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석 교수, '벌거벗은 세계사' 역사왜곡 논란 해명→대화 제안
(사진=tvN ‘벌거벗은 세계사’ 방송화면) |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페스트와 관련한 강연에 나섰다가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인 장항석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가 입장을 밝히며 문제를 제기한 박흥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와의 대화를 요청했다.
장항석 교수는 지난 4일 병원 환자들과의 소통을 위한 인터넷 카페 ‘거북이 가족’에 입장문을 올리고 “우선 이 방송과 관련해 본의 아니게 잡음이 일게 된 점 송구하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박흥식 교수님께 같은 교수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 서로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이 이야기를 풀어볼 것을 제안한다”고 요청했다.
장 교수는 이번 입장문을 올리게 된 계기에 대해 “이 방송에 대해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흥식 교수께서 개인 SNS에 방송이 역사 왜곡을 하였으며 자문을 거치지 않았고, 괜한 공포심을 조장하였다는 내용의 비판글을 게재했다”고 경위를 설명하며 “저는 의학을 전공한 교수로서 2018년 ‘판데믹 히스토리’라는 책을 집필한 바 있고, 당시 검토했던 수많은 책과 자료 및 연구를 토대로 이번 ‘페스트’편을 준비했다. 제작진과 함께 여러가지 잘 알려진 설들 중 가장 보편타당성이 있는 내용을 엄선하려 노력했고, 여러 검증 과정을 거쳐 각 세부 주제들을 구성했다. 의학적인 관점에서 페스트라는 감영병에 대해 접근해보고자 했다”고 방송 강연에 나선 취지를 밝혔다.
박흥식 교수의 주장처럼 질병에 대한 공포심을 조장하려 방송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공포심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질병에 승리해온 역사를 말하며 현재를 이겨낼 희망을 말하고자 한 것”이라며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서 다양한 역사학적 관점과 의견이 존재하며, 세계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 입장에서는 내용이나 구성에 대한 지적을 충분히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저는 거짓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제가 감염병 관련 책을 준비하면서 찾았던 그 수많은 자료들이 박교수님의 주장대로 다 왜곡이라고 한다면, 페스트와 관련된 내용이 있는 수많은 책들은 다 폐기되어야 옳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박흥식 교수의 지나친 지적이 방송과 관련한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음을 꼬집으며 일부 발언에 대해선 박 교수의 해명 및 사과 역시 필요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장 교수는 “SNS에 공개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수준의 의사가 나섰다’는 식의 인신공격성 언급은 지나친 발언이며, 이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의학분야에서도 서로의 의견이 상충될 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격한 토론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서로에 대한 예의는 지킨다. 충분히 역사학적 토론이 가능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언사를 통한 일방적인 매도는 지나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방송과 관련해 수정돼야 할 부분과 풀어야 할 오해가 있다면 허심탄회한 대화로 풀어나가고 싶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장 교수는 “박교수님의 SNS에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대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제게 더 가르침을 주시고자 한다면 언제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내용에 대해서도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면 시정할 의사가 있다”라며 “그리고 그런 만남을 통해 서로의 오해를 풀고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 일들이 해결되어 나가길 기대해 보다”고 제안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 4회 방송에서는 장항석 교수가 강연자로 나서 중세 유럽시대 전염병인 ‘페스트’(흑사병)를 상세히 다루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장 교수는 방송 당시 중세시대 ‘카파 공성전’을 설명하며 몽골군이 ‘페스트’를 퍼지게 하려고 페스트로 사망한 시체를 투석기로 던졌다고 설명했고, 페스트를 현재 전세계적으로 유행 중인 코로나19 팬데믹과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방송 다음날인 31일 박흥식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흑사병을 10년 넘게 공부했고 중세 말기 유럽을 전공하는 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건 정말 아니다 싶다”라며 “힘들게 자문을 해주었더니 내가 자문한 내용은 조금도 이용하지 않았다”고 비판, 역사왜곡 및 오류가 있음을 지적해 논란이 일었다.
박 교수는 “흑사병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목표였나, 통계나 병인학적 측면에서도 최근 해석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라며 “설민석이 문제인줄 알았더니 이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것이 문제인 듯하다”라고도 혹평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벌거벗은 세계사’ 제작진은 지난 1일 공식입장을 통해 “페스트편은 페스트와 관련한 내용을 의학사적인 관점을 중심으로 구성한 것”이라며 “방송 전 대본과 가편본, 자막이 들어간 마스터본을 관련 분야의 학자분들에게 자문을 받고 검증 절차를 마친 후 방송했다. 앞으로도 더 좋은 방송을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번 논란은 특히 역사왜곡 논란으로 기존 강연자였던 스타강사 설민석이 지난해 12월 방송 3회 만에 하차한 후 약 1달 여 만에 방송을 재개하자마자 불거진 것이라 타격이 크다. 당초 프로그램 이름 역시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였다.
당시 설민석은 ‘나치-독일’편 방송에서 “유대인들로 비누를 만들었다”, “인간 교배장을 만들어 공장처럼 아이를 생산했다” 등 확인되지 않은 역사적 낭설을 사실인 것처럼 발언해 논란에 휩싸였고 ‘이집트’편에서도 역사적 사실과 풍문을 섞어 설명하는 오류를 범해 역사학자들의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사진=‘벌거벗은 세계사’ 방송화면) |
아래는 장항석 교수 입장 전문.
우선 이 방송과 관련해 본의 아니게 잡음이 일게 된 점 송구하고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 방송에 대해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흥식 교수께서 개인 SNS에 방송이 역사 왜곡을 하였으며 자문을 거치지 않았고, 괜한 공포심을 조장하였다는 내용의 비판글을 게재했습니다.
저는 의학을 전공한 교수로서 2018년 라는 책을 집필한 바 있고, 당시 검토했던 수많은 책과 자료 및 연구를 토대로 이번 편을 준비하였습니다. 제작진과 함께 여러가지 잘 알려진 설들 중 가장 보편타당성이 있는 내용을 엄선하려 노력했고, 여러 검증 과정을 거쳐 각 세부 주제들을 구성했습니다. 의학적인 관점에서 페스트라는 감영병에 대해 접근해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공포심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질병에 승리해온 역사를 말하며 현재를 이겨낼 희망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저는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서 다양한 역사학적 관점과 의견이 존재하며, 세계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 입장에서는 내용이나 구성에 대한 지적을 충분히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거짓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제가 감염병 관련 책을 준비하면서 찾았던 그 수많은 자료들이 박교수님의 주장대로 다 왜곡이라고 한다면, 페스트와 관련된 내용이 있는 수많은 책들은 다 폐기되어야 옳을 것입니다.
아울러 이번 방송과 관련해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어 이에 대한 몇가지 말씀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특히 SNS에 공개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수준의 의사가 나섰다”는 식의 인신공격성 언급은 지나친 발언이며, 이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의학분야에서도 서로의 의견이 상충될 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격한 토론을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서로에 대한 예의는 지킵니다. 충분히 역사학적 토론이 가능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언사를 통한 일방적인 매도는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수많은 사람들을 수술하고 생명을 살리는 외과의사로서 신뢰성이 중요한 사람입니다. 박교수님의 지적 이후 많은 매체에서 저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고, 제 저술 또한 일거에 형편없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박교수님의 SNS에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대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제게 더 가르침을 주시고자 한다면 언제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에 대해서도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면 시정할 의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만남을 통해 서로의 오해를 풀고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 일들이 해결되어 나가길 기대해 봅니다.
박흥식 교수님께 같은 교수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 서로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이 이야기를 풀어볼 것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제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박교수님의 해명과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청합니다. 박흥식 교수님의 긍정적 답신을 기대하겠습니다.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