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우 10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는 경제적 이유
올해의 노벨 경제학상은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에게 돌아갔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이란 경제학에서 주장하듯 합리적 존재는 아니라는 점을 간파한 학파. 그다지 합리적이지 못한 우리는 물건의 가치를 합리적으로 판정할 수가 없다.
따라서 소비자 심리를 이해한 가격 설정이 장사에서는 중요해진다. 좋아하는 브랜드에 원가 생각하지 않고 카드를 긁는 이유는,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인간은 그 브랜드가 만들어내는 세상에 쉽게 감정이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얼마가 되었든 그 가격에 납득이 가게만 만들면 지갑은 열린다. 세일 시에 원래 정가가 오히려 중요한 이유 또한, 득 봤다는 안심이야말로 손실을 회피하고자 하는 우리 인간의 성향을 만족하게 하기 때문이다.
윈도우 10은 2년 전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무료 업그레이드라는 가격을 설정했다. 그리고 10억대에 윈도우 10이 깔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장담했던 2년이 지난 지금 그 성적은 6억 대. 물론 6억이라는 수치도 대단한 이정표에 도달한 일이지만, 득 보려는 사용자들이 예상처럼 많지는 않았던 것.
알려진 바로는 윈도우 10은 마지막 윈도우. 2020년에 지원이 만료되는 윈도우 7과는 달리 일단 10을 확보하면 계속 업데이트를 받게 될 터, 당장 쓰든 안 쓰든 업그레이드를 해두는 것이 합리적인 소비생활일 것이다.
그런데 윈도우 10이 들려주는 미래에 생각처럼 모두가 납득하지는 않았나 보다. 10이 제시하는 비전에는 큰 관심이 없고, 7스러운 사용법 아니 XP적인 사용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우리 주위에 더 많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계.
북미와 유럽 등은 이미 윈도우 10의 점유율이 윈도우 7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한국은 윈도우 7이 절반을 넘고 윈도우 10의 비율은 미비하다. 비슷한 증상은 중국에서도 선보이는데, 대개 PC 환경에서 정부의 입김이 세고 독자적 PC 생태계가 뿌리내린 곳들이다.
윈도우 7을 고수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 사연을 물어본 적이 있다. PC는 이제 은행이랑 관공서 들어갈 때밖에 쓰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OS를 깔았다가 이들 사이트가 안되는 스트레스를 겪기 싫어서라고 했다.
국가의 어떤 정책이 개인의 행동과 그 소비패턴, 심지어 재산권에도 영향을 미치는 흥미로운 사례다. 합리적 소비자라면 ‘무료’로 상품을 개비할 기회를 마다할 리가 없겠지만, 금융과 공공 업무에 무용지물이 되는 체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두려움이 크긴 컸나 보다.
윈도우 10의 공식 무료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은 작년 여름에 종료했지만, 아직 방법은 있다.
보조공학(Assistive Technology, 또는 재활공학) 기능의 사용자라면 업그레이드의 길을 열어둔 것.
보조공학이란 신체에 불편을 지닌 경우, 이를 돕기 위한 기능 일반을 말하는데, 누구나 살다 보면 어느 정도의 불편을 느끼는 날은 온다. 돋보기 기능, 음성 보조 기능, 키보드 단축 키 등 장애 정도와 무관하게 보조공학은 누구에게나 요긴하다.
그러나 이 기회도 바로 이달 말이면 끝이 난다. 올 연말에는 통신사 마일리지 이외에도 신경 쓸 것이 하나 더 생긴 셈.
플랫폼은 절대적 모수가 필요한데, 윈도우 10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윈도우 10의 마음은 아직도 급하다. 그런데 정말 믿고 업그레이드를 해도 될까?
10년 된 기계만 아니라면 할 만하다. 요즈음 기계들에서는 오히려 윈도우 7보다 쾌적한 듯하다.
하지만 연식이 10년 정도 된 기계의 경우에는 현재 기준으로 볼 때 GPU의 성능이 너무나 떨어져서, 윈도우 10이 화면을 그리는 묘기를 육안으로 관찰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게 된다. 이런 기계는 남은 여생을 윈도우 7과 함께 편안히 보내게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