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에츨리(Guetzli)적 인생관
그래픽 파일하면 JPG, GIF 등이 떠오르고, 약간 웹 좀 만져보았다면 PNG도 알고 있을 것이다. 파일 포맷이란 것은 일종의 약속이기 때문에 그 규격에 맞춰서 만들고 또 열어 보게 되어 있다. 디지털카메라에서 웹브라우저까지 모두 약속을 지키니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그림을 편하게 저장하고 볼 수 있다.
GIF는 미국의 PC 통신 컴퓨서브에 의해 1987년에 만들어졌으니 벌써 30년 전이고, JPG가 사진 전문가 업계 위원회에 의해 고안된 것도 1992년이니 어느덧 사반세기가 흐르고 있다. 특허가 엮였던 GIF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1996년에 만들어진 깔끔한 PNG는 처음부터 애니메이션을 넣지 않은 실수로 아직 GIF와 공존하고 있다. 모두 각자의 사연을 지닌 채 늙어가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는 수시로 생겨난다. 예컨대 구글은 WebP라는 새로운 포맷을 고안했다. 이 세 가지를 다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사의 브라우저 크롬 이외에서는 문전박대. 2010년생이니 아직 희망을 버릴 순 없지만 만든 이로서는 답답하기도 할 것이다.
“왜 도대체 세상은 나를 몰라주는 것인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구글도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 있었던 것이다.
엊그제 구글은 JPG의 크기를 35% 줄여주는 압축프로그램 구에츨리(Guetzli)를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스위스 쿠키라는 뜻이라는데 이 프로그램으로 압축하면 “동급”의 화질 기준으로 파일 크기가 대폭 줄어든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건으로부터 두 가지 인생관을 발견할 수 있다.
이미 벌어진 세상을 당장 바꿀 수 있으면 좋지만 이건 때로는 수십 년이 걸리는 일. 혹은 이미 수십 년간 자리 보전하는 이들 때문에 기회가 아예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앞날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미 벌어진 세상을 당분간은 그대로 인정하고 그 세상을 위한 혁신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선보이는 것.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조금 더 좋아지고, 내게도 도움이 된다. (세상의 트래픽이 줄어들면 구글도 득을 본다)
또 하나는 세상이 정한 “동급”이라는 것에 대해 의심해 보는 일. 우리는 때로 세상의 레벨에 무조건 맞추기 위해 무리를 한다.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구에츨리는 인간이란 의외로 허술하니 시각·심리적으로 차이를 못 느끼는 데를 적극적으로 압축하는 수법을 취한다. 설령 압축이 심하게 걸려 어딘가 뭉개져도 사람이 보기에 예쁘고 위화감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훌륭한 영상품질이라는 것. 구글은 그 지경을 찾기 위해 인공지능을 동원했고, 이 압축기도 파라미터를 변화시켜가면서 여러 차례 압축해본다. 그래서 이 압축기는 기존의 압축기(libjpeg, mozjpeg)에 비해 한 수십 배는 느리다.
조금 느리더라도 완벽하지는 않아도 어딘가 무너졌어도 내 삶이 내가 보기에 예쁘고 위화감이 없다면 그것으로 훌륭한 인생이라는 것. 사실 그 경지를 찾는 일에는 인공지능도 필요 없다.
세상이 정한 스펙에 모든 걸 맞추기 위해 아등바등하지만,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많지 않더라, 그것만 지켜낼 수 있다면 전체적으로는 OK더라. 구에츨리라는 프로그램이 가르쳐 준 인생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