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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누명' 윤성여 "또 범죄 휘말릴까봐.. 여행도 못 가"

이데일리

윤성여 씨. 사진= KBS1 ‘다큐인사이트’

이춘재가 자백한 ‘화성 8차 사건’의 살인범 누명을 썼던 윤성여 씨가 자신의 삶에 대해 전했다.


17일 방송된 KBS1 ‘다큐인사이트’에서는 살인자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온 인간 윤성여의 삶을 들여다봤다.


1년 전, 한 무기수의 입에서 충격적인 자백이 흘러나왔다. 자신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저지른 범인이라는 것이었다. 처제를 살해한 죄로 무기징역을 살고 있던 이춘재. 그의 자백이 불러온 파장은 점점 더 커져갔다. 그가 자백한 범죄 중엔 모방범죄로 결론이 난 ‘화성 8차 사건’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 국민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인 이춘재의 입을 주목하던 그 시기. 제작진은 ‘화성 8차 사건’의 범인이라 알려진 윤성여 씨를 만났다. 하지만 윤 씨의 마음을 돌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20년의 긴 수감생활을 마친 그는 더 이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지 않아 했다. 제작진이 그의 일상을 기록할 수 있게 된 건, 첫 만남 후 6개월이 지나서였다.


윤성여 씨의 삶은 단조롭다. 주간 근무와 야간 근무 2교대를 반복하며, 쉬는 날이면 성당으로 향한다. 밤 10시가 지나면 외출을 하지 않는다.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새로 친구를 사귀는 일도 없다. 여행을 가본 적 역시 없다. 주로 만나는 사람은 출소 당시 정착에 도움을 준 박종덕 교도관과 나호견 교화복지회 원장님. 윤씨는 나호견 원장님 댁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직장에 나가 돈을 번다. 9년째 반복된 생활이다.


윤 씨가 단조로운 일상을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 “범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다”라고 전했다.


스스로 무죄를 증명하는 방법이 그뿐이라 믿기 때문이다. 박 교도관과 나 원장 외에는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그는 지금도 교도소가 있는 도시, 청주에 홀로 살고 있다.


윤성여 씨는 어쩌다가 살인자가 되었을까.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뒤, 왼쪽 다리를 절게된 윤 씨. 그가 ‘화성8차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건 불과 스물두 살 때였다. 당시 윤씨는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져 한 농기구 센터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중이었다. 화성에 사는 남성이라면 모두가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던 그때. 윤씨도 여느 평범한 청년들처럼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 그러던 그를 경찰들이 한 달이나 감시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이미 체포된 후였다.


지난달 열린 화성8차사건 재심 9차 공판. 그곳에 이춘재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며, 윤성여 씨가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화성8차사건’ 역시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춘재는 “화성 사건 진범이 맞냐”는 질문에 “맞다”고 답했다. 이춘재는 또 ‘8차 사건이 다른 사건과 다른 특이점이 있냐?’는 물음에 “실내에서 일어났다”고 했다. 이어 “범행장소는 집 근방 100미터 안되는 거리로 문이 열려 있어서 문으로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춘재는 자신이 용의 선상에 오르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저는 아직도 그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성여 씨는 이춘재에 대해 “운이 억세게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간은 돌릴 수 없다. 세월 돌리고 싶다면 돌리고 싶다”고 했다.


한편 17일 법원은 윤성여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수원지방법원 형사 12부는 이날 열린 윤 씨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경찰의 가혹행위와 수사기관의 부실수사로 잘못된 선고가 나왔다고 판단했다.


또, 20년 동안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피고인에게 법원이 마지막 역할을 못 한 것은 사법부 구성원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윤 씨는 지난 1988년 벌어진 이춘재 연쇄 살인 8차 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수감 20년 만인 2009년 출소했다.


[이데일리 정시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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