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세터 사로잡은 ‘올드머니 룩’
버추얼 모델 펠리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 사진 /펠리(@feli.airt) SNS 갈무리 |
고급스러움의 상징이었던 하이엔드 ‘명품’의 로고플레이가 지겨워졌기 때문일까. 최근 ‘올드머니 룩(Old Money Look)’이 떠오르며 패피(패션피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올드머니 룩’은 성별에 국한되지 않는 트렌디한 스타일링이다. 최근 패션 씬을 뜨겁게 달군 ‘발레코어’나 ‘바비코어’가 비교적 특정 성별에 집중된 트렌드였다면, 올드머니 룩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의 눈길을 끈다. 자연스럽게 패션 산업에서도 이와 관련된 키워드가 떠오르는 상황.
자유로우면서도 절제되고 관리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올드머니 룩. 그렇다면 어떻게 입어야 제대로 입는 것일까.
‘올드머니 룩’, 핵심은
최근 국내에서 떠오르는 ‘올드머니 룩’ 스타일링은 해외에서 먼저 시작됐다. ‘올드머니’는 말 그대로 ‘오래된 돈’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세대를 거듭해 부와 명성을 축적해 온 경우를 말한다. 주로 유산이나 상속받은 거액의 재산이 존재하는 상류층이 이에 해당하며 올드머니 룩은 그들이 즐겨 입는 패션이다.
상류층이라고 하면 국내에서는 ‘금수저’를 떠올리는 일이 많다. 하지만 단순히 ‘금수저’ 패션이라고 다 올드머니 룩이라고 지칭되진 않는다. IT나 주식 등을 통해 부자가 된 신흥재벌은 이 대열에 포함될 수 없다.
올드머니의 ‘오래된 돈’은 즉 가문 대대로 쌓아온 부를 의미하기 때문에 유산을 상속받을 상류층의 패션이 이에 해당한다. 미국 사회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와스프(White Anglo-Saxon Protestant, 앵글로색슨계 미국 신교도)’를 떠올리게 되는데, 일각에서는 올드머니 룩에 대해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이 선보이는 패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올드머니 룩의 특징은 우아하면서 절제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유로운 이미지를 잃지 않는다. 주로 실크, 캐시미어 등의 고급 원단을 사용해 만든 아이템을 선택하고 디자인은 클래식하다. 옷의 전반적인 색상은 무채색 계열이 대표적이다. 화이트부터 베이지, 브라운, 블랙 등이 활용되고 너무 화려한 원색이나 문양이 들어간 옷은 해당되지 않는다.
클래식, 무채색, 고급 원단 등으로 설명 되는 올드머니 룩 /픽사베이 |
부의 과시, 고급스러움의 대명사이기도 한 ‘명품’을 입는 것과 올드머니 룩은 차이점이 있다. 오히려 올드머니 룩에서는 명품 로고를 보여주지 않는다. 굳이 로고를 코디 전면에 내세우지 않더라도 옷의 디자인과 소재만 봐도 부유한 느낌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오드머니 룩을 ‘조용한 럭셔리’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또 오래된 상류층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옷들도 올드머니 룩을 대변한다. 요트나 승마, 테니스 등 비교적 상류층의 취미로 알려진 레저 활동 때 입는 의상을 새롭게 재해석한 디자인도 올드머니 룩 중의 하나다. 하지만 이 역시 어디까지나 고급스러운 소재와 클래식한 디자인, 무채색 계열의 이미지가 따라올 때에 해당한다.
올드머니 룩에는 상류층의 라이프 스타일이 담겨 있다. /픽사베이 |
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는 ‘뉴머니 룩(New Money Look)’이 있다. 비교적 최근에 재벌이 된 자수성가한 신흥 부자들의 패션을 말한다. 뉴머니 룩은 유행을 민감하게 반영하고 화려한 장식과 강렬한 로고 플레이로 완성된다. 눈에 띄고 개성 있는 코디를 즐기는 떠오르는 부자들의 패션을 부르는 말이다.
올드머니 스타일의 ‘버추얼 모델' 등장도
그렇다면 로고 플레이를 제외하고, 질 좋은 원단으로 제작한 만듦새가 훌륭한 옷을 입으면 올드머니 룩이 완성되는 것일 것일까. 올드머니 룩에서 핵심은 고급 원단으로 만든 옷이지만,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또 있다. 바로 잘 관리된 피부·머릿결이다. 이는 버추얼 모델 '펠리'를 보면 알 수 있다.
버추얼 모델 펠리. 잘 관리된 머릿결과 피부가 돋보인다. /펠리(@feli.airt) SNS 갈무리 |
펠리는 버츄얼 모델로 29만 명이 넘는 팔로어를 가진 인플루언서다. 디지털 크리에이터가 AI로 구현한 모델이며 영국 귀족 같은 감성을 가진 올드머니 룩의 정석을 보여줘 전 세계 MZ세대에게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펠리는 윤기가 흐르는 블론드 헤어를 가지고 있고 다양한 외부 활동을 즐기는 듯한 올리브색 피부톤을 가지고 있다. 오랜 시간 부를 축적한 상류층 가문의 자제답게 피부·머릿결이 잘 관리된 모습을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 모습을 보고 80~90년대 여배우 브룩 쉴즈나 안젤리나 졸리의 외모에 과거부터 이어져 온 미국 상류층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섞인 모습이라는 설명도 있다.
펠리의 SNS 계정에 올라오는 사진을 보면 올드머니 룩과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승마나 요트를 즐기는 사진들이 많고, 파티에서 포착된 듯한 모습도 있다. 전통적인 정원에서의 모습도 돋보인다.
버추얼 모델 펠리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 사진 /펠리(@feli.airt) SNS 갈무리 |
버추얼 모델 펠리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 사진 /펠리(@feli.airt) SNS 갈무리 |
빛나는 블론드 헤어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화이트·블랙 코디는 올드머니 특유의 차분하면서도 은은한 고급스러움을 극대화한다. 주로 고급 소재의 실크나 캐시미어 등을 입고 있는 사진이 올라오고 지나치게 화려한 장식은 최대한 배제하되, 무채색 계열의 코디에 포인트가 될 수 있는 볼드한 액세서리는 눈에 띈다.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버추얼 모델이지만 중성적이고 우아한 모습에서 느껴지는 멋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올드머니 룩, 누가 입었나
올드머니 룩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개념이지만 지금의 유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미국의 배우 ‘기네스 펠트로(Gwyneth Paltrow)’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2016년 스키 리조트에서 한 남성과 스키 사고를 내면서 법정에 서게 되는데, 펠트로의 은은하고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클래식한 스타일이 대중의 인기를 끌게 됐다. 가장 주목을 받았던 아이템은 브랜드 ‘더 로우(The Row)’의 녹색빛이 도는 울 코트가 있다.
대중의 기억 속에 가장 강렬하게 자리잡은 올드머니 룩은 영국의 고 ‘다이애나 스펜서(Diana Frances Spencer)’ 전 왕세자비의 스타일을 예로 들 수 있다. 과하게 꾸미지 않았지만 스타일리시하고, 티셔츠와 청바지의 캐주얼 룩 마저도 깔끔하게 각이 잡힌 고급스러운 자켓과 단정한 로퍼를 매치하며 올드머니 룩의 정석을 보여준다.
고 ‘다이애나 스펜서’ 전 왕세자비 /flickr |
현재 올드머니의 대표로 언급되고 있는 인물은 모델 ‘켄달 제너(Kendall Jenner)’와 그의 동생인 ‘카일리 제너(Kylie Jenner)’다. 국내 한 포털 사이트에서 캔달 제너를 검색창에 치면 자동 완성으로 ‘올드머니’ 키워드가 뜰 정도로 그의 코디는 센스 있다.
사실 켄달 제너와 카일리 제너 두 사람은 대표적인 ‘뉴 머니’ 인물들이다. 그래서인지 유명세를 얻었던 초반에는 뉴 머니 특유의 화려하고 개성 있는 의상을 즐겨 입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패션의 변화가 생긴 것은 카일리. 그 뒤를 따라 켄달도 올드머니 룩에 시도한 모습이 발견된다.
화려한 스타일링이 돋보이는 켄달 제너 /켄달 제너 (@KendallJenner) SNS 갈무리 |
헤일리 비버, 켄달 등 셀럽들의 스타일을 책임지는 대니 미셸(danix michelle)이 SNS에 공개한 사진 속에서 파리에서 포착된 켄달이 화려함을 벗어나 우아하고 클래식한 의상을 입고 있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진 속 켄달이 입고 있는 드레스는 알라이아의 제품이며, 보르도 와인 컬러의 에르메스 백이 다소 눈에 띄긴 하지만 함께 매치한 블랙 헤어밴드와 슈즈가 단정하고 우아한 느낌을 완성 시킨다.
알라이아의 드레스로 센스있는 올드머니 룩을 선보인 켄달 제너 /대니 미셸(@danixmichelle) SNS 갈무리 |
센스있는 올드머니 룩을 선보인 켄달 제너 /대니 미셸(@danixmichelle) SNS 갈무리 |
이외에도 심플한 색상과 디자인의 미니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며, 켄달의 SNS계정을 통해 공개된 보테가 베네타의 구조적인 형태가 돋보이는 그레이 드레스 등 올드머니 룩의 느낌을 보여준다.
태생적인 상류층의 모습을 가장 정석으로 표현한 스타로는 모델이자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소피아 리치(Sofia Richie)’가 있다. 소피아 리치는 유명한 팝스타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의 딸. 실제 상류층의 삶을 살고 있는 그의 일상에서 보이는 우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룩은 올드머니 스타일링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특히 일각에서는 카일리와 켄달의 새로운 스타일 롤 모델이 소피아라는 얘기도 나올 정도로 그의 세련된 착장은 대중들에게 높은 주목을 이끈다.
올드머니 룩의 정석 '소피아 리치' /소피아 리치(@sofiarichiegrainge) SNS 갈무리 |
올드머니를 잘 보여주는 브랜드
그렇다면 올드머니를 가장 잘 나타내는 브랜드는 무엇이 있을까. 국내에서는 블랙핑크 제니와 신라호텔 이부진 사장이 든 가방 브랜드로 유명해진 ‘더로우’가 있다. 로고를 전반에 드러내지 않으면서 고급스러운 소재로 만든 옷이 올드머니 룩의 정수를 제대로 보여주는 브랜드로 손꼽힌다.
특히 ‘더로우’는 화려한 색을 쓰지 않으면서도 존재감이 확실한 디자인을 선보인다. 베이직하면서도 무채색한 아이템이지만 디테일한 요소들이 고급스러움을 보여준다. 부유한 상류층의 코디를 완성하는 브랜드답게 고가에 속하는 브랜드다.
더로우 Winter 2022 Collection /더로우(@theRow) 공식 SNS 계정 갈무리 |
올드머니 룩을 보여주는 또 다른 브랜드로는 ‘막스마라(Max Mara)’가 있다. ‘조용한 럭셔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다. 막스마라의 겨울 코트는 상당히 고가에 속하지만 완벽한 재단을 통해 선보이는 클래식한 디자인 그리고 카멜, 캐시미어 등 고급스러운 소재 사용으로 셀럽들 사이에서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손꼽힌다.
막스마라 2023 FW 컬렉션 /막스마라(@maxMara) 공식 SNS 계정 갈무리 |
이외에도 ‘폴로 랄프로렌(Polo Ralph Lauren)’은 올드머니 룩에서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다. 아주 작게 보이는 로고는 미국 상류층의 스포츠로 불리던 폴로를 형상화하고 있다. 미국 명문 대학교 학생들의 스타일인 아이비리그 룩을 보여주면서도 정통적인 상류층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브랜드다. 셔츠, 니트 아이템이 특히 유명하다.
크리미한 색이 돋보이는 폴로 랄프로렌 컬렉션 /폴로 랄프로렌(@poloRalphLauren) 공식 SNS 계정 갈무리 |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벨기에 명품 브랜드 ‘델보(DELVAUX)’ 역시 올드머니 룩을 잘 보여주는 예다. 델보는 국내에서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조용히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으며, 로고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점이 큰 특징이다.
올드머니 룩의 유행으로 최근 떠오르는 브랜드는 ‘데스트리(DESTREE)’가 있다. 국내에서는 신라호텔 이부진 사장이 하객 패션으로 선보이면서 유명해진 브랜드로 가장 대표적인 아이템은 ‘건터 마스망트리(Gunther passementerie)’ 백이 있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잠실점서 진행되는 ‘데스트리(DESTREE)’의 팝업 /롯데백화점 |
데스트리는 모자로 시작해 가방과 주얼리 등 액세서리류를 확대했으며, 2022년부터 여성 의류도 선보인다. 역시 특별한 로고 장식 없이 현대 미술에서 받은 영감을 주축으로 유러피안 공예 디테일과 조화로운 색상, 비대칭성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왜 올드머니 룩에 열광할까
올드머니 룩은 로고 플레이를 선보이는 대중적인 명품 브랜드와는 대비되는 스타일 트렌드다. 업계에서는 올드머니 룩이 인기를 끄는 요인에 대해서 성공을 과시하는 ‘플렉스(FLEX)’문화에 대한 피로도가 증가하면서 조용한 럭셔리를 찾는 이들이 늘어났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인플루언서나 유명 셀럽을 중심으로 갑작스럽게 부를 축적한 신흥 재벌의 뉴 머니 패션이 긴 시간 인기를 끌면서 오히려 이제는 식상한 트렌드가 됐다는 설명이다. 결국 이와 반대되는 전통적 상류층의 패션이 떠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올드머니 룩을 보여주는 인물들 역시 결국엔 신흥 재벌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현재 젊은 층 사용자가 다수인 각종 SNS에서 ‘올드머니 패션’에 관련한 키워드가 급상승하고 있으며, 해당 스타일링을 보여주는 버추얼 모델의 활동까지 눈에 띄며 업계에서는 ‘올드머니 룩’의 인기가 지속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