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과 오르는 달빛언덕… 단종이 들려주는 유배애사
‘남창(南窓)으로 향한 서탁(書卓)이 차고 투명하고 푸릅니다. 새삼스럽게 눈앞의 가을에 눈을 옮깁니다.’ 창밖으로 여러분이 보입니다. ‘푸른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메밀꽃 피었다
평창 효석달빛언덕에 복원한 평양 푸른 집. |
푸른 집은 제 이름을 딴 강원 평창군 봉평면 ‘효석달빛언덕’에 있습니다. 정확히는 평양 푸른 집입니다. 1936년 평양숭실전문학교 교편을 잡으며 살게 된 집을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맞아 복원했답니다. 91㎡(약 30평) 규모의 짜임새 있는 일본 가옥 형태입니다. 집이 푸른 이유는 외벽을 가득 메운 담쟁이 덕분입니다. 이곳에서 ‘메밀꽃 필 무렵’ ‘낙엽을 태우면서’를 비롯해 가장 많은 작품을 썼지요.
가을 아침이면 앞뜰에서 낙엽을 모아 태웠습니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납니다. 개암나무와 유사한 유럽개암나무 열매가 헤이즐넛입니다.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곤’ 했죠.
들어와 보십시오. 침실, 거실, 서재, 부엌까지 제 생애 마지막 6년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서랍에는 버터와 커피 내리는 기구가 있고 축음기에서는 쇼팽이 흘러나옵니다. 무릎에 앉힌 큰아이 손을 잡고 풍금을 쳐봅니다.
거실 벽에는 프랑스 배우 다니엘 다리외 사진을 걸었습니다. 미국 배우 비비언 리 아니냐고 하시는 분도 있더군요. 1930년 경성제대 법문학부 문학과를 졸업하자마자 동료 4명과 ‘조선 시나리오 라이터 협회’를 결성할 정도로 영화를 사랑했습니다. 이듬해 동아일보에 시나리오 ‘출범시대(出帆時代)’를 연재했죠.
평양 푸른 집 거실. 꽃병에 꽃이 항상 꽂혀 있다. |
식탁 꽃병에는 꽃이 꽂혀 있어야 합니다. 꽃을 사서 다방에 있는 여류 시인들에게 건네곤 했습니다. 쑥스러워서 화원 주인에게 “꽃을 신문지로 말아 달라”고 했는데 행인들은 꽃인 줄 다 알더군요. 1942년 5월 죽음의 문턱에 있을 때 병실을 찾은 문우(文友) 유진오에 따르면 ‘핏빛 카네이션과 흰 글라디올러스가 고혹적으로 어우러진 병상’이었답니다.
좁은 복도를 지나 하얀 문을 열면 모던한 전시실입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하면 바깥 커다란 ‘달’(그렇습니다. 달이 빠지면 안 됩니다)에 그 마음이 글자로 나타납니다. 자갈로 채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근대문학체험관과 복원한 생가가 나옵니다.
저 너머를 보세요. 거대한 금빛 나귀가 보입니다. 맞아요. 허 생원과 이십 년 세월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 같은 달빛에 젖으면서 함께 늙게’ 된 그 나귀입니다. 다르다면 그 배 속에 들어가서 전망과 책을 함께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나귀 앞 바람개비 동산에 서서 푸른 집 뒤 언덕을 봐주세요. 제 유택(幽宅)입니다. 경기 파주에서 옮겨 왔습니다. 커피 한잔 들고 올라오시죠. 커피는 겨울에 실내 ‘불멍’이 가능한 북카페에 있습니다.
천천히 5분 걸으면 이효석문학관에 닿습니다. 제 육필 원고와 각종 이력 자료, 동시대 문인들 책과 연구서 등이 전시돼 있습니다. 메밀꽃 필 무렵 전문을 벽에 새겨놓기도 했네요.
카페 ‘동(Don)’도 있습니다. 소설 속 ‘동이’는 아닙니다. 1931년 서울을 떠나 함경북도 경성농업학교에 근무할 때 인근 마을 나남(羅南)에 있던 커피집입니다. 그 집 커피 맛에 홀려 일요일마다 10리 길을 걸었습니다. 동 옆 잔디밭에 책상에 앉아 글 쓰는 제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이 있습니다. 포토존입니다.
지난해 평창효석문화제 광경. 꽃이 하얗게 핀 메밀밭으로 나귀를 끌고 간다. ‘메밀꽃 필 무렵’ 한 장면을 재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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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 올라오는 길가에 메밀꽃이 하얗게 피었을 겁니다. 이곳을 비롯해 봉평 일원에서 15일까지 ‘문학과 미식’을 주제로 평창효석문화제가 열립니다. 드넓은 메밀밭 봉평메밀꽃축제도 함께합니다. 달이 슬슬 차오르기 시작합니다.(도움말: 평창군 최일선 해설사)
● 단종 ‘애사(愛史)’
영월 청령포 전경. |
잘 오셨네, 청령포(淸泠浦)에. 300척 남짓(약 100m) 짧은 뱃길, 567년 전 여름 남여(藍輿)에 지친 몸을 실은 과인(寡人)은 거룻배로 건넜다네. 삼면을 서강이 휘몰아 돌고, 뒤는 깎아지른 절벽이니 고립된 땅일세.
춘원(春園)은 ‘단종애사(端宗哀史)’에서 6월 28일 한양을 떠난 영월 유배 행렬이 ‘7월 초승달 빛 두견성(杜鵑聲) 슬피 들릴 때’ 이르렀다 했네. 예까지 한 달 길이었다는 얘기도 있네. 그대도 아마 몇 시간은 족히 걸렸을 걸세.
야트막한 자갈길을 오르면 이내 송림. 그 안에 어소(御所)가 있네. 정면 4칸 기와집으로 2000년에 문화재청에서 복원했지. 논쟁이 있었네. 노산군(魯山君)으로 격이 낮아진 상왕(上王)에게 기와집 지어줄 여유가 없었다는 주장과 땅을 파보니 기와 조각 등이 나왔다는 의견이 맞섰지. 단종애사 등은 ‘나뭇조각 지붕에 판자를 잇댄 집’이었다고 하니 너와집이었을 수도 있겠네. 그전까지는 어소가 있었음을 알리는 비석 ‘端廟在本府時遺址碑(단묘재본부시유지비·1763년 · 영조 39년)’와 정조 때 지은 비각(碑閣)만 있었네.
청령포 단종 어소를 향해 허리 숙여 읍하는 소나무. |
수령(樹齡) 250년은 돼 보이는 소나무가 어소 쪽으로 깊게 허리를 숙이고 서 있네. 충절을 다하는 신하 같다고 하는군. 어소 뒤로 오륙십 보 걸으면 관음송(觀音松)이 있네. 600년 정도 됐을까. 높이 30m, 가슴 높이 둘레는 5m가 넘네. 내 비참한 모습과 한스러운 신음을 지켜보았다고 붙인 이름이라네. 1.6m 높이에서 줄기가 갈라진 아랫동에 과인이 종종 걸터앉았다고 하네. 관음송을 바라보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세 번 돌면 기운을 받을 수 있다고도 하지. 믿는 것은 그대 자유일세.
본디 지명은 청랭포(淸冷浦)였네. 1726년 영월부사(府使) 윤양래가 랭(冷)의 부수 ‘두 이(冫)’보다 조화로운 숫자 3(氵·삼 수)이 들어간 ‘령(泠)’이 낫다고 본 것이라지.
여기서 승용차로 4분 정도면 내가 묻힌 영월 장릉(莊陵)에 이르네. 그해 큰비로 어소가 잠기자 관아 관풍헌(觀風軒)으로 거처를 옮겼고 10월 사사(賜死)됐지. 동강에 던져져 아무도 수습할 엄두를 못 내던 시신을 호장(戶長) 엄흥도가 야음에 건져내 암매장했다고 전하네. 1516년 중종 11년에야 이리로 옮겨 묘를 꾸몄고. 장릉으로 불린 건 복위된 1698년 숙종 때일세.
조선 왕릉 44기 가운데 장릉은 다른 능과 사뭇 다르다네. 조성 기준인 도성 10리(약 4km) 밖, 100리(약 40km) 안에 있지 않지. 봉분도 왕릉 중 가장 높은 해발 270m에 있네. 왕릉 입구 홍살문에서 제향(祭享) 올리는 정자각(丁字閣) 그리고 봉분까지 대개 직선상에 있지만, 오른쪽으로 90도 굽었다네. 봉분 주변 병풍석, 난간석도 없으며 돌로 된 호랑이, 양, 말도 4필씩이 아니라 2필씩만 있네. 문관석(文官石)은 있지만 무관석(武官石)은 없어. 무고한 피를 흘린 신하 268위의 절의(節義)를 기리는 배식단(配食壇)이 있네.
내 무덤이 영월 사람에게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서나 집에 우환이 있을 때들 와서 사배(四拜)하네. 부임하고도 찾아보지 않은 기관장이 횡액을 만났다는 풍문도 들리네. 정월 초하루에는 참배객으로 인산인해. 6·25전쟁 당시 국군과 인민군이 “장릉 쪽으로 총을 쏘지 않는다”고 합의했다는데, 잘 찾아보면 탄흔이 있다네.
과인을 찾아오는 길은 다크투어(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여행)일지 모르겠네. 재위 기간은 짧았지만, 그네들 아끼는 마음 변치 않음세. 그것만 알아준다면 족하네.(도움말: 김원식 이갑순 문화해설사)
● 평창 육백마지기와 영월 요선암 돌개구멍
강원 평창군 청옥산 육백마지기 전경. |
이효석의 감성과 단종의 애잔함에 푹 젖은 몸을 자연에 의탁해 본다. 평창 청옥산 육백마지기는 1200m대 고원이다. 넓이가 600마지기(약 40만 ㎡)는 아니고 대략 축구장 6면(약 4만3000㎡) 정도다. 6, 7월 하얀 샤스타데이지가 만개했을 때 멋있지만 가을 단풍을 내려다보는 맛도 그 못지않을 터다. 기자가 지난달 22일 올랐을 때는 거센 바람과 비구름에 휩싸였다. 높이 100m, 날개 길이 50m의 풍력발전기가 구름 속에서 빠르게 도는 모습은 장엄했다.
강원 영월군 무릉도원면 주천강 요선암 돌개구멍. 중생대 쥐라기 화강암들이 1억 년 넘게 물살의 소용돌이에 깎여 움푹 파인 흔적이다. GNC21 제공 |
영월 무릉도원면 주천강 요선암(邀仙巖) 돌개구멍은 시간과 자연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중생대 쥐라기 화강암들이 1억 년 넘게 자갈과 모래가 섞인 물살의 소용돌이에 둥글게 움푹 파인 것이다. 쉼표(,) 느낌표(!) 등 팬 모양도 다양하다. 요선암 절벽 위 요선정(邀僊亭)에서 바라보는 주천강 본류 전경은 시원할 따름이다.
평창·영월=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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