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는 스크린으로 등장한 모토로라 레이저 복각판.
돌이키고 싶은 과거의 영예?
열 때의 탄력성, 닫힐 때의 소리.
공들인 엔지니어링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소박한 쾌감이다. 예를 들어 에어팟 케이스에는 그 맛이 있지만, 염가의 샤오미 무선 이어폰의 케이스에는 그 느낌이 전혀 없다. 생각해 보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플립폰(우리 식으로 부르자면 폴더폰)’, 그 플립의 맛이란 그런 것이었다. 스타택(StarTAC)에서 레이저(RAZR)에 이르기까지 경쾌한 마찰음과 탄력, 분명히 아직도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으리라 생각했는지 최근 모토로라는 복각판 레이저를 갤럭시 폴드 마냥 접히는 OLED 스크린으로 내놓았다.
개성이 실종된 스마트폰 시장이기에 이러한 시도는 반갑기는 한데, 다소 걱정도 된다. 레이저를 기억하는 이들은 너무 늙지 않았나 해서다. 도대체 레이저가 무엇이길래 그들은 이런 모험을 하는 것일까.
3대 세습기업, 모토로라의 영욕(榮辱)
“강남구청역 모토로라 빌딩 뒤쪽.”
그 빌딩 꼭대기에 둥그렇게 매달린 M자 간판. 당시 모토로라는 그것이 M이라기보다 날개를 뜻한다며 ‘wings’라는 테마의 광고를 한국에서도 틀어대곤 했었다. 그 상징 같은 간판은 맛집을 찾아가기 위한 이정표와 같은 곳이기도 했다. 기억은 미화된다지만 가끔은 그리워지는 풍경들이다. 그 거리가, 그리고 모토로라가 있던 시대가.
모토로라의 시작은 갈빈 형제의 갈빈 공업사였다. 모토로라의 바로 그 ‘motor'는 자동차, 즉 모터 카의 그 단어였다. 모터(Motor)와 소리를 뜻하는 접미사(ola)를 합했는데, 그 공업사는 라디오를 차에 도입한 세계 최초의 카오디오 업체였다.
유능한 이공계 실업가의 벤처였기에 기술력이 있었는데, 그들은 경찰차마다 달리게 되는 바로 그 무선기기도 만들어 팔며 급성장했다. 여기에 2차대전이라는 특수에, TV 시대의 개막까지 ‘모던’의 개화는 그들의 편이었다.
아들 밥 갈빈의 수완도 나쁘지 않았다. 2세는 점점 커나가는 이 대기업의 입지를 더 확장하며 탄탄히 다졌다. 달착륙 때 닐 암스트롱의 목소리를 전달했던 것도 바로 모토로라 장비였다.
그렇게 다방면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종합정보통신업체로 성장한 모토로라. 통신뿐만 아니라 컴퓨터 분야에서도 탁월했는데, 인텔과 쌍벽을 이루는 CPU 업체이기도 했다. 애플 리사와 매킨토시의 두뇌는 바로 모토로라 68000이라는 전설적 CPU였고, 2006년 인텔로 개종하기 전까지 사용했던 파워 PC는 AIM(Apple-IBM-Motorola)이라는 연합군의 작품이었다. 심지어 8비트 애플][에 탑재되었던 추억의 CPU 6502도 모토로라 6820의 카피품이었다. (6502 제조사의 핵심인력 대다수가 모토로라 출신이었고, 모토로라에 의한 기나긴 특허/지재권 소송에 이겨날 수 없었던 6502 제조사는 코모도어에 팔리더니 결국 코모도어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갔다.) 이 시기를 살았던 컴퓨터 키즈 모두에게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모토로라라는 거대 존재를 각인시켰다.
모토로라는 94년경만 해도 세계 무선 전화 시장의 60%를 장악, 종업원이 무려 15만 명에 달하는 초거대기업이었다. 2세인 밥 갈빈 회장은 한국과의 인연도 깊어, 한국 반도체 산업에 이바지한 공로로 한국정부로부터 동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아들 크리스 갈빈의 경영수업을 위해 뒤로 물러난다.
이때부터 알 수 없는 망조가 들기 시작하는데, 누가 봐도 사업의 우선순위가 뒤죽박죽된다. 예컨대 아날로그의 매너리즘에 빠지기라도 한 듯 디지털을 신경 쓰지 않았다. 텔슨전자 등 한국 기업 등에 그냥 ODM 하청을 주는 등 게으름을 피우더니 갑자기 위성전화 이리듐을 하겠다고 설쳤다. 그리고 그나마 핸드폰 업계에서의 주인공 자리마저 결국 노키아에 의해 대체되었다. (여담이지만 그 텔슨전자는 2005년 파산, 매각된 과거 사옥 지하에 전 대표가 헬스클럽을 꾸렸으나 그나마도 월세 분쟁 끝에 용역까지 동원하며 버티다 지난달 말 강제 철거당했다. 몰락에도 품위가 있다.)
모토로라의 마지막 불꽃 RAZR
이리듐의 몰락과 함께 결국 3대 갈빈 회장님은 물러나게 된다. 그리고 우연처럼 모토로라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바로 (나이 좀 있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레이저(RAZR) 폰의 대히트 덕이었다. 2004년부터 4년간 1억 4천만 대를 팔았다.
배컴이 광고하고 패리스 힐튼이 바이럴을 만들어주니 모두 갖고 싶어 했다. 모토로라는 다시 살아나 업계의 거물로 돌아온 듯했다. 여기저기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애플과 아이튠즈 폰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두 그저 마지막 불꽃처럼 타오른 순간이었다.
아이튠즈 폰 ROKR. 스티브 잡스는 어딘가 억지로 데모를 해주는 듯한 느낌이다. 열정이 보이지 않았고, 데모도 반쯤 실패했다. |
그 아이튠즈 폰은 보란 듯이 망해버렸던 것이었다. 그리고 1년 남짓 뒤에 아이폰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설 또는 해석이 있다. 모토로라에 대한 존경심에 협업의 기회를 줬는데 모토로라가 만들어 온 폰의 허접스러운 품질에 놀라 서둘러 아이폰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또는 의도적으로 아이폰을 만들기 위해 모토로라에 접근했고 모토로라는 폰 사업 노하우만 가르쳐주며 이용되었다는 이야기. 어느 쪽이 진실이든 모토로라와 함께 커온 애플이 아이폰으로 모토로라의 관을 짜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 후 모토로라의 사연은 우리가 아는 대로다. 배반감에 떨던 모토로라에게 접근한 이들은, 역시 모토로라에 존경심을 갖고 있던 또 다른 기업 구글이었다. 그들과 손잡고 아이폰 대항마 드로이드 시리즈를 만들었지만, 한국에서의 옴니아와 비슷한 처지가 되고 만다. (글을 쓰며 깨달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 드로이드 시리즈의 마지막 버전 포톤Q를 2018년까지도 실사용한 모토로라 마니아였었다)
어쨌거나 모토로라는 그 후 갈기갈기 찢어져 무선 네트워크 부문은 노키아 지멘스에 팔리고 휴대전화 부문은 구글에게 팔리게 된다. 125억 달러라는 인수가는 당시 구글에게도 약간은 부담되는 돈이었는데, 3년 만에 다시 레노버에게 특허만 남기고 다 팔아버린다. 거래가는 29억 달러였다. 나 같은 소인배는 이해 못 할 일이기는 하지만 구글은 모토로라를 너무나 존경했기에 그들의 특허 값으로 10조 원 정도는 쳐준 것 같다.
레이저는 이처럼 스러져간 IT 명가의 마지막 타오른 불꽃이었다. 이 불꽃놀이를 OLED로 다시 한 번 하고 싶은 그들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