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스트레스는 자기 계발의 기회?
추석이다. 예외는 있지만 물류는 그 속도를 멈추고 가게도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추석이 이처럼 연휴가 된 것은 한국 전쟁 후의 현대적 사건이다. 이동 수단의 발달과 상경(上京)이라는 트렌드가 정착된 이후의 일이다. 또 올해는 비록 약하지만, 장기연휴가 가끔 복권처럼 당첨되는 이유는 주5일제의 시행 덕이 컸다.
양손 무겁게 선물 보따리를 싸들고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는 이미지는 성장하는 시대의 상징적 풍경이기도 했다. 오래간만에 돌아간 시골에서 추억을 나누고 축복을 빌며 고향과 본가의 마음 한가득 짊어지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은 추석다움 그 자체였다. 지친 일상을 벗어나 전원에서 그리운 사람들과의 힐링, TV에서는 갑자기 모두 한복을 입고 몰려나와 이러한 가족의 풍경이야말로 대중이 모두 바라는 것이라 이야기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 편하게 돌아갈 수는 없는 이들도, 돌아갈 곳을 이미 마음속에서는 잃은 이들도 많았다. 세상은 모델 하우스가 아니었다. 제사나 성묘 등 의무감이 된 전통행사로 가족을 규합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의무감은 스트레스를 낳는다.
대법원에 의하면 매년 추석 연휴 직후 법원에 접수되는 이혼 건수가 급증한다고 한다. 각종 취업포털의 조사에 의하면 성인 5명 중 4명꼴로 명절 스트레스를 겪는다고 한다. 젊은 층이 전통적 명절보다는 오히려 할로윈과 같은 우리로서는 근본 없는 서양 축제에 탐닉하곤 하는 이유는, 가족이 아닌 낯선 이들과 즐길 수 있는 느슨한 축제라서 그럴 것이다.
현대인은 점점 느슨해진 인간관계의 적당한 거리감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그런데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도 친한 척해야 하는 명절은 위태로운 시기다. 추석이 PC방 대목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이들이 갑자기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야 하니 화제가 궁하다.
“결혼은 언제쯤 하니”, “승진할 때 되지 않았니”, “아기는 언제쯤” 등등.
눈치 없는 일가친지의 오지랖도 모두 관심은 주고 싶으나 함께 공감할 화제를 발굴할 능력이 없어서 오는 일이다. 이럴 때는 너그럽게 만면에 포커페이스 미소를 띄우며 자동적 리액션을 영혼 없이 되돌려 주자.
바꿔 생각하면 소중한 기회인데, 자신의 연기력을 닦는 리허설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연기력은 사회생활에서도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소셜 미디어 및 블로그에 #추석 태그로 자신이 겪은 기가 막힌 이야기를 예술혼으로 승화시켜 보는 법도 있다. 손안의 스마트폰은 우리 몸이 어디에 있든지 새로운 세계로 정신을 데려다 준다. 그냥 친척 흉을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체험과 교훈이 담긴 콩트로 만들어 보자.
이런 자기 계발의 기회까지 주다니.
여전히 추석은 현대인에게 무언가를 넉넉히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