나 관점으로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다. 젠체하지 않고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싸구려 커피’, ‘별일 없이 산다’, ‘ㅋ’, 등 그의 대표곡에서 느껴지는 자유분방함과 재기발랄함도 묻어난다.


그는 책을 내며 “할아버지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2017년 별세한 고 장하구 종로서적 회장이다. 이유는 “나는 책을 잘 못 읽는다”라는 책 첫 문장 때문이다. “서점을 운영하시고 책도 많이 권해주셨는데 (손자인) 저는 책을 잘 못 읽는다고 썼으니…. 그렇지만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셨으면 굉장히 좋아하셨을 것 같아요.”


‘코로나19 시대’를 힘겹게 버티고 있는 2030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한참을 머뭇거렸다. “내가 뭐라고 청년들에게 한마디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그러면서도 그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세상에 정해진 게 있다고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열 명이 있으면 10가지 상황이 있어요. 7~8명이 똑같은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자기에게 맞는 게 있죠. 남들과 다를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사는 게 조금 더 편해지지 않을까요.” 이것이 “책을 잘 못 읽는” 그가 세상에 책을 내놓은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읽는 것조차 잘하지 못하는 내가 남들이 읽는 책을 쓴다고?” 두렵고, 덜컥 겁이 날 때도 있겠지만, 뭐랄까, ‘상관없는 거 아닌가?’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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