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플릿 픽션 "협동 게임 끝판왕, 서사마저 아름답다"
![]() - 이 리뷰에는 스플릿 픽션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현상 유지를 넘어 더 잘하기란 쉽지 않다. 협동 게임으로 유명한 헤이즈라이트 스튜디오가 새로운 신작을 공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워낙 전작을 잘 만들었으니 익숙한 맛으로 신작을 내겠거니 싶었다.
EA의 스플릿 픽션은 이런 사람들의 기대를 좋은 의미로 완전히 부숴버렸다. 전작 잇 테이크 투가 워낙 훌륭한 게임이라 여기서 어떻게 더 발전하겠느냐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몰랐을 뿐 발전할 여지가 남아 있었다.
스플릿 픽션은 다양한 게임 장르를 섞는 것을 넘어 아예 세계를 넘나들며 환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전작 잇 테이크 투가 이혼 위기의 부부가 서로를 이해하고 다시 사랑을 되찾는 과정을 그렸다면, 이번 작품은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좋은 친구가 되는 과정을 묘사했다.
같이 플레이 할 사람만 구할 수 있다면 더욱 발전한 협동 게임의 진수를 체험할 수 있다. 분할 화면에서 통합 화면을 오가는 매끄러운 연출, 다채로운 기믹 설계, 더욱 발전한 그래픽, 강화된 내러티브까지 모든 측면에서 만족스러웠다. 잇 테이크 투를 재밌게 플레이했다면 강력 추천한다.
장르: 액션 어드벤처
출시일: 2025년 3월 7일
개발사: 헤이즈라이트 스튜디오
유통: 일렉트로닉 아츠
플랫폼: PC, 콘솔
■ SF와 판타지 넘나드는 두 작가 지망생의 모험
![]() - 1인 시뮬레이션 기기에 함께 들어가는 것이 사건의 시작이다 |
![]() - 트롤 잔치에 신선한 고기 2명의 등장 |
작가 지망생 미오와 조이는 신생 테크 기업 레이더 퍼블리싱이 개발한 '상상한 이야기를 시뮬레이션하는 기기'에 사고로 휘말린다. 해당 기기는 원래 1인 전용인데, 자신의 세계관을 출판한다는 설명과 전혀 다른 실험 내용에 겁이 질린 미오가 실랑이를 벌이다 조이의 기기 쪽으로 쓰러지면서 들어갔다.
1인 전용 기기에 2명을 우겨 넣었으니 정상적으로 동작할 리 없다. 미오의 SF 세계관과 조이의 판타지 세계관이 겹쳐지며 일종의 균열이 발생한다. 두 주인공은 균열을 통해 상상 속 세계를 넘나들며 시뮬레이션 속에서 탈출하려 고군분투한다.
![]() - 아라비아 풍의 사막이 등장하는가 하면 |
![]() - 농장 속 돼지로 변신해 스테이지를 헤쳐나가기도 한다 |
전작 잇 테이크 투에서 스테이지마다 다른 장르를 선보이며 쉴 새 없는 재미를 제공했다면, 스플릿 픽션은 아예 장르와 세계관을 넘나든다는 콘셉트라 더욱 다채롭다. 가령 판타지 세계에서 트롤에 쫓기며 도주극을 벌이던 도중, 균열을 타고 넘어가 사이버 펑크의 사이버 닌자로 복수극을 펼친다.
장르 자체가 극과 극이다보니 전환 역시 다이나믹하다. 자연주의적이고 목가적인 판타지 월드에서 냉혹한 자본가가 지배하는 회색 빌딩 숲으로 순식간에 전환되며, 스테이지 기믹 역시 이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변화한다.
작가가 주인공이다보니, 아이디어 단계 혹은 미완성 상태로 방치된 작품이나 습작에 지나지 않았던 작품도 여럿 등장한다. 사이드 스토리라 클리어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어떤 세계가 등장할 지 궁금해 들어가보곤 했다. 세계관 테마나 핵심 스토리라인이 제각기 달라 자연스레 기분 좋은 기대감과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 어려워졌지만 확실히 재미있는 협동 기믹
![]() - 한 사람이 기둥을 던져 주면 그걸 타고 이동하는 방식 |
분할 화면을 통한 협력 액션은 잇 테이크 투에서도 선보였던 방식으로, 이번 작품에서는 이를 좀 더 세련되게 다듬었다. 그래픽은 실사 스타일로 변했고 연출 역시 전작에 비해 훨씬 화려해졌다. 특히 언리얼 엔진5를 사용한 게임 중에서는 독보적인 최적화 수준을 자랑한다.
게임 자체는 정말 재미있다. 사이버 닌자 활극, 초능력 슈퍼 돼지의 모험, 초신성 폭발 중인 태양 무력화, 마법 모래 시계 안에서의 탈출 등 질릴 틈 없이 여러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체험한다. 마치 여러 개의 게임을 쉴 틈 없이 연이어 플레이하는 듯하다. 게임을 마치고 나면 정신적인 포만감이 들 정도다.
서로에게 다른 능력을 부여하고, 해당 능력을 충분히 학습할 수 있도록 허들이 낮은 과제를 제시한다. 이를 응용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자동 저장 시점을 촘촘하게 배치하고 한 명이 생존했을 시 사망자가 생존자 쪽에서 리스폰되도록 하는 등 초심자를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 - 한 사람이 못하면 영영 파훼 불가능한 기믹도 많다 |
퍼즐 요소는 전작과 비슷했지만 컨트롤은 조금 더 까다로워졌다. 원래 개발사의 철학 자체가 '한 명이 캐리하는 게임'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정확한 타이밍에 합을 맞춰야 하는 구간이 꽤 많다. 두 명의 플레이어 모두가 일정 수준의 피지컬과 뇌지컬을 갖춰야 한다. 한 명이 조작을 헤멘다면 아마 구간마다 여러 번의 재시도가 불가피할 것이다.
특히 전작에서도 괴로웠던 운전 파트는 스플릿 픽션에서 한층 더 발전했다. 주행로가 명확하게 표시되지 않아 헤메기 쉽고 조작 자체가 굉장히 미끄럽다고 해야하나, 분명 컨트롤러로 입력한 대로 조종되고 있을텐데 내 뜻대로 움직이지가 않는다.
그나마 주행에 익숙한 파트너가 조종을 맡을 때는 한숨 돌릴 수 있었지만, 다다음 스테이지에서 직접 조종을 맡게 되자 대참사가 벌어졌다. 눈 앞에 보이는 문 사이로 들어가지 못해 몇 번을 재시도했는지 모른다.
■ 극과 극의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성장하는 길
![]() - 차가운 도시 여자인 미오는 늘 강자가 약자를 잡아 먹는다고 생각한다 |
![]() - 이 답도 없는 상황도 즐겨야 한다는 대책 없는 낙천주의자 미오 |
스플릿 픽션은 게임적인 완성도도 높지만, 서사 역시 전작에 비해 한층 발전했다. 두 주인공 미오와 조이는 SF와 판타지의 장르적 간극만큼 극단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이 두 사람들이 공동의 적과 위기 앞에서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지는지가 이 작품의 주요 포인트다.
타인의 접근을 달가워하지 않고, 비관적으로 보일 정도의 현실주의자인 미오와 타인과의 관계에 거리낌이 없고, 가끔은 대책이 없어 보일 정도로 낙관적인 낭만주의자 조이.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마주했는데 갈등이 발생하지 않을 리 없다. 솔직히 이 정도로 다르면 현실에서는 아예 근처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작품 속에는 어느 정도 작가의 경험이 녹아들기 마련이다. 미오의 경제적 부담은 그녀의 세계관 속 최종 보스인 SRI 범죄 조직 보스를 채권자로 만들었고, 조이의 어린 시절 추억은 힙한 원숭이 왕과 흉포한 얼음 제왕으로 구현됐다.
두 주인공들은 각자가 만든 작품을 몸소 체험하며 서로를 이해한다. 방어적이었던 미오 역시 서서히 조이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비 온 뒤 땅이 굳듯, 두 주인공은 레이더의 달콤한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힘을 합쳐 현 상황을 타개하기로 마음먹는다.
![]() - 햇살 조이의 공격에 나그네 조이의 심리적 장벽도 서서히 내려가는 중 |
![]() - 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기댈 줄도 알아야 한다 |
과도한 의료비 부담, 1인 창작자들의 아이디어를 착취하는 기업가, 각종 인증 과정으로 화나게 하는 캡챠 테스트 등 현실을 반영한 각종 설정 역시 주인공들의 서사에 생생한 활력을 불어 넣었다. 처음에는 워낙 그린 듯한 T와 F 인간상이다보니 작위적이라고 느껴졌는데 이런 디테일한 설정을 통해 납득할 수 있었다.
두 주인공이 인간으로서의 단점을 극복하면서 성장하고, 작품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역경을 이겨내고 좋은 친구가 되는 과정을 순간을 모두 담아냈다. 게임성도 훌륭하지만 두 사람의 내러티브에 집중하면 조금 더 몰입감 넘치는 체험이 가능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같이 할 친구 혹은 연인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다. 0관문을 극복하고 게임을 구동하는데 성공한다면, 협동 게임의 눈부신 발전에 감탄할 수 있다.
장점
1. 더욱 발전한 그래픽과 연출
2. 창의적인 기믹 설계와 전환
3. 놀라운 수준의 최적화
단점
1. 같이 플레이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움
2. 까다로운 운전 조작
3. 난도 상승으로 인한 반복 플레이 시 피로감
홍수민 기자 suminh@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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