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년 만의 재결합
에드바르 뭉크, ‘툴라 라르센과 함께 있는 자화상’, 1905년경. |
실연의 상처는 시간이 치료해 주기도 하지만 평생 남기도 한다.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는 세 번의 사랑에 실패한 뒤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이 그림은 자신과 그의 마지막 사랑이자 약혼녀였던 툴라 라르센을 그린 초상화다. 사랑하는 연인치곤 너무 우울해 보이는 데다 그림도 세로로 분할돼 있다.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뭉크가 부유한 상류층 출신의 툴라를 처음 만난 건 1898년. 당시 그는 35세, 툴라는 29세였다. 처음에는 뭉크가 더 빠져들었지만 둘의 관계는 곧바로 역전됐다. 여자가 매달리자 남자의 마음이 먼저 식어버렸다. 이듬해 두 사람은 약혼까지 했지만 뭉크는 그림을 위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그녀를 멀리했다. 실제로도 뭉크는 고독과 불안을 작업의 원동력으로 여겼다. 그렇게 만나지도 헤어지지도 않는 연인 관계를 수년간 지속했다. 1902년 여름, 참다못한 툴라가 결혼을 요구하며 자살 협박을 했다. 놀라 달려온 뭉크가 그녀를 다독였지만 얼마 후 두 사람의 침실에서 총탄이 발사됐다. 만취 상태였던 뭉크가 실수로 방아쇠를 당긴 거였다. 이 사고로 뭉크는 왼손 중지를 완전히 못 쓰게 됐고, 툴라는 사고 3주 후 새 애인을 만나 파리로 떠나버렸다. 그녀가 막상 떠나자 뭉크는 배신감과 함께 심한 여성 혐오까지 갖게 됐다. 이후 그는 툴라를 팜파탈의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림에 등장시키곤 했다.
이 초상화 역시 툴라와 결별 후 그린 것으로, 창백하고 우울한 툴라와 붉게 상기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는 뭉크, 그의 또 다른 자아처럼 보이는 남자가 등장한다. 뭉크는 그녀와 완전히 갈라선 후 이 그림도 둘로 찢어버렸다. 이후 그림은 각각의 초상화로 분류돼 왔다. 2019년 영국박물관은 뭉크 특별전을 열면서 두 그림을 다시 붙여 전시했다. 114년 만의 재결합이었다. 무덤 속 화가가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이들 사랑의 ‘해피 엔딩’은 100여 년 후 관객의 바람인 것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