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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나이 든 여인

[이은화의 미술시간]〈126〉

동아일보

크벤틴 마시스, ‘못생긴 공작부인’, 1513년경.

100세 시대, 오래 사는 것보다 품위 있게 늙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르네상스 시대까지만 해도 노인의 위상은 보잘것없었다. 부를 축적한 남성은 나이가 들어도 권세를 누렸지만 가진 것이 없거나 늙은 여성은 홀대를 받았다. 젊은 여자는 언제나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찬사를 받았지만 나이 든 여자는 추함의 대명사였을 뿐 아니라 종종 마녀로 묘사되곤 했다.


16세기 벨기에 화가 크벤틴 마시스가 그린 노파의 초상은 충격적이다. 돌출된 이마, 유난히 짧은 코, 비대하게 긴 인중, 축 늘어진 얼굴에 자글자글한 주름까지 마치 SF 영화의 특수분장을 한 배우 같다. 꼭 다문 입술 속의 이는 다 빠진 듯하고 얼굴은 고릴라를 닮았다. 유행에 한참 뒤떨어진 스타일이지만 여자는 귀족처럼 우아하게 차려입었다. 머리에는 하트 모양의 커다란 모자를 썼고, 어깨까지 덮여 있는 하얀 베일은 보석 장식의 금 브로치로 고정했다. 꽉 죄는 드레스로 주름진 젖가슴은 위쪽으로 노출시켰고, 손에는 아직 피지 않은 붉은 장미를 들고 있다. 지금 그녀는 성적 매력을 발산해 남자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 본 듯하지 않은가? 맞다. 1865년 출간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공작부인 캐릭터의 모델이 된 초상화다. 정확한 신원은 알 수 없으나 15세기 프랑스 부르고뉴에 살던 허영심 많은 공작부인을 그린 걸로 알려져 있다.


화가는 왜 한 세기 전에 살았던 공작부인을 그린 걸까? 아마도 그녀가 추함과 허영심을 대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질문을 바꿔보자. 노파는 왜 외모와 성적 매력 어필에 그토록 공을 들이는가? 늙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다. 소외와 배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여성성을 잃고 싶지 않고, 마녀로 오인되고 싶지 않은 몸부림인 것이다. 현대 의학자들은 부인이 뼈를 변형시키는 무서운 질병에 걸렸을 거라 추측한다. 그래서일까. 늙고 병들어서도 여전히 외모에만 집착하는 노파가 왠지 측은해 보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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