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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사히

이은화의 미술시간

동아일보

조슈아 레이놀즈 ‘아기 사무엘’, 1776년.

하얀 잠옷을 입은 아이가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다. 커다란 눈엔 간절함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 그림, 왠지 낯익지 않은가? 맞다. 1970, 80년대 택시나 버스 운전석 앞에 종종 걸려 있던 ‘오늘도 무사히’ 그림이다. 수많은 복제화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이발소 그림’처럼 인식되지만, 사실 이 그림을 그린 건 영국 상류층이다.


조슈아 레이놀즈는 18세기 영국 화단의 가장 영향력 있는 초상화가였다. 시골 출신으로 정규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재능을 알아본 누이들의 지지와 도움으로 화가로 성공할 수 있었다. 결혼한 큰누나의 후원으로 17세 때 유명 초상화가 토머스 허드슨을 사사하고, 9년 후 로마로 가서 르네상스 거장들의 그림을 직접 보면서 배울 수 있었다. 30세 때 런던에 정착해서는 여동생의 도움을 받으며 오직 작업에만 열중했다. 뛰어난 소묘력과 색채, 숭고한 분위기를 특징으로 한 그의 그림은 영국 상류층들을 단숨에 매료시키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1768년 왕립 예술원의 초대 원장으로 취임한 데 이어, 조지 3세에게 기사 작위를 받으며 스스로 상류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그는 상류층의 초상화로 명성을 얻었지만, 신화나 성서 속 인물의 어린 시절을 그리는 데도 탁월했다. 이 그림 속 아이도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 사무엘이다. 어머니의 오랜 기도 끝에 태어난 사무엘은 어릴 때 신에게 바쳐졌다. 이스라엘 최후의 사제이자 판관이 된 그는 평생 명예나 권력을 탐내지 않고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지도자였다. 화가는 기도하는 어린 사무엘의 모습을 통해 지도자의 청렴결백과 순수성, 지혜와 복종을 강조하고 있다.


어쩌면 그림은 난청이 있는 레이놀즈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평생 뒷바라지한 누이들의 간구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짙은 먹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빛줄기는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일 테고. 힘든 고비를 맞을 때마다 화가 역시 기도했을 것이다. 큰 욕심 대신 ‘오늘도 무사히’라고.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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