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석희 “코치 폭행에 이러다 죽을 수 있겠다 생각”
조재범 항소심서 눈물의 증언
“초등 1학년 때부터 폭언-폭행… 아이스하키채에 맞아 골절도”
17일 국가대표 선수들을 상습 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의 항소심 2차 공판에 참석한 심석희. 수원=뉴스1 |
“평창 겨울올림픽을 20일 남겨놓은 시점에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왼쪽 가슴에 태극기가 새겨진 패딩을 입고 재판정에 들어선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21·한국체대)는 울먹이며 쉽게 말문을 열지 못했다. 미리 준비한 메모를 읽어가며 어렵게 말을 이었다.
17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37)의 상습상해 및 재물손괴 사건 항소심 2차 공판에 재판부의 요청으로 참석한 심석희가 조 전 코치에 대해 엄벌을 내릴 것을 법원에 요청했다.
그는 “그동안 피고인(조 전 코치)과 마주쳐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법정에 서지 못했지만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고 생각해 용기를 냈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피고인은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했고 4학년 때는 아이스하키채로 폭행해 손가락뼈가 골절됐다. 중학생 때부터는 강도가 더 심해져 밀폐된 공간에서 무자비하게 당했다. 선수 생활을 그만둔 선수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심석희는 “현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등으로 약물 치료를 하고 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조 전 코치의 폭행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은 평창 올림픽 개막을 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1월 중순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 17일 평창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진천선수촌을 방문했는데 당시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 주장이던 심석희는 그 행사에 불참했다. 사실 확인 결과 심석희는 하루 전 조 전 코치에게 폭행을 당한 뒤 선수촌을 이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심석희는 “평창 올림픽 전엔 주먹과 발로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그 여파로 뇌진탕 증세가 생겨 올림픽 무대에서 의식을 잃고 넘어지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조 전 코치는 심석희를 때려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히는 등 2011년부터 올해 1월까지 4명의 선수를 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심석희는 또 조 전 코치가 특정 선수를 밀어주기 위해 자신을 때렸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공판을 앞두고 탄원서를 통해 조 전 코치가 2017∼2018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대회에서 자신의 스케이트 날을 평소와 다르게 조정해 경기력을 떨어뜨리거나 경기를 앞두고 폭행해 제대로 성적을 낼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조 전 코치가 올림픽 기간 중 경기장에 나타나 해당 선수를 가르쳤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조 전 코치는 “심석희 선수의 상처가 깊어 참담하다. 모두 제 책임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으로 때린 적은 없었다. (선수가) 조금 더 성장하길 바란 제 잘못된 판단”이라고 했다. 선고 공판은 내년 1월 14일 열린다.
수원=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