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대 입시를 포기한 인공지능이 남긴 것
[김국현의 만평줌] 제66화
올해도 수능 시즌이 지나갔다. 원조 수험 대국 일본도 지금은 수험의 계절. 매년 이맘때 흥미로운 IT 뉴스가 업데이트된다. 바로 ‘로봇은 동경대에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프로젝트. 2011년에 시작된 이 프로젝트의 중심은 일본 국립 정보학 연구소였지만, 과목별로 후지츠나 NTT 등 기업 및 대학이 과목별로 공략팀을 이루는 등 일본의 대표적인 인공지능 프로젝트가 되었다.
한국보다 인구 많은 일본에서 서울대보다 정원이 적은 동경대는 가장 들어가기 힘든 학교 중의 하나. 데이터를 무한히 암기할 수 있는 컴퓨터라지만, 인간이 만들어 준 검색어에 따른 검색결과를 뱉는 것과 문제를 이해하고 답을 도출하는 일은 다른 일이다.
일본에도 수능과 흡사한 ‘센터 시험’이 있어 객관식도 찍어야 하지만, 본고사 논술 문제도 풀어야 한다. 수준 높은 본고사 문제는 기본적으로 논리력과 통찰력을 검증하는 것. 만약 동경대 입시를 통과할 수 있다면 과거를 배워 오늘과 미래의 과제를 해결할 기초 소양이 기계에게도 있음이 증명되는 터였다.
매년 인공지능은 차곡차곡 실력을 쌓았고, 심지어 논술 모의고사에서조차 수험생 평균을 뛰어넘는 점수를 획득한 것. 기계는 출제의도 따위 전혀 모르지만, 닥치는 대로 관련 있을 법한 문장을 끼워 넣었다. 흥미로운 점은 대개의 수험생은 이보다도 못했다는 점이었다. ‘달달 외워서’는 기계를 이길 수 없었다.
그런데 지난주, 이 인공지능이 동경대는 일단 단념하기로 발표한다. 이미 고등학생 80%보다 성적이 좋은 상태라, 웬만한 대학엔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모두 의아해했다. 그 이유는 독해력에 한계가 발견, 상위 1%가 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독해는 깊고 추상적으로 유추해서 고민해야 하는데 이는 무리였다.
이미 빅데이터와 결합한 기계학습은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 인공지능은 확률적이고 통계적으로 계산해 내, 다음 수를 놓는 데는 탁월하다. 의미는 모르지만 그럴듯한 답을 내는 이 방식은, 알파고처럼 과거의 기보(棋譜)가 있는 세계에서는 탁월하다.
거꾸로 빅데이터로 정리되지 않은 영역에 있어서는 약할 수밖에 없다. 본능적 감정, 문화, 감수성, 미묘한 뉘앙스 등 1%를 만드는 차이는 인간적인 것에서 나오고 있었다. 영어와 국어 등에서 예상보다 점수가 못 올랐는데, 문학을 논하고 잡담을 즐기는 ‘인간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관계성을 계산은 할 수 있지만, 그 관계를 체험해 본 적 없는 기계로서는 무엇을 묻는지 알기 어려운 일이다.
애초에 이 프로젝트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가능성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보면 상당 부분은 대체될 수 있지만, 여전히 감정과 마음이 어려운 곳으로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기계에게 수험공부를 시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앞으로 기계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역량을 키우도록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다. 프로젝트팀은 그렇게 판단했다. 인간은 암기로 기계를 이길 수 없지만, 다행히 아직 기계는 무엇을 왜 외우고 있는지는 모른다.
참, 이번에는 대필하는 로봇도 처음 등장했다. 왼손으로 시험지를 누르고, 오른손에 쥔 볼펜으로 말 그대로 폰트를 그려 나가는 모습은 초현실적이었다. 가장 효율적으로 그리려다 보니 필순은 사람과 달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사람보다 예쁜 글씨를 썼다. 기계의 방식은 이런 식이다.
1%는 되지 못했어도 나머지 80%보다는 성적이 좋은 기계, 하지만 자신이 이룬 걸 느낄 감정과 마음이 없으니 만족하는 듯한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