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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신 마음을 심는 한옥 리모델링 스테이&와인숍

스테이&보틀숍 식목일

취향이라는 땅 위에 심은 오래된 한옥이라는 묘목. 열정적인 부부의 손길을 받아 역사와 스토리라는 가지를 뻗어, 공간이 갖는 가치와 재미라는 결실을 맺었다.

새로우면서 옛것인 집을 사랑했던 부부

과거보다는 분위기가 조금 차분해진 광주 북구 중흥동. 큰길에서 조금 빗겨나 한 걸음 들어서면 ‘어렸을 적 살던 동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정겨운 골목길이 나타난다. 그 가운데에 오승재, 박수민 씨 부부가 살고 가꿔나가는 스테이 겸 와인숍, ‘식목일’이 있다.

낡았지만 단단한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식목일은 새것과 낡은 것의 미묘한 조화가 만들어내는 편안함이 인상적인 공간이다. 건물은 안팎으로 정돈된 모습을 하면서도 옛 흔적을 세심히 남겨놓았다. 서까래와 기둥에서는 시간을 이겨낸 강인함을, 곳곳에 배치한 오래된 물건과 옛 자재들이 부부의 시선으로 재해석된 공간 안에서 서로의 존재감을 느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여러 의미로 고생은 했지만, 이런 노력의 바탕에는 8년 전부터 시작된, 사라져가는 풍경에 대한 부부의 아쉬움과 나름의 동경이 자리했다.


골목길에서 바라본 식목일 전경. 왼편 입구는 와인숍, 오른쪽은 식목일 마당으로 들어서는 대문이다. 대문은 원래 이 집 물건이 아닌 다른 집에서 구해온 물건이다.

구옥과 어울릴 수 있도록 외장재와 창호를 고르고 주문하는 데 적잖은 신경을 썼다. / 예전에는 창고였을 공간을 와인숍으로 만들었다. 이곳에선 부부가 직접 시음하고 제안하는 내추럴 와인과 거기에 페어링하기 좋은 핑거푸드 등을 다루고 있다.

신혼집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만났던 많은 집, 그리고 사라져가는 골목길과 공간들. 처음에는 충분치 않은 사정에 맞춰 집을 구했노라고 했던 부부였지만, 어느새 한옥과 옛집이 가진 분위기와 이야기에 감화되었다. 신혼집이 자리를 잡고 부부는 손이 닿는 가능한 범위에서 오랜 이야기들을 품은 공간들을 그저 사라지게 하는 것보다 새로운 해석을 거쳐 사람들 사이에 남아있을 수 있기를 바랐다. 광주와 전남을 종횡무진 오가던 부부에게 어느 날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기회가 왔다. 신혼집 앞, 지금의 식목일이 될 집이었다.

식목일의 침실. 벤치를 겸한 큰 창 너머로는 이 집의 설계 도면과 랜더링한 이미지를 모티브 삼은 작품이 걸려 있다. 윈도우 벤치 또한 교회에서 쓰던 라왕 의자 목재를 활용했다. 요즘은 흔하지 않은 라왕은 뒤틀림과 강도가 좋아 오래간다고.


식목일 바틀에서 취급하는 모든 내추럴 와인은 부부가 직접 시음하고 그에 대한 솔직한 묘사와 제안을 작은 카드에 적어 달아놓는다. 천장은 루버 지붕 위에 유리를 얹어 낮에는 그림자와 빛의 대비가 무척 인상적인 그림을 만든다.


자쿠지는 와이드한 한옥 창호를 열면 마당 안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날 것 같은 지붕면과 어울려 노천탕을 즐기는 듯한 느낌을 누릴 수 있다. 자쿠지를 포함한 주택의 모든 서까래는 일일이 부부가 직접 그라인더로 묵은 때를 갈아내는 수고로움을 거쳤다.

도심 속 한옥을 고쳐 살아간다는 것

1967년에 지어진 한옥을 ‘식목일’로 만들어내는 부부의 고군분투는 무려 일 년 반이 걸렸다. 평일에는 서울에서 업무를 보고, 금요일 밤부터 주말은 오롯이 모두 식목일에 쏟았다. 시간이 아까워 새벽까지 공구를 붙들기 일쑤였고, 때론 끝없는 작업량에서 오는 아득함에 포기하고 싶은 날도 여럿이었다. 그래도 부부는 한 발짝씩 나아갔다. 그들의 손이 닿지 않은 데가 없었고, 소품 하나, 자재 하나도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아 구해 놓았다. 그 와중에 한편에 와인숍도 준비했다. 마찬가지로 발품 팔고 마셔보며 공부했고, ‘변화’라는 오묘한 성격을 가진 ‘내추럴 와인’을 주력으로 삼았다.

대청마루의 우물마루는 한 장의 긴 판을 특수 고주파 건조를 거쳐 짜 넣어서 나뭇결이 뒤틀림 없이 길게 이어진다. 상부의 흙 벽면은 기존 벽체의 흙을 모아 미장재에 섞어 다시 쓴 것이다. 덕분에 기존 목재와의 색 조합이 자연스러워졌다.


식목일을 고치기 전 철거 과정에서 나온 설비와 하수관들. 집은 1967년에 지어졌지만, 그 전에 쓴 듯한 일제 강점기 도기 하수관이 발굴되기도 했다. 만약 시공사에 일임했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면 이런 물건이 있는지도 모르고 사라졌을 것이다.

식목일의 문을 열고 지금까지도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바삐 살지만, 정말 좋아하는 이 집과 동네의 분위기를 나눈다는 재미에 부부는 힘을 낸다. 언젠가는 이 골목의 보석과 같은 공간들을 활용해 좀 더 재밌는 거리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는 부부. 책방도 보고, 카페도 즐기는 와중에 사람들이 우리가 잊고 있던 다양한 공간들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식목일이라는 이름은 시작과 관련이 깊다. 부부가 처음 만난 날이 식목일이었고, 그 인연을 평생 가져가자고 맹세했던 날도 식목일이었다. 그날의 이름을 이 집에 담았다. 식목일에 나무를 심고 키우듯 부부는 집을 키운다. 이 집이 여러 손님을 맞으며 맺을 결실이 궁금하다. 모르긴 해도, 부부가 나누는 와인처럼 순간마다 다양한 맛으로 다가올 것이다.

취재협조_ 식목일 www.instagram.com/sikmokil_ing
취재_ 신기영 | 사진_ 변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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