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 때 부모님 이혼 때문에 바로 비혼 결심했다는 초등생의 현재
개성 넘치는 인물이 많은 모델계에서 유독 독특한 비주얼과 하이텐션으로 화제가 된 인물이 있습니다. 그의 키는 183cm로 모델치고 작은 키였지만 아우라는 엄청났는데요. 런웨이부터 예능, 광고, 유튜브까지 종횡무진하는 그는 사실 가슴 아픈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요. 오늘은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난 그에 대해 파헤쳐 보겠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 왕따
유년의 아픔
런웨이를 당당하게 걷는 모델 정혁은 개성 넘치는 비주얼과 포스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허나 마냥 당당해 보이는 그도 유년시절에 큰 아픔의 시간을 보냈었는데요. 1991년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태어난 정혁은 아버지, 형과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하 단칸방에서 아버지랑만 사는 편부모 가정인 동시에 기초생활수급자였는데요. 이러한 사실 때문에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갔습니다.
힘들었던 어린 정혁에게 도움이 됐던 것은 개그 프로였습니다. 그는 TV로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음을 얻고 개그맨을 꿈꿨죠. 자신처럼 힘든 사람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기 위해 고등학교 땐 ‘개그쟁이’라는 청소년 극단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개그맨의 꿈을 키워가던 그는 ‘어차피 우리 집엔 돈이 없어서 대학을 못 갈 테니까 빨리 개그맨 준비를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고등학교 시절 정혁은 강제로 시키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졌고 선생님께 “저는 개그맨을 하고 싶어요. 야자 빼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부모님께 대학 포기각서를 받아와라”는 선생님의 말에 정혁은 자신의 아버지께 “우리 집 돈 없으니까 대학 안 가고 개그맨 할래요”라고 대학 포기 이유를 전했죠. 이후 정혁은 아버지가 자신의 말에 상처를 받고 흐느껴 우는 걸 보게 됐는데요. 이 일로 인해 정혁은 아직까지도 아버지에게 죄송한 마음과 죄책감을 안고 지내고 있습니다.
이혼 트라우마 겪어
비혼 결심
정혁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이혼까지 겪었습니다. 그는 3살 때부터 아버지 손에서만 자랐죠. 가정을 위해 홀로 돈을 벌어야 했던 아버지는 정혁의 체육대회나 졸업식 등에 한차례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학업과 성장에 있어서도 부모님의 케어가 부족했던 정혁은 원망과 분노를 안게 되었는데요. 이런 연유로 그는 초등학교 3학년일 때부터 독신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정혁은 지금까지도 비혼에 대한 생각이 변함없습니다. 이젠 트라우마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하고 싶은 일들이 굉장히 많아졌고 이를 결혼보다 우선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죠. 비록 현재도 부모님이 각자 따로 지내고 있지만 정혁이 모델이 되면서 가정의 분위기는 밝아졌습니다. 교회 전도사가 된 어머니는 그를 ‘군산 스타’로 칭하며 자주 군산에 오기를 바라고 아버지 역시 늘 정혁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죠.
유니클로 알바생에서
어엿한 모델로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된 정혁은 입대를 하게 됐습니다. 그는 춤에도 관심이 많아 군대에서 춤을 많이 췄었는데요. 후엔 3~400명이 알 정도로 부대의 스타가 됐습니다. 다른 업무도 열심히 해서 포상휴가도 많이 받았죠. 또한 군대 안에서 숍마스터 공부까지 했기 때문에 제대 후엔 다양한 자격증을 빠르게 취득하기도 했습니다.
제대를 하고 나니 정혁은 개그맨이 되기엔 현실적인 문제가 크다는 걸 깨달았고 곧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유니클로에서 말이죠. 그는 유니클로 VMD, 영업, 매니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했고 잘생긴 외모 때문에 ‘유니클로 유명 인사’로 통했습니다. 주위 사람 모두 만장일치로 그에게 “모델 해 볼 생각 없냐?”라고 모델 일을 권유할 정도였죠.
주위의 추천으로 정혁은 모델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그는 동묘에서 의상을 구매했고 촬영과 사진 셀렉, 보정까지 모두 본인이 직접 하며 포트폴리오를 제작했습니다. 그렇게 직접 제작한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면서 관계자들에게 본인을 어필했는데요. 정혁은 첫 지원에선 탈락했지만 매니지먼트 팀에서 그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다시 영입 제안을 하면서 무사히 에스팀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정혁은 군 제대와 사회생활까지 경험하면서 모델계에선 늦은 나이인 25세에 데뷔했습니다. 2015년 서울 패션위크 블라인드니스가 그의 첫 런웨이인데요. 나이를 떠나 매력적인 마스크와 워킹으로 성공적으로 데뷔를 마쳤죠. 또한 어릴 때부터 즐겨 입던 동묘 옷, 너드룩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시켰습니다. “왜 그렇게 입냐? 그렇게 입을 거면 나가라”라는 매니저들의 반응과 다르게 패션위크 관계자들은 그에게 “정혁의 스타일은 독특하다”, “옷 잘 입는 모델”이라는 수식어를 달았습니다.
첫 월급 8만 원
지금은 100배 이상
모델계에 입성한 정혁은 현실의 벽에 또다시 부딪혔습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모델은 일도 많이 하고 돈도 많이 버는 화려한 직업인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기 때문이죠. 그의 모델 생활 첫 월급은 고작 8만 원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정혁의 유쾌하고 재미있는 성격을 보고 그를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요. 진정한 모습을 알지 못한 체 자신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정혁은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정혁은 더욱 성장해갔습니다. 모델 일을 하며 겪는 고난들을 거름 삼아 끊임없이 발전했죠. 그렇게 발전시킨 끼를 방출해내며 정혁은 예능과 광고까지 진출했습니다. 마리텔을 시작으로 직방 광고, 엠넷 광고에서 활약하여 ‘엠넷보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나혼자산다에선 성훈을 코치하기도 했죠. 첫 월급 8만 원이었던 정혁은 다양한 활동으로 이제 월급이 8만 원의 100배 이상으로 올랐습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도 정혁은 유튜버까지 시작했습니다 ‘정혁의저세상채널’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하이텐션과 입담을 뽐내고 팬들과 소통하고 있죠.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지만 본업인 모델에 대한 그의 애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모델로서 해외 4대 패션 위크에 가고 싶다는 목표를 갖고 있죠. 또한 그는 ‘대중들이 보기만해도 웃음이 나올 만큼 좋은 에너지와 좋은 영향을 전달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