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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의 미래는 접히고 말리고 구겨진 OLED에.

TV의 미래는 접히고 말리고 구겨진

그동안 CES 가전 박람회의 꽃은 TV였다. 신접살림에도 빼놓을 수 없고, 가족 단란한 거실의 상징과 같은 것이어서였으리라. 그러나 한국처럼 선진각국의 가치관도 1인 가구, 스마트폰 문화 등에 의해 급변하기 시작했다. TV를 집에 둘 경제적 심리적 여유가 줄어들고, 영상 소비를 스마트 기기로 때우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TV를 향한 관심이 점점 식어가고 있던 차, 올해 CES도 그 내리막을 걸을 터였다. TV 업체의 올해 테마는 관성적으로 8K였는데, 소니나 삼성 등도 98인치의 8K를 챙겨 들고 라스베가스로 향했다.


그런데 이번 박람회에서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은 것은 LG 시그니쳐 OLED TV R이었다. 거실 TV장 같은 수납장에서 65인치의 OLED 패널이 솟아오른다. TV가 그 통 안에 말려 들어가 있었던 것.


일반 TV처럼 완전히 벌떡 선 상태의 '풀뷰', 날씨나 시계 용도로 살짝 뽑아 쓸 수 있는 '라인뷰', 그리고 완전히 말려 들어가 가구처럼 보이지만 인공지능 스피커로는 쓸 수 있는 '제로뷰'까지 여러 형태로 변신할 수 있다. 여기에 21:9 와이드 영화에 맞춰 위아래 검은 여백이 없어질 정도로만 내려앉는 기능까지 업데이트로 추가될 예정이라 한다.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TV는 시청 시간이 아닐 경우가 대부분이라도 값비싼 부동산을 대거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미래의 TV는 꼭 화면을 봐야만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곧 닥칠 AI 시대를 위해서는 가정에 어찌 되었든 존재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야 참견을 할 수 있다. TV는 이제 자기주장 강한 모니터가 아니라 분위기에 녹아드는 가구가 되고 싶다.


TV는 벽면에 두는 것이 아니라, 창가에 두는 것이라 말하는 듯, TV가 말려 들어가니 채광 좋은 통창 너머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 영리한 TV R의 홍보 전략은 동영상으로 공유되며 바이럴이 되었다.


OLED는 종래의 LCD와는 달리 뒤에서 빛을 비출 필요가 없기에 정말 얇다. 이미 LG는 3년 전인 2016년 1월에 돌돌 마는 OLED를 선보이며 미래를 잠시 보여줬는데, 0.18mm밖에 하지 않는 OLED는 비닐 같은 느낌이었다. 이번의 65인치의 돌돌 마는 TV도 작년 CES에서도 컨셉 제품으로 선보였던 것이지만, 실제 출시될 것이라는 뉴스이니 체감이 다소 다르다. OLED를 휘고 말고 접는 일은 3년 만에 일상이 될 것 같다. 내구성이 다소 걱정되었는데, 5만 번 말았다 폈다 할 수 있다고 한다. 하루에 두 번 껐다 켰을 때로 치면 34년이다.


34년이라……. 34년 뒤에는 패브릭이나 가죽처럼 OLED가 인테리어나 가구의 소재가 될지도 모르겠다. OLED 소파나 OLED 온수매트, 아니면 스카치테이프처럼 끊어서 쓰는 OLED가 책상에서 굴러다닐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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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hyun
채널명
김국현
소개글
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