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조기 퇴근, 진짜 가능할까? [이슈크래커]
정치권이 ‘주 4.5일제’를 다시 꺼냈습니다. 금요일 조기 퇴근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여야의 노동 시간 단축 공약, 진짜 실현 가능성을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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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대통령 선거를 41일 앞둔 지금, 익숙한 공약 하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바로 '근로 시간 단축'인데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모두 최근 '주 4일제' 또는 '주 4.5일제'를 언급한 데 따른 겁니다.
2030세대 직장인들 사이에선 '워라밸'(Work-Life Balance)은 이미 삶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됐습니다. 이 시점에서 근로 시간 단축 공약은 유권자 입장에서 실감이 나는 데다가 재택근무·유연근무가 정착된 이후 변화한 기업 환경과도 맞물리는데요.
하지만 '금요일 조기 퇴근'을 향한 기대만큼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습니다. 대체공휴일 확대를 두고서도 산업계와 노동계가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인데요. 주 4.5일제, 여기서 나아가 주 4일제는 과연 실현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 2022년 3월 8일 심상정 당시 정의당 대선 후보가 서울 마포구 홍대 상상마당 광장에서 유세를 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주 4일제 언급의 역사…코로나19가 쏘아 올린 공
주 4일제는 선거를 앞두고 등장하는 단골 카드입니다.
본격적으로 후보들의 입에서 주 4일제가 언급되기 시작한 건 2022년 3월 제20대 대선을 앞둔 시점이었는데요. 2021년 9월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가 대선 도전 선언 직후 '1호 공약'으로 '신노동법'을 내걸면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심 전 대표는 당시 "한국은 자유 시간이나 여가 시간이 결핍된 대표적인 시간 빈곤 국가"라며 노동시간을 주당 4일(32시간)로 줄이자고 제안했는데요. 이때 심 전 대표의 당선 가능성이 낮아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주 4일제라는 안건은 온라인상에서 토론을 이끌어냈고 이를 계기로 주 4일제 논의가 본격화됐죠.
주 4일제 논의가 현실성을 띠게 된 건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대면 근무가 확산하고 유연근무제 시행이 늘어나는 등 근무시간이 줄었고, 많은 노동자의 근무형태가 과거와 비교했을 때 크게 달라졌죠. 일부 기업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진정된 후에도 근무 형태를 바꾸겠다고 밝혔고, 일찍이 주4일제 등을 시범 도입하는 국가 및 기업들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우려도 있었습니다. 주 4일제 대안이 청년층과 노동계를 중심으로 환호를 이끌어낸 건 맞는데요. 노동 양극화를 부추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도 힘을 얻었습니다. 기업 생산력과 경쟁력을 약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이어졌죠.
당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노동 시간 단축에 공감했습니다. 이 전 대표는 "주 4.5일제 도입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고 단계적 도입을 위한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며 "실노동시간을 단축해 노동자의 더 나은 삶을 실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죠.
민주당은 22대 총선을 앞두고서도 주 4.5일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주 4.5일제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노동 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시간 이하로 단축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죠.
이번 대선을 앞두고서도 근로 시간 단축 카드가 다시금 등장했습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지난해 임기 후반기 핵심 중점과제로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제' 도입을 꼽은 바 있죠.
![]()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주 4.5일제 또다시 등장…이번엔 보수 진영서도 나섰다
반면 보수 진영에서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주 4일제·주 4.5일제는 근로 시간을 줄이면서도 받는 급여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날을 세운 건데요. 특히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재명 망언집'을 통해 주 4.5일제 관련 발언을 '망언'이라고 질타했죠.
그런데 그런 국민의힘에서 최근 주 4.5일제 도입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전 대표와 김 지사 등 진보 진영에서 주 4일제를 띄운 데 이어 보수 진영에서도 처음으로 근로 일수 단축 논의가 나온 건데요. 따져 보면 현행 주 5일 근무제에서 0.5일을 줄이겠다는 방향은 같지만, 내용과 방식은 완전히 다릅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4일 국회에서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법정근로시간 40시간을 유지하되, 유연근무제를 통해 실질적으로 주 4.5일제 도입의 이점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 대선 공약에 반영하겠다"면서도 "유연근로제를 도입하더라도 생산성과 효율성 향상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습니다.
민주당이 주간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산업군에 따라 주 52시간 예외 적용을 확대하자는 입장이라면, 국민의힘의 4.5일제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기본 근무시간 외에 1시간씩 더 일하는 대신, 금요일에는 4시간만 근무한 뒤 퇴근하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일을 조금씩 몰아서 하자는 건데요. 총 근무시간은 줄어들지 않아서 급여에도 변동이 없다는 설명이죠.
![]() 17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이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뉴시스) |
대체공휴일에도 갑론을박 쏟아지는데…주 4일제, 괜찮을까?
잘파세대에겐 낯선 이야기겠지만, 주 5일제 도입 당시에도 험로가 이어진 바 있습니다. 주 4일제와 주 4.5일제 역시 노사 간 견해차가 큰 데다가, 미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에서도 주 4일제는 '시범 운영'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국가 차원의 법제화로 이어지기엔 생산력, 산업 구조 등 여러 현실적인 장벽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노동환경의 질, 근무 밀도, 소득 안정성입니다. 지금처럼 구조적 논의 없이 "근로 시간 단축"만 이야기하면 포퓰리즘적 접근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죠.
대체공휴일 확대에서조차 산업별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주 4일제·4.5일제라는 더 큰 구조 개편을 서두르는 게 과연 타당한지도 의문인데요. 다음 달 초 황금연휴만 봐도 노사 간, 아니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펼쳐진 바 있습니다.
만약 5월 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된다면 1일 근로자의 날과 5일 어린이날, 6일 대체공휴일까지 최장 6일간의 황금연휴가 가능해지면서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물론 정부에서는 이를 고려조차 하지 않았지만요.
그러나 모든 근로자가 황금연휴를 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수 악화에 허덕이는 자영업자들, 학사 일정이 밀리는 데 우려를 내비친 교육계, 돌봄 공백으로 인해 불편을 겪는 학부모, 그리고 남들이 쉬어도 쉬지 못하는 적지 않은 노동자들 등이 대표적입니다. 현실적으로 단 하루 쉬는 것도 조정이 어려운 한국 노동구조에서, 주 4일제·주 4.5일제를 밀어붙이는 게 현실성 없는 '표심용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에 대체공휴일 등 기존 휴일 규정도 함께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설이나 추석 연휴 기간까지 대체휴일제가 적용되는 상황에서 근로 시간 단축을 시행하면 2주가량 휴무하게 되는 등 기업 등의 업무 일수 부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거죠.
정치권의 근로 시간 단축 논의가 진정한 노동개혁의 일환인지, 혹은 단기적인 유권자 호소 전략에 불과한지는 여전히 따져볼 문제인데요. 듣기 좋은 약속보다, 실현 가능한 약속에 고심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요.
장유진 기자 yxxj@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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