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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앞둔 친구들과 ‘한반도 둘레길 완보’ 약속…우린 행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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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검푸마라톤클럽 ‘3인방’ 강종수 유병복 박동근 씨(왼쪽부터)가 지난달 동해안 570km를 함께 걷다 바닷가에서 포즈를 취했다. 마라톤으로 건강을 다지고 있는 이들은 한반도 둘레길 4000km를 4차례로 나눠 함께 돌며 건강과 우정을 다지고 있다. 유병복 씨 제공

100세 시대를 맞아 은퇴한 뒤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특히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는 정년퇴직 제도에 따라 일을 더 할 수 있음에도 일자리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은 30~40년이나 남은 노년을 어떻게 보내야할 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런 측면에서 일흔을 바라보는 마스터스마라토너 3인방이 펼치는 ‘노년 프로젝트’가 관심을 끈다.


지난해 말 경기도 분당검푸마라톤클럽(이하 검푸) 회원인 유병복(69) 강종수(68) 박동근 씨(68)씨는 망년회를 겸해 막걸리를 한잔 하다 서로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


“우리 한반도 한바퀴 돌까요?” “자전거로 말이죠.” “무슨 소리입니까…. 걸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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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검푸마라톤클럽 ‘3인방’ 강종수 박동근 유명복 씨(왼쪽부터)가 지난달 10일부터 16일간 동해안 570km를 함께 걸어 25일 부산 해운대에 도착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마라톤으로 건강을 함께 다지고 있는 이들은 한반도 둘레길 4000km를 4차례로 나눠 함께 돌며 건강과 우정을 다지고 있다. 유병복 씨 제공

약간의 의견 충돌은 있었지만 너도나도 한반도를 한바퀴 도는 것에는 의견을 같이했다. 결국 ‘두 발로 한반도 둘레길 완보’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의기투합했다. 건강과 우정을 다지며 동해안, 남해안, 서해안, 그리고 비무장지대(DMZ) 약 4000km를 4차례로 나눠 함께 걷겠다는 약속이다. 유 씨와 박 씨가 “어떻게 걷느냐 자전거를 타고 가자”고 했지만 강 씨가 “걸어야 대한민국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올 1월 9일 강원 고성으로 떠나 10일 7번 국도 종점을 출발해 16일간 걸어서 부산 해운대에 도착했다. 총 약 570km로 하루 많게는 45km, 적게는 21km를 걸었다. 하루 평균 36km를 걸었다. 강 씨는 “사실 남해안에서 섬을 다 돌면 총 길이가 4000km를 훌쩍 뛰어 넘는다. 중간 중간 잘라서 갈 것을 감안해 한반도 둘레길이 약 4000km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셋은 70세를 눈앞에 뒀지만 오랫동안 마라톤으로 단련된 체력이 바탕이 돼 거뜬히 첫 코스를 완보했다. 유 씨는 “어떻게 걸을까 고민했는데 막상 걸으니 자전거 타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자연을 제대로 느끼면서 걸었다”고 했다. 자전거 타고 돌자고 주장했던 유 씨는 “바다와 산, 들 등 대한민국 동해안을 그대로 보고 느꼈다. 자전거를 탔다면 못 느꼈을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나라라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고 덧붙였다. 박 씨도 “안 해보면 모른다. 걸어서 건강도 챙겼지만 같은 뜻을 가진 동년배와 함께 했다는 데서 더 큰 의미를 찾았다. 누가 이렇게 함께 걸어주겠나?”고 했다. 강 씨는 “당초 하루 평균 30km 정도씩 여유 있게 걸었으면 더 즐길 수 있었는데 개인 일정 탓에 좀 무리하게 걸었는데 잘 따라줘 고마웠다”고 했다. 더운 여름을 피해 올해 안에 한반도 둘레길을 완보할 계획인 이들은 일찌감치 마라톤에 입문해 건강한 노년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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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수 씨가 한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산을 달리고 있다. 강종수 씨 제공

강 씨는 체중감량을 위해 1999년 달리기 시작했다.


“그해 9월 한 하프마라톤대회가 열린다고 해서 그 대회 완주를 목표로 시작했어요. 체중이 84kg이나 나가서 살도 뺄 생각도 있었죠. 그런데 달리니까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달리는 사람들이 느끼는 ‘러너스 하이(고통스러운 순간을 참고 운동을 계속하면 어느 순간 찾아오는 행복감)’를 마라톤 시작 몇 개월 만에 느꼈어요. 그러니 달리기가 더 재밌어졌고 어느 순간 일상이 됐습니다. 달리기는 무엇보다 시간 날 때 아무 때나 할 수 있어 좋아요.”


2000년 검푸에 가입했고 그해 4월 풀코스를 처음 완주한 뒤 지금까지 풀코스만 100회 넘게 완주했다. 풀코스 최고기록은 2013년 기록한 3시간11분. 마라톤 시작 1년여 만에 14kg을 감량했고 지금까지 70kg을 유지하고 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는 철인3종을 병행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킹코스(철인코스·수영 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를 3회 완주했죠. 그 이후엔 올림픽코스를 완주하긴 했지만 킹코스는 참가하지 않았어요.”


킹코스 최고기록은 13시간 30분. 강 씨는 2003년 세계 최고로 불리는 보스턴마라톤에도 다녀왔다. 100km 울트라마라톤에도 여러 차례 참가한 철각이다. 요즘은 산악마라톤인 트레일러닝도 즐기고 있다.


“서울 둘레길(157km), 북한산 둘레길(65km),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5산 종주…. 경기도 주변 수도권엔 광교산과 청계산 등 달릴 수 있는 산이 많이 있어요. 시간만 나면 검푸 회원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달리고 있습니다.”


강 씨는 “80세까지는 풀코스를 내가 정한 기록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달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강 씨는 지난해에도 3시간 20분에 풀코스를 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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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복 씨가 2006년 6일간 250km를 달리는 사하라사막마라톤에서 걷고 있다. 유병복 씨 제공

유 씨는 친구 따라 2002년 마라톤에 입문했다.


“평소 건강을 위해 조깅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운동을 잘 못할 것이라고 여긴 친구가 풀코스를 완주했다고 하는 겁니다. 명문고 명문대 출신으로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였죠. 속으로 ‘쟤도 달리는데 내가…’ 하는 심정으로 도전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좋았습니다.”


건강도 챙겼지만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충만 됐다. 검푸 회원들과 어울려 풀코스를 40회 이상 완주했다. 최고기록은 2006년 기록한 3시간19분. 유 씨는 2006년 6일간 250km를 달리는 사하라사막마라톤도 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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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복 씨(오른쪽)가 2006년 6일간 250km를 달리는 사하라사막마라톤에 참가해 분당검푸마라톤클럽 회원하고 포즈를 취했다. 유병복 씨 제공

“검푸 회원 2명과 함께 갔었죠. 한 명은 빨리 뛰어 나갔고 저하고 나머지 회원 한명은 걸었습니다. 그 회원 다리가 좋지 않아 뛸 수 없었습니다. 저도 굳이 무리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론적으로 보니 걸은 게 너무 좋았습니다. 사막을 제대로 볼 수 있었고 곳곳에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 때 찍은 사진이 400여장이었습니다. 빨리 달린 친구는 고생만 했고 사진도 별로 없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기억에 남는 레이스였습니다.”


유 씨는 철인3종 올림픽코스(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를 완주했다. 지리산 화대종주(화엄사~대원사 약 42km)도 했고 불수사도북 오산종주도 하는 등 트레일러닝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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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근 씨가 2011년 춘천마라톤에 참가해 질주하고 있다. 박동근 씨 제공

박 씨도 건강을 위해 마라톤에 입문했다.


“술을 좋아해 체중이 많이 나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부터 혼자 연습하다 2003년 한 마라톤 대회 풀코스에 출전해 고생한 뒤 2004년 검푸에 가입해 회원들과 함께 달리고 있습니다.”


현재 체중은 10kg이 빠진 65kg. 2007년 동아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 47분이 개인 최고기록. 풀코스를 30회 넘게 달렸다. 그는 “330(3시간30분 이내기록)하려고 욕심 부리다 좀 무리했더니 고관절에 이상이 왔다. 그 다음부터는 건강마라톤으로 즐기면서 달리고 있다”고 했다. 박 씨는 환갑기념으로 풀코스를 달린 뒤에는 하프코스 등 짧은 코스를 즐겁게 달리고 있다. 지난해 1월 후두암 1기 판정을 받은 그는 수술 받고 치료를 받으면서도 꾸준하게 운동하고 있다. 박 씨도 강 씨, 유 씨와 함께 수도권 인근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도 즐기고 있다.


“전 그동안 운동을 열심히 해 건강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술 다음날에도 동네 뒷산을 올랐습니다. 전 육체가 정신을 지배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력이 아무리 강해도 육체가 버텨주지 못하면 버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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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검푸마라톤클럽 ‘3인방’ 박동근 유병복 강종수 씨(왼쪽부터)가 지난달 10일 강원도 고성 7번 국도 종점에서 출발하기 전 포즈를 취했다. 이들은 이날부터 16일간 동해안 570km를 함께 걸었다. 마라톤으로 건강을 함께 다지고 있는 이들은 한반도 둘레길 4000km를 4차례로 나눠 함께 돌며 건강과 우정을 다지고 있다. 유병복 씨 제공

셋은 두 발로 한반도 둘레길 완보를 마치면 제주 둘레길도 돌 예정이다. 그리고 백두대간도 종주할 계획이다. 이들은 이미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도 다녀왔다. 백두대간 종주를 제안한 유 씨는 “우리는 산을 타고 집사람들은 중간 중간 우리에게 음식 등을 지원하게 하면서 일부 구간을 함께 걷는 ‘부부동반’ 종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입을 모았다.


“우린 행운아입니다. 체력 되죠, 시간 되죠, 나이도 비슷합니다. 은퇴한 뒤 이렇게 어울려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 있나요? 100세 시대 이렇게 맘에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즐겁습니다.”


이들 3인방은 100세 시대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매일 운동을 빼놓지 않고 하고 있다.


강 씨는 월 200~300km를 달린다.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을 포함한 거리다. 친구들과 등산도 월 한두 차례 한다. 유 씨도 매일 아내와 함께 10km를 걷거나 달리고 있다. 등산도 자주 한다. 박 씨는 매일 아침 10km를 달린다. 달리는 것을 포함해 하루 2만 보 이상 걸으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몸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몸이 건강해야 100세 시대를 즐겁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는 사람들에게 통용 되는 말이 있다. ‘구르는 돌엔 이끼가 끼지 않는다.’ ‘고인 물은 썩는다.’ ‘누죽달살(누우면 죽고 달리면 산다).’ ….


‘검푸 3인방’은 이렇게 말했다.


“나이 들었다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지 말라. 일단 걷거나 달려 보라. 그럼 다른 세상이 보일 것이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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