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가이 교수 “한국 단색화, 미학적 설득 실패한 채 고유 양식이라 우겨”
‘현대예술은 사기다 1·2’ 저자 홍가이 前 MIT 교수
홍가이 전 MIT 교수는 “국제적 맥락에서 한국 미술에 의미를 부여하는 담론이 절실하다”고 했다. 1960년대 한국을 떠나 미국의 격변기를 겪은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도 교편을 잡았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한국 단색화는 서양 모노크롬 회화를 모방해놓고, 사후에 한국 고유의 미술 양식이라고 항변하는 격.’
홍가이 전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71·예술철학)가 지난해 출간한 ‘현대예술은 사기다1·2’(소피아)가 미술계에서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미술 시장에선 대표 상품으로 내세우지만 국내외에서 거품 지적이 끊이지 않는 ‘단색화’에 대한 시원한 비판 덕분이다. 지난달 27일부터 31일까지 열린 아트바젤 홍콩에서도 해외 갤러리는 단순한 모노크롬보다 화려한 신표현주의가 강세였다. 최근 만난 홍 교수는 “설득력 있는 미학의 부재가 단색화의 한계”라며 “한국 미술이 도태되지 않으려면 탄탄한 미학 담론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단색화는 1975년 일본 도쿄화랑의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전을 전후로 등장한 단색조의 회화를 말한다. 과거 ‘모노크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지만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시를 통해 한글명 ‘단색화’로 통일됐다. 단색화는 서양 모더니즘 회화의 ‘평면성’을 받아들이며 ‘백색’과 ‘정신성’이라는 한국적 특징을 가진 회화로 정의된다.
그러나 홍 교수는 이를 한국 고유의 특징으로 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한국 사람이 백의민족이라는 것은 일제강점기 외국인의 피상적 시각입니다. 국내 역사 문헌에서는 상을 당했을 때 소복을 입는다는 기록밖에 없습니다.”
또 서양 모더니즘의 ‘평면성’을 재해석한 시도는 좋지만, 왜 그런 시도가 필요했는지에 대한 답은 찾기 힘들다고 그는 설명했다. 서양 모더니즘과 ‘평면성’은 그들의 미술사 흐름에서 의미가 있는데, 국내는 이런 개념을 비판적 성찰이나 철저한 분석 없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 단색화 ‘거품’ 지적은 상업 갤러리뿐만 아니라 학계에도 책임이 있다고 홍 교수는 말했다. 그는 “단색화의 상품화는 ‘벌처 캐피털리즘’(투기성이 강한 자본주의)의 전형이지만 서양 화상도 이런 전략을 쓴다. 그러나 미술관이나 학계가 중심을 잡고 미술사를 전개하지 않고 상업 전략에 휩쓸리는 것은 한국의 문제”라고 했다. 이어 “선진국에서는 상업 갤러리가 전략적으로 띄워도 학계는 미술사 전통과 고유 원칙에 따라 가치를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한국 미술이 국제적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토대와 미학적 담론이 절실하다는 것이 홍 교수의 의견이다. 그는 “국내 비평이 미사여구로 인상 비평에 머물고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미술사와 미학적 맥락에서 연결고리를 맺어 작품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자생적 현대미술’의 의미를 다시 질문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미술 작업의 독창적 시각은 축적된 지식에서 비롯됩니다. 오랜 시간 차분한 준비를 통해 세계화 이후의 한국적 현대성이란 무엇인지, 그러한 가운데 우리만의 독창적인 미술은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이 절실합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