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과 블록체인, 버블과 혁신 사이
비트코인을 필두로 하는 다양한 가상암호통화(crypto-currency)가 요즘 뜨겁다. 그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은 그 성능과 설계가 혁신적이기에 각국의 대형 은행, 심지어 중앙은행 중에도 이 기술을 활용하여 독자적 가상통화를 발행하려는 시도도 생길 지경이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응용분야로 퍼져나갈 수도 있어서, 금융 이외의 활용 사례도 곳곳에서 샘솟아 나고 있다. 부패로 골머리를 썩이는 남미에서는 부동산 토지대장을 분산(分散) 원장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한다거나, 회계 거래 내역을 블록체인화하여 변경 불가능한 시계열 장부를 모두와 함께 감사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분산형 자율 조직(DAO,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이라는 관리자 없는 사업체도 블록체인으로 만들 수 있다. 투자자와 이사회가 법인을 만드는 대신 컴퓨터 코드와 코인 소유자들이 현실 세계에 속박되지 않는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다.
블록체인도 결국은 P2P. 분산되어 기억될만한 모든 것들이 그 가능성의 영역에 있으니 이 기술의 미래는 필경 밝다고할만 할 것이다. 문제는 현시점의 대표적 활용 사례인 가상암호통화들이다.
아무리 봐도 최근의 과열 양상은 버블 수준이다. 비트코인에 대한 흥미로운 초기 일화가 있다. 2010년 한 프로그래머는 자기가 채굴한 1만 비트코인이 실생활에서 쓰일 수 있을지 궁금하여 파파존스 두 판을 살 수 있는지 시도해 봤다. 물론 초창기다 보니 채굴은 쉬웠다. 굳이 시세로 치자면 30달러 될까 말까 할 시절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비트코인 하나는 300만 원 안팎이다. 피자 두 판 짜리 그 비트코인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지난 세월 비트코인은 폭락과 급등을 롤러코스터처럼 거듭했다. 결정적인 견인세력은 중국이었다. 바이두가 비트코인 결제에 대응하면서 투기가 시작되었고, 중국인민은행이 결제를 자숙하라고 통보하기까지 랠리는 계속되었다. 그 후 초대형 ‘e암거래’ 사이트 실크로드 경영자가 체포 후 종신형을 받으며 비트코인이 압수되고, 각종 거래소 사건이 터지면서 이미지가 실추하고 가치가 폭락하게 된다. 작년부터 또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는데, 중국이 자본 규제를 실시하면서 해외 자금 유출이 힘들어지자 다시 차이나 머니가 동원된 것. 여기에 혹시 미국 금융당국이 비트코인 연동형 ETF를 허가할지도 모른다는 뉴스에 희망과 좌절이 단기간에 반복되면서 기대감이 증폭된다. 지금도 진행형이긴 하지만 기축통화 달러를 무엇보다 소중히 하는 미국이 그런 결정을 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이처럼 비트코인 등 가상암호통화는 분명 기성질서로부터 자유로운 가상세계라는 대안을 마련해 주고는 있었다. 그런데 그 대안이 그렇게 밝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중국이라는 죽의 장막을 넘나들고 싶은 돈, 아니면 랜섬웨어의 몸값 및 마약 거래 등 각종 범죄의 결제로 쓰일 돈 정도만이 기득권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는 이 대안에 열광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시스템에 기꺼이 전산 리소스를 스스로 대면서 잔돈이라도 챙기려는 채굴꾼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 대만 컴퓨텍스에서는 개성 있는 마더보드로 존재감 있던 회사 애즈락(ASRock)이 그래픽 카드를 단번에 13장 꼽을 수 있는 마더보드를 선보였다. 채굴에는 GPU가 활용되기 때문이다. 요즈음 그래픽 카드가 씨가 말라서 일반 PC 조립마저 힘든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필두로 한 블록체인 가상통화는 이미 그 종류만도 수백여개. 기술이 보편화되다 보니 너도나도 무슨 무슨 코인 만드는 재미가 들렸다. 그중 마리화나에 특화된 팟코인이라는 곳은 데니스 로드맨을 북한으로 보내는 행사의 스폰서를 자처하기도 했다. 세상은 이미 요지경 속이다.
기술의 관점에서 보면 점점 거대해져 가는 이 규모의 경제는 바라보기만 해도 장관이지만 그 버블의 폭음도 덩달아 커질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